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女 등산객’ 노린다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5.11.11 16:31
  • 호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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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산 살인 사건’ 미궁으로 빠져…등산로, 강력범죄 안전지대 아니다

가을이 절정에 달했다. 산에는 형형색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금만 발품을 들인다면 더 다채로운 빛깔을 만날 수 있다.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려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혼자만의 가을을 즐기려는 여성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등산로를 홀로 오르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범죄자들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경남 창원시 마산에서 홀로 등산하던 50대 여성

이 사진은 특정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시사저널 임준선

이 살해됐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지금까지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자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무학산(舞鶴山, 해발 762m)은 창원시 마산 회원구와 합포구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학이 춤추는 듯 날개를 펴고 나는 형세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세는 전체적으로 경사가 급한 편이다.

피해자인 이 아무개씨(51·여)가 무학산 등산을 위해 집을 나선 것은 10월28일이다. 이씨가 이날 오전 11시15분쯤 원계마을 입구에 차량을 주차하고 산에 오르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오후 1시10분쯤에는 산 정상에서 남편에게 ‘내려간다’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 후 연락이 두절됐다. 이씨가 올라간 등산로는 평일에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길이다.

하산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이씨의 남편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오후 5시쯤에는 아내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 귀가 시간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좀 더’ ‘좀 더’ 하면서 기다렸지만 밤이 깊어 가는데도 이씨는 귀가하지 않았다. 휴대폰 연락도 되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남편은 저녁 9시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병력을 동원해 등산로 일대 수색에 나섰지만 헛수고였다. 다음 날인 29일 다시 수색을 재개했고, 오후 3시40분쯤 무학산 정상 인근 6부 능선 등산로에서 이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루봉 아래 벤치 3개가 있는 지점에서 밑으로 약 50m 지점이다. 시신은 눈에 잘 띄지 않게 나뭇잎과 흙으로 덮여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부검을 통해 이씨의 사망 원인을 뇌출혈의 일종인 ‘지주막하출혈’로 추정했다. 경찰은 이씨가 범인의 발에 머리를 심하게 밟혀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발견 당시 이씨의 하의 일부가 벗겨져 있었지만, 국과수 부검 결과 성폭행 흔적은 없는 것으로 나왔다. 국과수는 이씨의 사망 추정 시간을 실종 당일인 28일 오후 2시로 특정했다.

경찰이 배포한 전단.

우발적 살인보다 계획적 범행에 무게

경찰은 이씨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우선 등산로 입구와 정상에 설치된 CCTV를 확보해 분석했다. 사건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무학산 정상 CCTV에 이씨의 행적 일부가 찍힌 것도 확인했지만, 사건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찰은 목격자를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수사본부의 형사를 총동원해 등산객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유력한 목격자나 제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때 등산객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남성 2명에 대해 당일 행적 등을 조사했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5일째인 11월2일 제보 전단을 배포하고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이씨를 누가, 왜 살해한 것일까. 이번 사건의 의문점은 크게 5가지다.

첫째, 범인의 정체는 누구일까. 지금까지의 정황상 범인은 평소 무학산을 자주 오르내리던 등산객일 가능성이 크다. 경찰이 무학산에 설치된 CCTV를 확보해 분석했지만 범인으로 특정할 수 있는 수상한 사람은 없었다. 또 사건이 일어난 시간대가 평일 오후 2시 전후로 다른 등산객의 눈에 띌 만한 시간이지만, 아직까지 목격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범인이 CCTV 위치나 등산로 중 인적이 드문 곳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발적이기보다는 혼자 있는 여성 등산객을 노린 계획적인 범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둘째, 범행 목적은 ‘돈’이 아니었다. 만약 범인이 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면 범행 장소로 ‘산’을 택했을 리가 없다. 등산객들은 돈을 많이 갖고 다니지 않는다. 이씨의 경우도 등산할 때 지갑을 집에 두고 나왔다.

셋째, 피해자 이씨의 휴대폰 행방이 묘연하다. 이씨의 소지품 중에 ‘휴대폰’이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은 케이스만 현장에 버린 후 휴대폰은 갖고 사라졌다. 위치추적 결과, 경남 함안군 일대에서 휴대폰 전원이 꺼졌다. 마산에서 함안까지는 10㎞가 넘는다. 범인은 이씨 휴대폰을 곧바로 버리거나 끄지 않았다. 이것은 범인이 자신의 동선을 혼동시키기 위한 계산일 수 있다. 이씨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후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산을 내려왔다가 전원이 꺼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껐을 수도 있다.

넷째, 범인은 범행 당시 맨손이 아니었다. 범행 현장이나 피해자의 의복, 소지품 등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이 장갑을 끼고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다섯째, 지금까지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용의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무학산은 해발 762m로, 백두대간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최고봉으로 불린다. 크고 작은 능선과 여러 갈래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행 시간은 보통 3~4시간이 소요된다. 등산로도 여러 갈래다. 그만큼 범인을 찾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사건 당시 평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주말에 비해 등산객 숫자도 현저히 적었을 것이다.

이런 의문점을 종합하면 범인은 무학산을 자주 등산했었고, 등산로 등의 지리를 잘 알고 있다. 범행의 목적은 돈이 아니었고, 범행 후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우발적이기보다는 계획적으로 ‘나 홀로 등산 여성’을 노렸을 수 있다. 입산할 때와 하산할 때의 복장이 다를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마산 동부경찰서는 “사건 당일 오후 2시를 전후해 인근 등산로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거나 급히 이동하는 남성을 본 목격자의 제보를 기다린다”며 목격자를 애타게 찾고 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무학산은 전국에서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었다. 이번 사건으로 유명 산의 등산로 또한 강력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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