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꺾은 카슨 돌풍 “심상찮다”
  • 김원식│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1.10 15:44
  • 호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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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입지전적 인물 ‘벤 카슨’, 공화당 대선 후보로 트럼프 앞질러
9월1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시미밸리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 후보 2차 TV토론 당시 트럼프(오른쪽)와 카슨. © 연합뉴스

“불과 5개월 전만 하더라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제 공화당 대선 레이스는 아웃사이더(outsider)의 판이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판이 다시 주류(mainstream)로 흘러갈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최근 미국 2016년 대선 레이스에서 부동산 재벌이자 막말의 대명사로 불리던 도널드 트럼프의 돌풍에 이어 이제는 거의 예상하지 못했던 신경외과 의사 출신인 벤 카슨(62)의 뒤집기가 이어지자, 미국의 한 대선 전문가가 내뱉은 말이다. 지난 6월24일 이른바 부시 가문의 후보인 젭 부시 전(前) 플로리다 주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젭 부시가 15%를 얻고 도널드 트럼프가 11%, 벤 카슨이 10%를 얻자 대다수 전문가는 젭 부시가 공화당의 대세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몰아친 트럼프 열풍은 모든 후보를 압도하며 광폭하게 이어졌다. 오히려 트럼프 대세론이 힘을 얻을 만큼 강력했다.

벤 카슨 지지율 29%로 트럼프보다 앞서

그런데 이제 트럼프 대세론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 10월27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 처음으로 벤 카슨이 26%의 지지율을 얻어 22%에 그친 트럼프를 따돌렸다. 이후 11월2일 발표된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카슨은 29%의 지지율을 얻어 23%를 획득한 트럼프를 제쳤다. 공화당 주류 정치인 출신 후보들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11%,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10%,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8%에 그쳤다. 한때 거의 모든 전문가가 부시 가문의 영향으로 대세론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젭 부시는 11월3일 발표된 지지율에서도 다시 7%로 하락하는 등 끝없는 추락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로부터 “차라리 중도 사퇴하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대선을 주도해서 치러야 하는 공화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정통 정치인은 한 명도 남지 않고 잘못하다가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카슨과 트럼프 두 아웃사이더의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으로 안절부절못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기존 정치인에게 염증을 느낀 공화당 지지자들이 막말을 해가며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트럼프에게 열광해 낭패를 볼 위기에 처한 공화당 지도부에게 반전의 선물을 선사한 후보가 정통 정치인 출신이 아닌 또 한 명의 정치 아웃사이더 벤 카슨이라는 점에서 공화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도긴개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기행(奇行)과 강력한 막말에 이끌린 공화당 유권자들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공화당 ‘본류(mainstream)’로 돌아올 것이라던 기대를 카슨이 고스란히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트럼프가 뜨지 않았다면 카슨도 뜨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즉 트럼프의 튀는 행보와 과격한 말투에 거부감을 느낀 공화당 지지자들이 그래도 다소 정제된 목소리로 정통 공화당 정책을 추구하는 카슨 후보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것이 대선분석가들의 평가다.

특히, 트럼프의 막말과 기행이 당장은 공화당 골수 지지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줄지는 모르지만, 그가 과연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있느냐는 의문이 커지면서 카슨에 대한 지지율이 반대급부로 급상승하고 있는 형국이다. 카슨은 확고한 낙태 반대는 물론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정책인 ‘오바마 케어’ ‘이란 핵합의’ 그리고 ‘동성결혼 합법화’ 등에 선명한 반대 각을 세우면서 러시아나 이란, 중국 등에 대해 더욱 강경한 외교정책을 약속해 공화당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율이 부상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출신이나 경력 자체가 기존 정치인들과 비교가 되는 자수성가형 성공 사례의 하나라는 점이다.

카슨, 힐러리와 가상 대결 ‘막상막하’

벤 카슨은 디트로이트 빈민가 출신으로 예일 대학 심리학과를 거쳐 미시간 대학에서 의학 박사가 된 후 33세 때 존스홉킨스 병원 소아신경외과 최연소 과장이 됐다.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하면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카슨은 오늘날 자신을 있게 만든 주인공은 자신의 싱글맘인 소냐 카슨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13세에 결혼했다가 이혼한 소냐 카슨은 디트로이트 빈민가 외곽에서 하루 18시간 막노동을 하면서도 자식은 제대로 키우겠다며 열정을 다했다. 카슨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중 원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두번 보려면 책을 두 권 읽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르다 우연히 책에 재미를 붙여 서서히 우등생으로 변모했다고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다. 그는 자서전에서 친구의 놀림에 격분해 칼로 친구를 찔러 범죄자가 될 뻔했으나 다행히 칼이 친구의 허리띠에 걸려 부러지는 바람에 범죄자 신세를 면했다며 이후 “사람을 죽이는 손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손을 갖고 싶다”고 다짐하고 의사의 길을 택했다고 밝혔다. 이후 2009년에는 의료계에서 성공 신화를 쓴 그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그에 대한 인지도는 더욱 치솟았다.

특히, 지난 2012년에는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실시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설문조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프란치스코 교황,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빌리 그레이엄 목사,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스티븐 호킹, 빌 게이츠와 함께 공동 6위에 올라 높은 인지도를 과시했다. 또한 2013년 6월 의료계를 은퇴한 후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면전에서 오바마의 핵심 정책인 ‘오바마 케어’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막말을 불사하며 공화당 강경파인 ‘티파티’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 벤 카슨은 동성결혼과 낙태 등에 반대하는 확고한 입장을 천명하면서 공화당 정통 보수파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것이 최근 그가 부상한 또 다른 원동력 중 하나로 꼽힌다. 카슨이 특히, 자신의 캠페인 정책의 최우선으로 낙태 반대를 주장하며 최근 “낙태를 인정하는 것은 과거 노예제도 시절 소유주에게 노예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트럼프가 과격한 선동적 발언으로 공화당 강경파와 일부 온건파의 지지를 얻고 있다면, 카슨은 나름의 확고한 보수 정책으로 다진 정통 보수파의 지지를 기반으로 온건파의 지지를 얻고 있는 셈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카슨의 본선 경쟁력이 트럼프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 그가 트럼프를 누르고 대세론을 이어 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확고한 대선 주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과의 가상 대결에서 트럼프(50%대 42%)를 비롯한 모든 다른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패배했지만, 카슨은 47% 대 47%로 비겨 본선 경쟁력에서도 앞섰다. 특히, 공화·민주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부동층에서는 카슨이 힐러리에 47% 대 34%로 13%포인트나 앞서, 현실적으로 그가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확고히 자리 잡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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