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비리 척결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5.10.29 15:27
  • 호수 13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의 부정·비리는 뿌리 깊은 ‘사업’

건군 이래 지금까지 군(軍) 안팎에서는 온갖 부정·비리가 난무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보안이라는 이름 아래 묻혀왔다. 특히 대규모 부정·비리일수록 그랬다. 군의 사기를 떨어뜨려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이적(利敵)논리로 어물쩍 넘어갔다. 군의 부정·비리를 얘기하면 흔히 군수(軍需) 부문을 쳐다보지만 그렇지 않다. 인사 쪽도 만만치 않다. 승진이나 보직을 둘러싸고 수천만 원이 오간 사례도 심심찮았다. 대개 쉬쉬하며 관련자 문책으로 끝나기 일쑤였기 때문일 따름이다.

아무튼 군 관련 비리의 대종(大宗)을 차지하는 군수 부문엔 한국 사회 부정·비리의 원조 격인 것들도 상당하다. 양식·부식·피복·유류·의약품 등 어느 품목이건 ‘빼돌리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하기야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품은 소비재 유통의 중심을 이뤘다. 미국의 원조 물자 판매대금인 대충자금이 재정의 중요 기반일 당시였기에 더욱 그랬다.

검사 16명에 100여 요원으로 구성된 매머드 방산 비리 합동수사단이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에 차려졌다. 그간 지지부진했으나 최근 들어 해군참모총장 출신 최윤희 전 합참의장에 대한 수사를 벌이는 등 활기를 띠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960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다. 아프리카 국가들보다도 못한 최빈국이었다. 60만 병력이 사용할 물자를 2500만 국민이 ‘나눠 쓰는’ 가운데 군수 부정·비리는 광범위하게 자행됐다. 규모와 정도는 대략 계급·직책에 비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사병들이 늘 배를 곯고, 그나마 나온 고깃국을 고기 냄새만 풍긴다고 해서 ‘도강탕’이라고 불렀던 것도 그래서였다. 보급품에 입질을 하는 부류가 너무 많고 빈번했기 때문이다. 감사 대비로 앞쪽에는 휘발유가 든 드럼통을 쌓아놓고 뒷부분 통에는 물을 채워놓았던 것도 그 시절 얘기다. 민수용과 구별하기 위해 휘발유에 색소를 첨가하는 등 부정 방지를 위한 당국의 노력도 다각적으로 이뤄졌지만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빗나간 의식이 만연했기에 별무소용이었다. 물자 빼돌리는 잔머리만 잔뜩 발달했었다. 군용 지프의 차대를 낮춰 엔진룸에 쌀 한 가마니 넣을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운행 기록을 조작해 기름을 빼돌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사단장·연대장이 ‘판매+자택용’ 기름을 실어갔으니 부하들의 부정을 나무랄 계제도 못 됐다. 수도권을 관할하는 6관구 최대 보급품 기지인 영등포역 담당 장교 출신이 열차를 통째로 해먹은 무용담은 알 만한 이는 아는 얘기다. 해안 초계를 나간 함정의 함장이 섬 그늘에 배를 정박시키고는 예상 소요량만큼 ‘남은 기름’을 업자들에게 처분하기도 했다. 자체적으로 물자를 ‘생산’해 수입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부대 주변의 나무로 숯을 구워 판매하는 게 그것이다. 1950년대 후반 K 중령의 군단장 피격 사건도 그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황당한 사건이다.

군수물자를 둘러싼 부정·비리는 관계자 자신의 사욕에 더해 돈벌이에 혈안이 된 외부 업자나 손을 벌리는 정치권 등 한국 사회의 못된 행태와 맞물려 있음은 물론이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군의 부정·비리도 전기를 맞는다. 부패 척결을 혁명 공약으로 내건 군부가 등장하면서 잠시 멈칫하긴 했다. 하지만 (한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군이 득세하면서 오히려 규모나 내용 면에서는 더 커지고 나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PX(군부대 매점: 공군에선 BX) 사업이나 병역 면탈 등과 관련한 뒷돈 거래 등 비리도 많이 줄어들었다면서 달라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온갖 수법 총동원된 물자 빼돌리기

군의 부정·비리가 시비되면 육·해·공 3군 간의 떠넘기기도 불붙는다. 해·공군의 손가락은 육군으로 향한다. 머릿수만으로도 65만 군대의 80%를 점하는(52만) 육군이 중심이라는 것이다(해군은 해병대 2만7000명 포함 6만8000명, 공군은 6만5000명). 기무나 조달도 단일 부대로 통합하면서 육군이 장악했고, 방위산업도 결국은 육군 주도가 아니었느냐는 반문이다. 특히 몰매를 많이 맞은 해군의 반감은 거세다.

