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차 뽑았다? 금수저 얘기죠”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5.10.1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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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2030세대 급감하는 소형차 판매

# 2년 전 대기업 공채에 합격한 김윤호(30)씨는 세후 월급으로 약 290만원을 받는다. 각종 수당 등을 합하면 연봉은 더 뛴다. 경제력이 있지만 김씨는 자발적 ‘뚜벅이’를 택했다. 높아진 집값과 학자금 등이 자동차 구매의 발목을 잡았다.

김씨는 “연봉을 쪼개면 차를 살 수 있겠지만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내 집 마련하려면 자동차도 사치다. 학자금 대출도 일부 남은 상황”이라며 “소형차라도 주유비나 보험금 등을 고려하면 구매가 쉽지 않다. 부모님이 차를 사주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사회초년생이 차를 구매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에 대한 걱정에 자동차 구매를 미루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높은 등록금과 실업률, 높은 집값이라는 일명 ‘삼고(三高)’가  사회 초년생들의 자동차 구매를 막고 있다는 분석이다, 급증하는 중고차 사기 역시 자동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2.5배로 오른 ‘국민 오빠차’ 아반떼

1995년 출시된 현대자동차 ‘아반떼’ / 사진 = 현대자동차

1995년 출시된 현대자동차 ‘아반떼’ / 사진 = 현대자동차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기 전인 90년대 경제 호황기, 청년들의 드림카는 아반떼였다. 95년 당시 아반떼 가솔린 1.5 VVT 가격은 780만원, 가솔린 1.8 VVT 모델은 850만원이었다. 당시에도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취직만 하면 자동차를 몰 수 있단 희망이 있었다. 높은 취업률과 5~11%에 이르는 높은 정기예금 금리가 그런 기대감의 배경이 됐다. 집값 거품도 적었다. 95년은 당시 7월 실시된 부동산 실명제의 영향으로 전세값 역시 떨어졌던 시기다.

20년이 지난 지금 아반떼 가격은 1384~2371만원으로 95년 대비 2.5배 정도로 뛰었다. 평균임금은 지난 7월 기준 331만5000원(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기준)으로 높아졌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 보면 한국에서 자동차 살 여건은 당시보다 나아진 듯하다.

하지만 요즘 실업률은 급증했고 일자리는 비정규직이 대다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청년실업률은 11%로 외환위기 시절(11.5%) 이후 최고치다. 임시·일용직 평균월급은 144만8000원으로 정규직 월급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평균 전셋값이 3.3㎡당 1000만원을 넘는 지역은 18곳에 달한다.

이러니 청년층이 차를 소유하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이 때문인지 올 8월까지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배기량 1600cc 미만 소형차 판매량(12만7203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2% 줄었다. 수입차를 비롯한 국내 전체 자동차 수요가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 청년들 탈만한 차? 1000만원 이하는 ‘2015 모닝’ 뿐

‘국민오빠차’ 대신 더 싼 차가 팔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까. 국산차 중 가장 저렴한 기아 ‘2015 모닝’는 지난달 6870대가 팔려나가며 한국GM ‘더 넥스트 스파크‘를 밀어내고 경차 부분 1위에 올랐다.  신형 모델 중 유일하게 출시가 일천만원 이하다.

한 단계 윗급인 준중형차로 눈을 돌린다면 가격은 훌쩍 뛴다.

국민오빠차 아반떼는 모든 옵션을 제외한 최저가 모델(Style M/T)이 1384만원이다. 동급인 르노삼성 SM3는 최저가 1590만원, 기아차 K3는 1403만원이다. 연비와 차체 옵션, 가속력 등은 비등하다.

소형 SUV 중에는 티볼리 가솔린 모델이 1606만원으로 가장 저렴하다. 그보다 연비가 좋은 QM3 디젤 차량은 최소 2280만원.

사회초년생이 경차보단 나은  차를   원한다면 최소 1500만원 언저리는 예상해야 한다. 모든 옵션을 제외한 일명 ‘깡통차’ 판매가가 그렇다. 열선시트나 후방카메라 등 옵션을 추가한다면 가격은 적게는 200만원에서 최대 800만원까지 뛴다.

◇ 자동차 업계 “소형차 이익 적고 리스크 많아” 기피

일각에서는 청년들이 중고차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첫차부터 신차를 가지려는 욕심이 과하다는 것. 하지만 중고차 매매가도 상향평준화됐고 무엇보다 급증한 중고차 매매 사기가 청년들의 중고차 구매를 망설이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달 초 중고차 구매를 알아봤다는 김예란(29)씨는 “경기도에서 출퇴근하기가 너무 힘들어 중고차를 알아봤다”며 “하지만 중고차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 연일 보도되고 있는 중고차 매매 사기도 남의 일 같지 않아 차라리 몇 년 더 돈을 모아 신차를 살까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판매사들이 마진 등을 이유로 자동차 가격을 내리지 않고, 소형 신차 개발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구상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자동차 회사들이 플래그십 세단이나 중형 SUV 개발에는 충실한 반면 소형·경차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영업이익 측면에서 저가 차량을 박리다매 하는 것보다 중형차를 파는 게 더 낫기 때문”이라 밝혔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한 내수시장이 크지 않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이 잘 팔리고 있어 차체가 작은 차량 개발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내수시장이 작아 2030세대만을 타깃으로 차를 개발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또 최근 첨단 옵션이 많이 들어간 것도 소형차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라며 “국내 자동차 시장이 더 활성화된다면 저가 차량 도입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기존 SUV라인업 및 중형차 신차 개발 외에는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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