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대망론’ 띄우기에 올인하라”
  • 박준용·유지만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5.10.14 15:52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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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현·홍문종·서청원 등 친박 핵심들 일제히 충청 지역 향해 손짓하는 현장 포착

“윤상현의 입이 어디 그의 입인가.” 여권 인사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그만큼 청와대 정무특보를 맡고 있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의 말이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대리한다는 뜻이다. 그는 현재 박 대통령이 가장 믿는 책사(策士)로 통한다. 그런 그의 입에서 ‘김무성 대권 불가론’과 함께 ‘충청’이 언급됐다. 대선에 도전할 사람은 충청 지역에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의 발언은 당장 파급력이 확산됐다. 청와대가 충청 출신 후보를 내세워 정권 재창출을 위한 시나리오를 짜고 있다는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이른바 ‘영남+중원(충청) 연합’ 시나리오다. 친박이 쌓은 선거 조직과 텃밭인 영남권의 확고한 지지층, 여기에 충청민들의 지역 출신 대통령 배출이라는 열망을 합치면 ‘필승’이라는 전략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충청 출신은 사실상 전무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충남 아산 출신이지만, 실제 그는 내각책임제하의 실권 없는 상징적인 대통령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5·16으로 2년도 못 돼 하야(下野)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9월26일(현지 시간) 유엔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그동안 충청은 친박이 주목하는 곳이었다. 이 때문에 충남 청양 출신의 이완구 의원을 총리로 내세우기도 했다. 친박의 이런 ‘충청 구애’는, 이전까지 대권을 가져간 영호남 후보는 충청 표를 설득해 가져왔지만 이제는 이 지역 출신 후보를 대권 주자로 뽑는 게 가장 효율적 전략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충청 지역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역 출신 후보를 선호하는 흐름이 감지되는 탓이다. 일례로 이완구 전 총리가 인사청문회 때 궁지에 몰리자 충청 지역에 ‘충청 총리 낙마하면 다음 총선·대선 두고 보자’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충청 지역 내에서도 “지역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이곳 근저의 민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권 도전 가능성을 숨기지 않은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야당 후보임에도 도지사로 연이어 뽑아준 것 역시 충청도민들에게 ‘충청 대망론’이 어필한 탓이었다.

윤상현·홍문종, 충청 지역 인사들 접촉

이번 시사저널의 취재 과정에서 충청 지역의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고, 몇 군데서 실제로 확인되고 있다. 우선 과거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가장 크게 성공했던 정당인 자민련 출신들이 다시 세를 규합한다는 정보가 그것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몇몇 정치인들이 ‘자민련’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꿈틀대고 있다. 최근 ‘충청 대망론’ 등으로 지역 주가가 올라가는 것과 무관치 않다. 충청권 출향 명사 모임 ‘백소회’의 총무를 맡고 있는 임덕규 디플로머시 회장은 “충청 사람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충청 출신 인물이 대권을 잡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도 “충청 지역에서는 지역 출신 인물이면 여야 가리지 않는 분위기가 있고, 여기에 특히 영남의 지지를 동반하면 대권 후보로서의 선호도는 높을 수 있다”고 평했다.

이미 친박 핵심 실세들 가운데 ‘충청 대망론’을 위한 ‘정지작업’에 들어갔다는 주장도 속속 나온다. 충청 지역 정계에 밝은 한 인사는 “윤상현 특보가 충청 지역의 유명 모임 등 영역 확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면서 “이런 이유 등으로 충청 지역 인사들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윤 특보 역시 충남 청양 출신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 소속의 한 충북 도의원은 “친박인 홍문종 의원이 명절이나 중요한 날 연락을 하는 등 지속해서 충청권 인사를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의 조직을 담당한 친박 핵심 인사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충청을 주목하며 대망론을 위한 기반 다지기 작업을 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낸 바 있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친박 측이 충청 대망론을 위해 충청 지역 물밑작업에 이미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청와대와 친박이 주목하는 충청 출신 ‘잠룡’은 누구일까. 일각에서 이완구 전 총리를 비롯해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 정진석 전 의원 등이 거론되지만, 실제로 이들에게 청와대의 의중이 실렸다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이 교수는 “(충청 출신이면) 아무나 찍어서 차기 주자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다”고 평했다. 결국 윤 특보의 발언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 총장은 충북 음성 출신이다. 본인도 자신이 충청 출신임을 강조하며, 한국 방문 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지역 행사는 꼭 챙기는 집착을 보였다. 윤 특보의 ‘충청’ 언급과 겹친다. 대선 출마 시 ‘충청 대망론’의 적임자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친박이 영남에서 표를 가져오면 그는 대선 후보로 상당한 폭발력을 보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거티브 공세 버텨낼 수 있을까” 회의론도