“수병(해군 사병)은 함정 근무라는 업무의 특성상 복식 등도 육군과 다르다. 그런데 광택 버클을 무광택으로, 긴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넥타이를 바람막이 천으로, 단화를 워커로 바꾸도록 했다. 하나하나가 조난 시 구조나 근무 능률을 높이기 위함인데도 짧은 육군의 시각에서 판단했다. 사병 주제에 건방져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육군 출신 대통령이 못 알아본다고 만국 공통인 해군 제독 계급장 표시에 별을 추가토록 해 웃음거리가 되게 만들었다.”

해군 측의 지적에 육군 쪽은 발끈한다. “장군(제독) 인사 때 잡음이 유독 끊이지 않는 게 저들이 아닌가. 전문성이 요구된다며 독자성을 강조하더니 결과는 어땠나. 고기잡이용 소나를 고성능 탐지기로 둔갑이나 시키고. 초기 구축함 사업 때의 실수는 그렇다 하고, 우수 장비를 장착한다며 레이더·포탑·포신 등을 영국·벨기에·이탈리아제 등으로 제각기 조립해 성능 발휘를 못하도록 하지 않았나.” 이에 해군의 반격이 이어진다. “초창기 우리 기술로 진수한 구축함이 속도를 내면서 앞쪽이 들렸다. 우리 수준이 그랬다. 레미콘을 쑤셔넣어 간신히 균형을 잡은 적도 있다. 기술 부족이 어디 해군뿐인가. 시험 발사한 미사일이 중간에 추락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 한국형 전차의 무한궤도가 벗겨진다고 우리가 시비한 적이 있나.”

율곡사업 특감도 20년 흑막의 핵심은 못 밝혀

공군도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FX 사업)과 관련해 눈총이 쏠리자 매우 불쾌한 표정들이다. 특히 1990년대 초 제1차 FX 사업 때도 시끄럽더니 또 그렇다는 식의 비난이 거슬리는 것이다. “당시 공군은 F/A18을 원했다. 그런데 윗선에서 이를 F16으로 변경했다.  F/A18을 고집하던 공군참모총장을 퇴역시키면서. 이런 번복 결정은 누가 했나. 육군 출신 대통령과 역시 육군 출신의 이종구·이상훈 국방부장관이었다. 후임 한주석 공군 총장이 기종 변경 과정의 문제로 사법처리됐지만 장관 두 사람도 처벌됐다. 현재의 FX 사업도 누가 보더라도 공군의 일이지만 방위사업청 실무 책임자는 육군이다.”

이렇듯 군 관련 부정·비리 논쟁 대상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양곡·유류·의약품 횡령이나  군공사 입찰 부정 등 ‘조무라기’였다면 지금은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대의 무기 선정·도입과 관련된 것들이다. 건설 리베이트보다 훨씬 높은 ‘요율’의 무기 거래 커미션이므로 검은돈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1조원의 10%만 해도 1000억원이다. 일단 선정되면 무기 제조사는 당장의 수익뿐 아니라 유지를 위한 부품 공급 과정에서 안정적 고수익이 보장되므로 채택이 관건이다. 커미션은 다음 문제다.

한국이 전력 증강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베트남 패망이 결정적 자극제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한국군 무기 및 장비 현대화 사업에 매달렸다. 율곡사업이다. 매년 국방 예산의 30~40%가 여기에 투입됐다.(2015년 기준 국방 예산은 GDP(국내총생산)의 2.1~2.4%, 전체 예산의 10% 수준인 37조6000억원으로 세계 12위)

이처럼 엄청난 국민 세금이 쓰였지만 내용이 밝혀진 적은 없다. 국가안보를 위함이라는 명분 아래 치외법권지대가 됐다. 감사원 감사는 언감생심이었고 국회 국정감사도 겉핥기였다. 이렇게 20여 년이 흘렀고, 그나마 흑막의 끄트머리나마 드러난 게 김영삼(YS) 대통령 시절이다. YS가 임명한 이회창 감사원장은 감사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며 율곡사업을 주목했다. 이 원장이  율곡사업에 메스를 들이댄 1993년에도 국방 예산의 31.6%인 2조9000여 억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해 4월에 시작된 율곡사업 특감은 70여 일간 계속됐다. 무기체계 선정·도입 과정에서 118건의 비위 사실 등이 적발됐고 업체의 부당 이익 수백억 원도 회수 조치됐다. 그러나 ‘있을 법’한 비리는 캐내지 못했다. 율곡사업 23개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막판 기종 변경 등으로 의혹이 집중됐던 FX 사업은 감사결과를 유보했다. 기종 변경을 최종 지시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했지만 변경은 자신의 정책 판단이라는 답변이 고작이었다. 감사원은 계좌추적 자료를 기초로 4성 장군 출신 4명 등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조사 하루 만에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영장 사유는 사건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이종구 전 장관은 건설 업체로부터 1억8000만원을, 이상훈 전 장관은 현대정공에서 3000만원을 받은 것 등이, 김철우 전 해군 총장은 무기 중개업체로부터 3억원, 한 전 총장은 대한항공 등으로부터 1억6000만원을 받았다는 게 이유였다. 단순 금품 거래로 종결된 것이다. 20년간 미사일·탱크·함정·전투기 개발과 도입에 쏟아 넣은 34조원에 대한 특감 결과치곤 싱거웠다.

