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시도교육청, 누리과정 예산 ‘떠넘기기’
  • 이민우 기자 (woo@sisabiz.com)
  • 승인 2015.11.0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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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예산 편성 ‘0’원...영·유아 무상보육 중단될 판
장휘국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을 비롯한 각 시·도교육감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16년 누리과정 예산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5.10.28/뉴스1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누리과정(3~5세 영·유아 무상보육) 사업이 내년 예산안 심사의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와 시·도교육청은 서로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할 수 없다며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다.

예산안 심사를 진행 중인 국회에서도 교부금으로 충당하라는 정부·여당과 전액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야당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해와 같이 예산안 심사가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일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충북, 전북, 세종 등 4개 시·도교육청은 내년 예산안에 누리과정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교육청들도 예산안 제출 기한(11일)을 앞두고 막판 고심하고 있다. 지난달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2016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다.

시·도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는 것은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누리과정에 쓴 예산은 모두 3조8209억원이다. 경기교육청의 경우 누리과정 예산이 인건비를 제외한 본예산 총액의 29.2%를 차지할 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내년 전국의 누리과정 예산은 올해보다 늘어 3조8668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교육부 예산을 올해보다 4.45% 증액한 55조7299억원을 편성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누리과정 예산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0원’이다. 누리과정 예산은 전액 지방재정교부금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9월 누리과정 예산안을 시·도교육청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하는 관련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현행 법령체계에 따르면 어린이집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보육기관’이다. 유치원은 교육부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각각 관할한다. 때문에 교육감들은 교부금으로 어린이집까지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시·도교육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예산의 90%를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리과정 예산 부담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반발한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이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정부와 17개 시·도 교육청의 갈등은 예산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국회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여야는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놓고 팽팽한 대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누리과정 예산 반영을 예산안 심사의 핵심 과제로 꼽고, 관련 예산 2조3836억원을 전액 국고로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리과정 보육료 2조원과 지방채 발행에 따른 이자 지원 3836억원을 합한 액수다.

반면 새누리당은 지방교부금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정부와 박자를 맞추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0~5세 영·유아의 보육과 육아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누리과정 사업이 좌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전국 교육감들이 누리과정 예산을 떠넘기며 끝까지 편성하지 않을 경우 보육료 지원이 중단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다만 2013년이나 2014년과 마찬가지로 막판 타협점을 찾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에는 예비비 투입과 지방채 이자 지원으로, 2013년에는 ‘특성화고교 장학금’이란 명목으로 예산을 편성해 부족분 일부를 메워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땜질 처방만 해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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