아울러 친박 측이 반기문 총장과 비공식 접촉을 시도했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된다. 정가에서는 “친박의 맏형 격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반 총장이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며 양자 간 접촉설이 흘러다니고 있다. 서 최고위원 역시 충남 천안 출신이다. 반 총장이 2013년 휴가차 방한했을 때 박 대통령의 ‘숨은 비서실장’으로 통하는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과 새마을운동 세계화와 관련해 의견을 나눈 것도 이 ‘접촉설’의 근거다. 새마을운동은 명목일 뿐이고 실은 이를 계기로 여권과 반 총장의 친분을 돈독히 하기 위한 ‘손짓’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친박 측은 이에 ‘묵묵부답’하거나 부인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반 총장을 차기 주자로 고려하는 것은 맞지만 아직 ‘낙점’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박 대통령이 ‘2인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견제하면서 차기 주자의 다각화 시도를 한다는 것. 또 일부 여당 의원들의 경우 “반 총장이 과연 대권을 잡은 뒤 우리의 정치적 생존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에 의문을 표시한다는 전언이다. 비정치인 출신에 대한 의심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나 친박에서도 반 총장보다는 오히려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에서 역할을 한 경험이 있는 안대희 전 대법관을 차기 주자로 고려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9월26일(현지 시간) 유엔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반 총장이 친박 측의 ‘옹립’ 시나리오를 수락한다고 가정해도 과제는 남는다. 대권으로 가는 길은 멀다. 혹독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미 반 총장은 친인척과 경남기업 관련 사안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그는 ‘로비 리스트’를 남기고 숨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가까웠다. 동생 반기상씨가 7년간 경남기업 상임고문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또 조카 반주현씨는 베트남 랜드마크72 빌딩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저질렀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출마를 선언할 경우 이런 ‘아킬레스건’이 재조명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그는 국내에서 외교를 주관하며 “냉전적 시각에 갇혀 있다” “친미적이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일화도 있다. 그는 외교부장관 재직 시절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미국을 포함한 다자회담에서 논의하는 것을 반대했다.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는 북한의 기만전술이라는 인식 탓이었다. 이를 안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은 반 총장에게 “외교부장관이 말이지. 도무지 제정신을 갖고 말해야 내가 이해가 되든지 말든지. 그런 냉전적인 시각으로 외교를 하니까 제대로 될 리가 있나?”라고 힐난했다.

유엔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면서는 국제 전쟁 등 큰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2009년 6월 반 총장의 사무총장으로서 업적을 분석하며 “독재 정권의 비위를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면서 “내부 의견도 제대로 듣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노르웨이 ‘아프텐포스텐’은 유엔 주재 노르웨이 대표부의 모나 율 대사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유엔 회원국들이 갈수록 반 총장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갖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친박에서 걸림돌 사전에 제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반 총장이 대권 후보로 낙점되는 순간 엄청난 네거티브 공세가 시작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상돈 교수는 “반 총장이 언론의 공격을 유연하게 피해간다는 뜻의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도 그 같은 힘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라면서 “대선 주자로서 철학과 함량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 사람이 험난한 정치 역정을 자기 힘으로 이겨낼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반면 청와대가 이를 감안해 반기문 총장이 검증 작업을 피해갈 수 있는 묘수를 띄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첫 번째가 ‘막판 등판’설이다. 반 총장이 대선을 앞두고 가급적 늦게 출마선언을 해 승부수를 띄울 것이라는 얘기다. 여권 내 반대파와 야권의 검증 공세를 최대한 피하면서도 폭발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유창선 박사는 “친박 쪽 역시 반 총장 영입 시도를 하더라도 가급적 막판에 할 가능성이 있다. 너무 일찍 대권 후보로 노출되면 공세를 견뎌내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경우 출마에 뜸 들일 반 총장을 위해 친박이 사전 정지작업을 해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검증 과정에서 강하게 반대할 세력을 사정기관 등 공권력을 통해 미리 찍어 누를 것이라는 내용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내 전략통 인사는 “신중한 성격의 반 총장은 뒷받침되는 환경이 있어야만 대선에 나온다. 이를 위해 걸림돌을 친박이 사전에 제거할 수 있다. 반 총장 옹립에 반대하는 세력을 공권력을 동원한 사정으로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대선 막바지 반 총장이 청와대와 손을 잡고 ‘남북통일’ 이슈를 던지며 비판 여론을 잠재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통일 대박론’을 강조한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국제외교 경력이 절묘하게 합쳐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앞서의 새정치연합 전략통 인사는 “예를 들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반 총장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성민 KBS 아나운서도 저서 <반기문 대망론>에서 “반기문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상황을 가정하면 가장 큰 논제는 남북통일이 될 것”이라며 “대선에서 남북통일에 대한 철학과 비전,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 제시는 대통령 당선을 위한 첫 번째 과제”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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