무기 거래를 둘러싼 흑막을 파헤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안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원체 내밀하게 추진되는 데다 무기업체가 모두 우방과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쪽 ‘관계자’는 정치권과 군의 고위 실력자들인 탓이다. 한국군은 스페인과 인도네시아가 공동 개발한 CN235 수송기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는 사마란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선물로 보면 된다. 한때 국제 체육계를 좌지우지하던 사마란치 위원장은 스페인 출신이다. 감사원이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약식으로 마친 이유도 이런 것과 무관치 않다. 무기 중개상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박지원 의원(새정치연합)은 김대중 정부 시절 현대그룹으로부터 250억원의 비자금을 받아 한 무기중개상에게 맡긴 혐의로 검찰에 불려다녔는데, 그 중개상이 바로 율곡 특감 당시 헬리콥터 도입으로 조사 대상에 오른 김영환씨다.

웬만한 거래 한 건만 성사시키면 10년은 ‘놀고 먹어도’ 된다는 말이 정설처럼 돼 있는 것이 무기중개상의 세계다. 그만큼 수익 단위가 높다는 말이다. 이는 또 거래 성사를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뒷돈이 지불되는 것과 통한다. 이런 임무를 위해 많은 예비역 장성과 영관 장교들이 과거의 동료·후배들과 교유하고 있다. 무기 도입에 필수적인 이들 존재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검은 거래가 끼어든다는 데 있다. 2억원짜리 성능 미달 음파탐지기를 40억원짜리 고성능으로 둔갑시킨 통영함 납품 비리 등 부적절한 무기와 장비를 비싼 가격에 도입하는 것도 그간의 ‘거래’에서 비롯한 특수 관계의 결과다.

빼어난 미모와 언변으로 YS 시절 정·군계를 뒤흔든 린다 김이라는 여성은 무기중개상의 실체·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와 정사를 가졌다고 실토하기도 했던 이양호 당시 국방부장관은 경전투헬기 사업과 관련해 대우중공업으로부터 1억5000만원을 받은 죄로 구속됐다. YS 집권에 일조했던 금진호 전 장관이나 정종택 전 장관, 최 아무개 전 장관, 황명수 전 국회부의장 등 그녀 때문에 스타일 구긴 인사는 한둘이 아니다. 이스라엘 IAI 로비스트, 무기중개업체 IMCL·PDT 등을 설립해 활약하던 린다 김은 이 전 장관 등으로부터 무인항공기 사업계획 등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처럼 군사기밀을 외국 무기업체에 유출하다 재판에 회부된 이는 적지 않다.

차기 한국 전투기 사업(KFX) 기종으로 선정된 록히드 마틴사의 F35. 록히드 마틴은 F16 제조사이기도 하다. ⓒ Xinhua

얽히고설킨 ‘군피아’…방사청 체제부터 고쳐야   

국방의 핵심 과제의 하나인 무기 도입 부문 근무자 대다수는 이런 세간의 억측과 색안경이 불만스러울 수 있다. 율곡사업 특감으로 징계 통보를 받았던 김성섭 당시 국방부 획득개발국장은 “무기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감사관들은 다른 장비를 단순 비교해 왜 값싼 장비를 구입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비용 대 효과, 미군 장비와의 호환성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데 예산만 따졌다”고 술회했다. 김 국장 등은 결국 징계에서 벗어났는데 연이어 터지는 방산 비리는 순수한 이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지난해 11월 검사 16명을 포함해 100명이 넘는 거대 조직으로 방산 비리 합동수사단이 출범했다. 그러나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 방산 비리를 없애겠다며 2006년 발족한 방사청 자체가 얽히고설킨 ‘군피아’ 아류기 때문이다. 사실 그간 기무사 등이 적발해낸 방산 관련 부정도 경쟁에서 떨어진 상대 무기업체나 중개상의 제보에 힘입은 바 컸다.

진급 기대 가능성이 작은 소장과 육군 4명, 해·공군 각 3명의 준장들이 중추 역할을 하는 방사청의 구성도 의아스럽다. KFX사업은 8조6700억원을 들여 낡은 F4와 F5기의 대체 전투기를 개발하는 방대한 플랜을 육군 준장이 지휘하는 한국형 항공기 개발단의 1개 사업단이 관장한다. 부정·비리 시비와는 별개로 지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때 터져 나온 핵심 기술 이전 거부 소동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안이하고, 한편으론 물정을 모르니 걱정이 따르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