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패터슨 ‘3대 회심 카드’로 반격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5.10.14 16:47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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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재개된 ‘이태원 살인 사건’ 공판 검찰 ‘무능과 오판’ 주홍글씨 지울 수 있을까

일명 ‘이태원 살인 사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지난 10월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심규홍)에서 첫 공판 준비기일이 열렸다. 사건이 발생한 지 18년, 검찰이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한 지 4년 만이다. 이 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36)도 재판에 참석했으나, 그의 변호인은 시종일관 무죄를 주장했다. 피해자인 조중필씨(당시 22세)를 살해한 것은 한국계 미국인인 ‘에드워드 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앞으로의 재판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예고한 셈이다.

실제 재판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한 지 16년 만에 국내 송환이 이뤄지고, 국내 법정에 세우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처벌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첩첩산중이다. 이 사건의 재판이 어떻게 전개될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18년 전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아더 존 패터슨. ⓒ 연합뉴스

검사의 무능과 오판이 18년 공방 불렀다

지난 1997년 4월3일 밤, 홍익대 학생이던 조중필씨는 여자친구를 집에 바래다주려고 서울 이태원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하필 그때 화장실이 급했다. 조씨는 햄버거 가게가 눈에 보이자 곧바로 2층 화장실로 들어갔다. 조씨가 소변을 보고 있을 때 화장실로 두 명의 남자가 들어온다. 한 명은 키와 덩치가 큰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였고, 다른 한 명은 체구가 작은 미국인 ‘아더 패터슨’이었다.

패터슨은 소변을 보는 조씨를 소지하고 있던 흉기를 꺼내 마구 찌르기 시작했다. 조씨는 무려 9곳을 찔렸다. 왼쪽 목 부위 네 곳, 오른쪽 목 부위 세 곳, 가슴 부위 두 곳 등이다. 조씨는 패터슨이 휘두른 흉기를 피할 새가 없었다. 그는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잠시 후 신고를 받은 경찰과 119가 출동했으나 조씨는 과다 출혈로 숨진 상태였다. 화장실 바닥은 조씨가 흘린 피로 흥건했다. 패터슨과 조씨는 처음 보는 사이였고, 둘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었다. 패터슨은 평소 “사람을 죽이고 싶다”며 갖고 다니던 칼(잭나이프)을 자랑 삼아 내세웠고, 조씨를 보자 ‘살인 게임’에 나선 것이다.

패터슨은 조씨를 살해한 후 함께 있던 리와 함께 황급히 햄버거 가게 2층 화장실에서 나와 건물 4층에 있는 술집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옷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당시 패터슨은 조씨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로 머리·손 등 전신을 뒤집어썼고, 리는 옷과 신발에만 소량의 피가 묻어 있었다.

다음 날 조중필씨 살해 사건은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장소가 ‘이태원’이라는 점에서 범인이 미군일 것으로 의심받았다. 미군 범죄수사대(CID)도 바짝 긴장했다. 자칫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솟구치기라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 다음 날 CID에 첩보 하나가 들어왔다. 이태원 살인 사건의 범인이 미군 군속(軍屬)의 아들인 ‘아더 패터슨’이라는 것이다.

CID는 내사에 들어갔다. ‘반미감정’으로 격화되기 전에 미군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고 밝혀야 했다. 패터슨이 평소 잭나이프를 소지하고 다닌다는 것과 그가 다혈질에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을 파악했다. CID는 패터슨을 체포한 후 혐의 상당 부분을 자백받았다. 사건 발생 3일 만에 패터슨은 한국 경찰에 인계됐다. 사건은 금방 해결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얼마 후 공범인 리도 자수했다. 이로써 한국의 사법 당국은 범인과 공범의 신병을 모두 확보했다. 검찰이 주범과 공범의 범행 정도에 따라 죄의 경중을 가려 기소하는 절차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심한 일이 벌어진다. ‘다 된 밥에 코 푼다’는 말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검찰에 송치된 패터슨은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고, 오히려 리에게 죄를 덮어씌웠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담당 검사는 직접 자백을 받겠다며 자신만만해했다.

해당 검사는 범인 신문을 영어로 하지 못해 통역을 내세웠다. 검사는 패터슨을 상대로 날카로운 추궁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검사가 시신을 부검한 법의학자를 불러 소견을 물었다. 그랬더니 조중필씨의 뒷목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찌른’ 치명적인 손상이 있는 것으로 봐서 범인은 ‘키가 클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주범인 패터슨은 키가 170cm 정도로 작았고, 공범인 리는 180cm가 넘는 거구였다. 검사는 범인을 확실하게 잡았다고 자신했다. 그리고는 리를 ‘살인범’으로 특정한 후 기소했다. 그리고 패터슨은 ‘불법 무기 소지와 증거인멸죄’만을 적용해 기소했다. 한번 꼬이기 시작한 사건은 계속 엇갈렸다. ‘에드워드 리’는 2년에 걸친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7년 10월2일 서울지법, 이듬해 1월26일 서울고법에서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패터슨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스러워 리가 단독 범행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리가 조중필씨를 살해했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1998년 9월30일 서울고법은 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소시효 만료 4개월 앞두고 기소

