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취미 없는 선수들 도박에 빠지다
  • 김수인 | 스포츠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10.29 14:49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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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들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

프로야구 원정도박의 원조는 재일동포 장명부(1983~86년 삼미-청보-빙그레, 작고)다. 그는 입단식 때 삼미 구단 사장으로부터 “내년에 30승을 거두면 1억원을 주겠다”는 구두 약속을 받고 1983년 시즌에 역사상 전무후무한 30승(16패 6세이브)을 올리며 꼴찌였던 팀을 일약 3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구단 사장이 구두 약속은 무효라며 지급을 거부하자 이후 야구를 등한시했고, 틈날 때마다 서울과 부산의 카지노를 드나들었다. 필자는 당시 프로야구 담당 기자였는데, 1986년 여름 어느 날 대전 홈구장 경기를 마치고 택시를 불러 서울 워커힐호텔 카지노로 가는 장명부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지금,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주전급 투수들이 해외 원정 도박 의혹으로 경찰 내사를 받고 있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프로농구 선수 11명이 불법 스포츠 도박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며 한국농구연맹으로부터 ‘기한부 출전 보류’ 처분을 받았다. 지난 5월에는 프로농구 안양 KGC의 전창진 감독이 지인들에게 거액을 빌려 불법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 베팅을 지시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2월21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한화와 삼성의 연습경기가 끝난 후 삼성 선수들이 모여 경기를 평가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2년에는 프로야구 LG 박현준, 2013년에는 프로농구 동부프로미 강동희 감독이 각각 승부 조작으로 영구 제명된 적이 있다. 프로축구·프로배구 선수들도 승부 조작 및 불법 도박으로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평범한 사회인 되지 못하는 운동 머신

프로스포츠계에서 왜 승부 조작과 거액 도박설이 끊이지 않을까. 승부 조작은 논외로 하고 현재 큰 물의를 빚고 있는 프로야구의 도박설을 파헤쳐보자. 삼성 라이온즈 선수 외에 다른 구단의 일부 선수들도 해외 전지훈련 중 카지노나 파친코, 인터넷 도박 등 크고 작은 도박에 연루돼 마음이 편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삼성 라이온즈 투수들의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 주전급 투수라면 연봉이 2억원을 넘는다.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을 터뜨리면 일반인이 평생 벌기도 힘든 40억~80억원의 거액을 일시에 만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선수 생명뿐 아니라 일생을 망칠 수 있는 ‘구렁텅이’로 빠져들기도 한다.

1980~90년대에는 원정팀 숙소에서 화투나 카드놀이를 하는 게 전부였다면 인터넷이 발달하면서부터 선수들은 숙소에서 혼자 은밀하게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에 빠져들었다. 온라인 도박에서 돈 따는 재미를 느끼게 되자 충동적이며 짜릿한 불법 도박 사이트와 카지노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프로 선수들이 끊임없이 도박 사건을 일으키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해 인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탓이다. 선수들은 초등학교 3~4학년부터 특기자가 돼 수업을 등한시하고 훈련과 경기에만 몰두하는 ‘운동 머신’이 돼야 한다. 그러다 보니 판단력이 흐려지고 순간적인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 이런 작은 실수로 미래는 바뀐다. 과거 24세 기대주였던 LG 박현준은 브로커에게 단 500만원을 받고 영구 제명돼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협약을 맺은 미국이나 일본, 대만 리그에서도 뛰지 못하고 결국 도미니칸 리그에서 재기에 몸부림치고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대한야구협회는 2011년부터 선수들이 오전 수업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주말리그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부도 안 되고 대형 선수도 길러내지 못하는 ‘죽도 밥도 아닌 제도’라는 게 현장 지도자들의 볼멘소리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 선수가 정규 수업을 받고 과외 시간에 야구 특별활동을 하는 미국·일본식 시스템을 철저히 실천해야 이들이 사회에 나오는 10년 후 정상적인 판단력과 사고력을 갖춘 스포츠맨이 될 수 있다.

1982년 12월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와 입단계약을 체결한 장명부 선수. ⓒ 연합뉴스

경기력에 영향 미치는 술보다 도박이 낫다?

시간적 여유가 의외로 많은 것도 도박에 빠지는 이유다. 원정 숙소에서 룸메이트만 간섭하지 않는다면 마음 놓고 새벽 2~3시까지 ‘쩐의 전쟁’에 푹 빠질 수 있다. 정규 시즌 중 2~3일에 한 번씩 경기를 치르는 농구·축구·배구 선수들은 더욱 쉽게 도박과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

2000년대 들어 급상승한 연봉도 원인 중 하나다. 올해 프로야구 각 팀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대부분 1억원이 넘는다. 삼성이 1억5876만원으로 1위며 10개 팀 중 7개 팀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1억원 이상이다. 여기에 승리수당 등 인센티브로 받는 돈의 경우 상위팀 선수는 한 해 1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5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자기 부유해지다 보니 유혹도 많아진다. 선수들은 경기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술이나 여자보다는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도박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주전 경쟁과 강한 훈련으로 쉴 새 없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이런 도박의 재미는 탈출구로 여겨지고 큰 죄의식 없이 즐기게 된다.

그러면 도박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대책은 없는 것일까. 프로스포츠계는 도박이나 승부 조작에 연루될 경우 영구 제명을 시키는 등 최근 초강수 대책을 내놓았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프로야구의 경우 시즌 초에 매년 현역 부장검사를 초빙해 강도 높은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효과는 크게 없는 셈이다.

자율이 안 된다면? 결국 타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5월 CCTV를 통해 선수들의 원정 숙소 출입을 감시하는 것에 대해 롯데 선수들이 집단 항명 사태를 일으켜 구단 간부와 코치가 해임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여론은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는 선수 편이었지만, 술에 취해 새벽 5시에 들어오는 선수를 체크하는 구단의 행위를 비난할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다.

보통 프로야구 선수들은 비시즌 중 재활이나 개인여행 등으로 해외에 나갈 때 반드시 구단과 KBO에 통보하게 돼 있다. 일본이나 미국은 몰라도 마카오나 홍콩이라면 구단에서 사유를 물었어야 했다. 만약 삼성 구단에서 투수들 행선지를 보고받고 출국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원정 도박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려서부터 정상적인 교육을 받게 해 운동선수를 ‘평균 사회인’으로 육성하는 것,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교육과 캠페인 등을 집중적으로 실행해야만 프로 선수들의 도박이 발본색원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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