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약초꾼의 아들 그는 사이코패스인가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프로파일러) (.)
  • 승인 2015.11.19 19:35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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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이어 여동생까지 살해 혐의 여동생에게 건넨 감기약·음료수에서 청산가리 발견

*시사저널은 절찬리에 연재 중이던 배상훈 교수의 <범인과의 대화> 마지막 화(제16화)를 1360호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그러자 연재 재개를 요청하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쇄도했습니다. 이에 1361호부터 <범인과의 대화>를 다시 싣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 주>

2015년 5월 충북 제천에서 50대 B씨가 갑작스레 사망했다. 연이어 9월에는 B씨의 딸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약초를 캐는 약초꾼이던 B씨는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집 안방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그가 사망했을 당시 외부 침입 흔적이나 눈에 띄는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경찰은 별다른 수사는 물론 부검도 없이 단순 돌연사로 처리해버렸다. 그렇지만 B씨의 주변인들은 그가 평소 매우 건강했었고 늘 의욕적이었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죽었다는 점에 상당한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 일러스트 오상민

“청산가리 얼마나 먹어야 사람이 죽나”

그런 의문에 대해 그의 아들 A씨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에 대해 경찰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A씨는 아버지가 죽기 전 금은 세공인으로부터 ‘청산가리’를 구입했고, 아버지가 죽은 3일 후에는 금은방에서 무려 60돈이 넘는 금붙이를 구입했다. 아버지 상중에 사치스러운 행동을 하고 다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에서 났을까. 그 돈은 바로 아버지의 사망보험금 7000만원이었다.

이 사건이 있고 난 후 4개월이 지난 9월 울산에 사는 B씨의 딸, 즉 A씨의 여동생 C씨가 사망했다. 울산에서 네일아트 가게에 취업해 있던 C씨가 자신의 원룸에서 급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이 죽음 역시 아버지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A씨의 아버지와 여동생이 4개월 간격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사망한 것이다. 이번에는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벌였고, 10월19일 A씨는 여동생 살해 용의자로 전격 체포됐다. 경찰이 여동생의 방 안을 수색하던 중 감기약과 음료수를 발견해 국과수에 분석 의뢰한 결과, 그 안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는 것이 확인됐다. 여동생은 누군가가 몰래 넣은 청산가리가 든 음료수를 먹고 살해당했던 것이다.

경찰이 A씨에게 혐의점을 두고 수사하던 중 A씨의 승용차 트렁크 안에서 여동생이 먹었던 것과 동일한 청산가리가 발견됐다. 또 A씨의 행적을 조사한 결과, 여동생이 죽기 하루 전날 울산까지 찾아와 여동생을 만났고, 여동생에게 감기약과 음료수를 건네준 사람도 바로 오빠 A씨였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A씨는 이런 살인 혐의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고, 자신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정황과 증거들은 A씨가 여동생을 살해했다는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또 4개월 전 사망한 아버지도 A씨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수사에 미온적이던 경찰도 여동생 사망 사건을 계기로 다시 수사를 벌였고, A씨가 아버지 역시 살해했을 것이라는 여러 정황들을 확인했다. 4개월 전 아버지가 사망하기 하루 전날에 A씨는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지만, A씨의 휴대폰 발신 추적을 통해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 앞에서 전화 통화를 두 번이나 한 내역이 확인된 것이다.

A씨가 전화통화를 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청산가리 판매업자였다고 한다. A씨는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 부근에서 금은 세공인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 내용이 “청산가리를 얼마나 먹어야 사람이 죽을 수가 있느냐”라는 질문이었다. A씨는 이미 청산가리 판매업자로부터 다량의 청산가리를 구입했고, 아버지가 죽기 하루 전날에 청산가리의 치사량에 대해 물어봤던 것이다. 경찰은 아버지가 사망했을 당시 방 안에서 발견된 음료수 병에 A씨가 청산가리를 넣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9월에는 A씨가 울산으로 가서 자신의 여동생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여동생이 감기에 걸렸다고 말하자 A씨는 감기약과 음료수를 건네주며 “이 약을 먹으면 속이 편해지고 금방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여동생에게 A씨는 재차 전화를 걸어 자신이 건네준 약과 음료수를 먹으라고 말했는데, 결국 여동생은 오빠가 준 약과 음료수를 먹고 난 후에 갑자기 사망했다.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자신의 여자친구가 사망한 데 대한 의문을 품고 경찰에 신고를 했고 여동생의 원룸에서 감기약과 음료수가 발견됐다. 그리고 여동생이 마신 음료수에 든 청산가리와 동일한 성분의 청산가리가 A씨의 승용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것이다.