그사이 ‘흉기 소지’ 혐의로 복역 중이던 패터슨은 1998년 8·15 특사로 풀려났고, 검찰이 출국금지를 제때 연장하지 않아 미국으로 출국했다. 말이 출국이지 사실상 도주였다. 이렇게 되자 이상한 광경이 연출됐다. 조씨가 둘 중 한 명에게 살해된 것은 분명한데, 법적으로는 살해범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중필씨 부모는 분노했다. 범인을 다 잡았다가 주범은 놓치고 공범을 기소한 검찰, 여기에 출국금지를 해놓고도 제때 연장하지 않아 범인을 미국으로 도주하게 만든 것이다. 억지로 연출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검찰이었다. 할리우드 영화보다 더 기가 막힌 한 편의 블랙코미디였던 것이다.

피해자 조씨의 가족은 검찰에 책임을 묻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미적거렸다. 살인범을 놓쳤으면 후속 조치라도 신속하게 했어야 하는데도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운 것이다.

굼벵이보다 느린 검찰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영화’였다. 사건이 일어난 지 12년 만인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 사건>이 개봉됐다. 분노한 여론은 검찰에 사건의 재조사를 강하게 요구했다. 여기에 놀란 검찰은 패터슨이 출국한 지 10년이 지난 2009년 9월 미국 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그사이 미국의 패터슨은 어떻게 지냈을까. 그는 1998년 한국에서 출국한 후 한동안 행적이 묘연했다. 2011년 5월 패터슨은 미국 검찰에 체포됐고, 범죄인 인도 재판에 넘겨졌다. 한국 검찰은 같은 해 12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살인죄 공소시효(15년) 만료를 불과 4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미국 LA법원은 2012년 10월 패터슨에 대해 한국 송환 결정을 내렸다. 패터슨은 여기에 불복하며 ‘인신보호 청원’을 제기해 시간 끌기에 나섰다. 미국 사법부의 범죄인 인도 재판이 3심까지 진행된다는 것을 이용해 송환 시기를 늦췄던 것이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 뒤이은 재심에서마저 패해 한국 송환이 성사됐다. 패터슨은 9월23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현재 패터슨은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변호인으로는 국선변호인인 오병주 변호사가 선임됐다.

범인으로 지목됐다가 무혐의로 풀려난 에드워드 리. ⓒ JTBC 캡쳐

치열한 법정 공방 예고

‘이태원 살인 사건’은 검사의 무능과 오판의 결정판이다. 비록 패터슨이 국내로 송환돼 재판을 받고 있지만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패터슨의 국내 송환이 이뤄졌다고 해서 곧바로 재판에서 ‘살인죄’로 기소돼 실형을 사는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다. 검찰이 18년 전 사건의 범행 사실을 얼마나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지 여부가 남아 있다. 여기서 밀리면 패터슨은 의기양양하게 휘파람을 불며 다시 미국행 비행기를 탈지 모른다.

패터슨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살해 혐의 부인’이다. 어차피 피해자인 조중필씨를 살해한 범인은 한 명이기 때문에 ‘제3의 인물’을 등장시키기는 어렵다. 검찰에서 에드워드 리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자신은 혐의를 벗은 전력이 있다. 때문에 살인 혐의를 공범인 ‘에드워드 리’에게 떠넘기는 전략이다.

실제로 패터슨은 송환되는 날 기자들의 질문에 ‘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10월8일 열린 첫 공판 준비기일에 패터슨의 변호를 맡은 오병주 변호사가 “당시 범행은 리가 환각상태에서 저질렀으며, 이후 교묘하게 진술을 바꿔 패터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 번째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이다. ‘이미 확정 판결이 내려진 범죄 사건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심리 혹은 재판을 하지 않는다’는 형사법상의 원칙을 말한다. 패터슨 측은 “1997년 사건 발생 후 관련된 내용으로 수사와 재판도 받았고 복역도 했다”며 “다시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세 번째는 ‘공소시효’ 만료다. 패터슨이 미국으로 출국할 당시 검찰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것을 ‘도주’로 보고 공소시효가 정지됐다고 보는 반면, 패터슨 측은 도망간 것이 아니라 증거인멸죄로 복역을 마치고 출소해 정상적으로 떠난 것이며, 살인죄 공소시효(15년)는 이미 2011년에 완성됐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패터슨의 살인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한 번의 패착을 보여준 검찰에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전망이다.

검사 출신의 이민석 변호사는 “살인 사건에서는 초동수사가 아주 중요하다. 검사가 무혐의 판정을 했더라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기소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검사가 엉뚱한 사람을 기소해서 무죄가 나오니까 다시 새로운 사람을 기소한 것이다”며 “법정에서는 명확한 증거를 요구하는데, 18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소시효를 봐도 패터슨이 출국 당시 공항을 통해 수속을 받고 나간 것이어서 도피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패터슨 측에 비해 검찰의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 한 번 허점을 보였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검찰로서는 이번에는 명예회복과 자존심을 걸어야 하는 싸움이다. 만약 이번 재판에서도 살인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고, 또다시 무죄로 풀려나게 한다면 ‘무능과 오판’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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