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 “삼성은 거짓말쟁이”
  • 윤민화 기자 (minflo@sisabiz.com)
  • 승인 2015.09.24 08:49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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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관계자 “반도체와 직업병 사이 인과관계 밝혀진게 없다”
지난 22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은 강남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 사진=윤민화 기자

#고(故) 손경주씨는 지난 2012년 8월 31일 사망했다. 사인은 급성 골수성 림프성 백혈병이다. 손씨는 삼성 반도체 협력사 메타테크와 기가테크에서 프로젝트 관리소장으로 7년가까이 일했다. 손씨나 손씨 가족이 삼성전자나 협력사로부터 받은 보상금은 0원이다.

#김모(44)씨는 19살에 삼성반도체(옛 삼성전자) 창립 사원으로 입사해 8년간 온양공장에서 일했다. 김씨는 지금 갑상선암, 뇌수막염, 류마티즘, 자궁경부이형성증에 걸려 투병중이다. 고등학생 1학년으로 성장한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거대결장에 걸려 대장을 모두 드러내야 했다. 김씨는 1998년 삼성전자를 퇴사할 때 임신 7주차였다.

김씨도 삼성전자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해당 질병이 삼성전자가 제시한 보상 범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갑상선암 치료비를 나라에서 지원 받았다. 아들 치료비는 퇴직금으로 충당했다. 당시 아들 치료비만 2000만원이 넘게 들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17일 ‘반도체 백혈병 보상위원회’를 발족했다. 당시 삼성은 ‘조정 보류’를 요청한 상태였다. 삼성전자는 “협력사 퇴직자들은 근무 이력을 파악하기 어렵고 현행 법 체계와 충돌이 우려되지만 인도적 관점에서 동일 원칙과 기준을 적용해 보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조정위원회 권고안 내용을 거의 원안대로 받아들였다”며 “반도체 산업은 최첨단 제조업으로 어떤 업종보다 안전하며, 특히 자사 반도체 생산라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보상위는 보상 대상 질병에서 유산, 불임을 제외했다. 1996년 이전 퇴직자도 보상 대상에서 뺐다. 협력사 직원도 라인 업무를 상시 수행하지 않으면 보상 대상이 아니다. 조정위가 조성하라고 권고한 재발방지대책 사업비 300억원도 삼성전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잠복기간은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14년에서 10년으로 단축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평균 근속기간은 18년쯤이다. 퇴직 후 10년을 잠복기간으로 잡아도 문제없다. 웬만한 직업병 피해자는 모두 커버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 단체인 반올림 소속 임자운 변호사은 “조정위 권고안보다 보상 범위가 더 좁아졌다. 삼성전자가 조정위 권고안을 받아들였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또 “반도체 라인과 직업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밝혀진 게 없으므로 직업병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사회 부조 차원으로 기금 1000억원을 투입해 보상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2013년 삼성전자 화성 공장에서만 2000건 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김모 씨는 작업 환경 탓에 난임으로 고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피해자들은 작업 환경이 엄혹했다고 주장한다. 온양공장 반도체 셍산라인에서 일했던 김씨는 “안전교육을 한 차레도 받지 못했다. 입사 초기 수년간 한 달에 하루도 쉬지 못했다. 제대로 된 작업복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오로지 제품 교육만 받았다. 시험까지 치렀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합격할 때까지 반복했다.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안전교육을) 철저하게 실시하고 있다. 안전 지침서도 마련돼 있다”며 “안전 사고가 발생하거나 지침서 위반으로 회사에 피해가 생기면 회사 차원에서 바로 대응한다”고 답변했다.  

박성주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은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때는 업무 현장에 목장갑도 지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목표 생산량을 달성하려면 상당히 시간 압박에 시달린다. 또 중량물을 많이 처리하다 보니 근골격계 질환  환자가 특히 많다. 산업재해보험 대상으로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하면 삼성전자 서비스 관리자는 ‘이런 것을 모두 지키는 기업은 없다. 자잘한 산재 요구를 모두 들어줬다면 지금의 삼성은 없다’고 답변했다”고 덧붙였다.

이상윤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과장은 ”직업병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병”이라고 정의하며 “감기도 대표적 직업병”이라고 말했다.

이상윤 과장은 “미국의 경우 기업이 피고용인에 대해 100% 의료 보험비를 부담한다. 병명에 상관없이 모든 질병에 대한 책임을 기업이 진다. 유럽의 경우 의료 보험비 60~70%를 지원한다. 평균 60~70%가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인 것이다. 삼성전자는 50% 정도다”고 덧붙였다.  

또 여성 근로자에 대한 유산과 불임은 보상위의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근무와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보상 신청 인원이 61명이라고 23일 발표했다.

고(故) 손경주씨 아들 손성배씨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에 기재되지 않은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이 많다. 보상위는 이들은 돈으로 회유해 진실을 숨기려 한다”고 말했다.

이상윤 과장은 “삼성전자가 첫 단추다. 국내 많은 기업들이 노동자 안전 문제를 안고 있다. 열악한 환경과 시스템을 개선하고 올바른 보상 체계를 갖추기 위해선 이번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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