아버지·여동생·아내 명의로 사망보험 가입

A씨는 휴대폰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월세가 7개월이나 밀렸을 정도로 운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장사가 안되는 것은 물론 임대료까지 너무 밀려 현재 휴업 상태다. 여기에다 A씨는 사설 도박에 깊숙이 빠져 있었는데, 올해 도박으로 진 빚이 무려 2억7000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2월 A씨가 자신의 가족 세 사람 명의로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아버지 명의로 7000만원, 여동생 명의로 1억원, 아내 명의로 5억원의 사망보험에 가입했던 것이다.

A씨는 아버지가 죽자마자 아버지 사망보험금 7000만원을 수령해갔다고 한다. 그런데 9월에 여동생이 사망하고 난 후에는 사망보험금을 수령하지 못했다. 여동생 사망보험금 1억원의 수령자가 A씨가 아니라 법정상속인인 어머니로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법을 잘 몰랐던 A씨가 보험 가입 당시 보험금 수령인을 ‘법정상속인’으로 지정했는데, 아버지 사망 시 법정상속인은 자신이었지만 여동생 사망 시 법정상속인은 어머니였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A씨는 계획에도 없던 어머니의 존재를 찾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집을 나간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A씨가 세 살 때 아버지와 이혼하고 집을 나갔다. 그 후 A씨는 어머니와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어머니의 소재 또한 모르고 지냈다. 그런 어머니에게로 보험금이 돌아가게 되자 A씨는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 어머니를 찾아다녔고, 어머니의 소재를 파악한 A씨는 어머니까지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A씨는 어머니를 살해하려고 한 그날 경찰에 검거됐다. A씨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족을 몰살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족의 폭력 방식 벤치마킹하며 성장

그런데 A씨의 범행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A씨는 5월15일쯤 감기에 걸린 아내에게 감기약을 줬는데, 약에서 매우 역한 냄새가 나자 A씨의 부인이 먹던 약을 모두 내뱉었다. 부인이 A씨에게 약에 뭘 넣었느냐고 추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A씨의 옷을 뒤져 청산가리를 찾아냈다고 한다. A씨는 부인 명의로도 사망보험에 가입했는데, 4개 보험사에 총 5억원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아버지를 죽이기 전에 이미 아내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고, 아내를 살해하기 위해 청산가리가 든 감기약을 준비해뒀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A씨의 범죄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그가 자신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을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회용품으로 생각하는 일종의 사이코패스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필자도 그의 행태적인 측면만 봐서는 그런 성향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렇지만 단정적으로 사이코패스라고 하기에는 뚜렷하게 드러난 정황이 별로 없다. 어머니가 남매를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 정도다. 일각에서는 아버지도 남매를 버리고 떠났다는 점을 거론하기도 했는데 그 점은 명확하지가 않다.

여동생과의 친소(親疏) 관계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떤 언론에서는 매우 친밀했다고 하고 또 다른 언론에서는 별로 왕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A씨가 이 사건 이전부터 외톨이였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그가 이 사건 이전에 비슷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번 사건에 비춰볼 때 그런 성향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이 그를 이렇게 폭발하도록 만들었을까. 이 질문은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닌 듯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해 무엇이 그의 성향을 억눌렀을까.

사이코패스는 대부분 10대 청소년기 전후에 발현된다고 한다. 빠르면 10세 이전이고 늦으면 10대 후반 정도다. 아마도 A씨를 억눌렀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가족이 폭력적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적어도 방임과 폭력이 교차한다고 하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서구에서는 좀 더 일찍 발현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매우 폭력적인 기질이 한국 사회에서는 일정 정도 시기가 늦춰져 나타난다. 혈연 가족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거나 자신의 독립적인 가족을 가진 이후에 억눌렸던 기질이 급격하게 발현되는 것 같다. 물론 이 시기가 대부분의 경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때이고, 이 문제를 가장 쉽게 타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험사기를 떠올릴 수 있다. 특히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혈연 가족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이코패스가 가지는 반(反)사회성은 그 자체로 폭력 의존적이다. 정상적인 소통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극복하기 힘든 폭력 앞에서 본능적으로 숨죽이고 있다가 그런 폭력의 방식을 벤치마킹하면서 성장한다. 필자는 한국의 가족 환경 속에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존재들이 그 폭력성의 에너지를 깊숙이 축적했다가 일시에 분출하는 현상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가족 살인과 반사회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 축적된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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