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비밀] 왕족(Royalty)을 위한 충성(Loyalty)은 이제 없다
  • 구병철 | Mercer Korea 팀장 (.)
  • 승인 2015.11.19 19:45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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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측정의 대상이 아니라 끌어내야 하는 것

흔히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묻는 설문 중에 이런 문항이 있다. “우리 회사를 친구나 친척,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겠습니까?” 혹은 “향후 O년 내, 이직할 의도가 있습니까?” 이런 물음은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Engagement’, 우리말로 ‘몰입도’를 측정하는 질문이다. 이걸 더 자주 쓰는 표현으로 바꿔보자. 바로 직원들의 ‘충성심(Loyalty)’을 회사에서 무척 궁금해하는 것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더 확인하고 싶은 ‘충성심’

만약 당신이 그동안 이런 문항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매번 ‘보통’으로 답했다면 앞으로는 그러지 않는 게 좋다. “우리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받는 돈보다 더 열심히 계속 일하실 건가요?”라는 게 질문의 의도라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물론 알고 있다고 해도 솔직하게 답하기는 쉽지 않다. 회사는 직원들의 충성심이 어떤지 무척 궁금하고, 반면 직원들은 자신들의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 일러스트 서춘경

브라질에 ‘SEMCO’라는 회사가 있다. 선박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인데, 매년 매출 성장세가 놀랍도록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브라질 선박업계 평균 이직률(15%)에 비해 훨씬 낮은 1~2% 수준의 이직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직률 1%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직원 입장에서 나갈 이유가 거의 없는 회사라는 얘기다. 참고로 2014년 취업 포털 ‘사람인’이 이직률에 관한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결과를 보면 국내 기업들의 이직률은 두 자릿수였다. 대기업의 경우는 10% 이상이고 중소기업은 20%에 육박했다.

SEMCO에는 정해진 조직도가 없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업 목표도 없다. 대신 매년 구성원들이 협의해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목표와 개인별 업무를 결정한다. 그리고 직원들이 개인의 삶에 충실할 때 회사와 일에도 몰입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독특한 회사다. ‘Up’n down pay’ ‘Retire-A-Little’이라는 이름의 제도를 통해 자율적으로 업무 시간을 정하고 그만큼의 급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직원들이 퇴근한 시간 중 모자란 업무 시간은 퇴직한 직원들 중에서 원하는 사람들이 파트타임으로 채워서 일하는 선순환 체계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의 ‘SAS’라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역시 일하기 좋은 기업이다. 이 회사의 직원 관리 철학은 신뢰와 평등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이 공정하고 평등하게 대우받는다” “직장이란 즐거운 곳이어야 하고, 모든 직원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 회사에는 없는 것이 많다. 임원 전용 시설이 없고, 실적 평가가 없으며(정확하게는 평가 등급이 없다) 눈앞의 매출과 이익만 따르게 만드는 단기 인센티브가 없다. 대신 자율적인 업무 환경이 있고, 리더와 직원 사이 격 없는 대화가 있으며, 매년 순익의 15%를 직원 퇴직연금으로 적립하는 제도가 있다. 이 회사의 이직률은? 5%를 넘은 적이 없다.

앞서 예로 든 기업들에서 보듯 회사에 대한 직원의 충성심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지 측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충성심을 묻는 국내 기업들을 보면 이건 불안감의 또 다른 표현 같다. 예를 들어 기업들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불안해한다. 잘 대우해주고 싶은 직원이 있는데, 이 사람이 조만간 회사를 나갈 사람인지 모르겠다. 막상 나갈 사람이라면 잘해줘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을 하며 비용 효율성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왕이면 계속 있을 사람을 챙겨줘야 비용도 아깝지 않고 회사가 잘해줬다고 생색을 내기도 좋고, 그 효과도 오래간다고 생각한다.

‘조직문화 진단’이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할 경우 고객사의 직원 설문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고객사들 중에는 충성심 점수가 낮은 인력이 누군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이런 데이터를 준 적도 없다. 하지만 이런 요청이 종종 있다 보니 요즘은 이런 작업을 할 경우 아예 개인 식별이 불가능한 무작위 ID와 외부 서버 방식으로 설문을 진행하고 있다.

내 일과 내 삶에 대한 충성심은 몇 점인가?

회사뿐만 아니라 리더들 입장에서도 충성심은 매우 궁금한 항목이다. 왜냐하면 내 사람이 사라질까 봐 불안하니 확인하고 싶어진다. 다만 이건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리더 개인에 대한 충성심이다. 용맹했던 장수나 군주들도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하니, 자연스레 용맹한 부하가 필요하다. 대신 그 부하는 무조건 내 편이어야 하고 나의 뒤통수를 쳐서는 안 된다. 이런 부하들이 회사를 떠나며 사라지는 것은 곧 자신의 힘과 권력이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어서다. 흥미로운 점은 여전히 열정적이고 자신감 있는 리더들은 대체로 충성심에 덜 민감하며 아랫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같이 일하고 싶은 부하는 있기 마련이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많은 국내 기업이 직원들의 충성심을 이제는 다른 관점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하기 좋은 환경, 혹은 직원들의 몰입이라는 표현이 충성심이라는 단어보다 자주 쓰이고 있다. 기존처럼 맹목적인 충성이 회사의 성장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직원들도 평생 고용을 보장해주지 않는 회사에 인생을 바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왕족(Royalty)의 존속을 위해 충성(Loyalty)하는 시대는 점점 저물고 있으며, 이제 충성심은 측정의 대상이 아니라 회사가 노력해서 끌어내야 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하나 알아둬야 할 것. 회사가 진실하게 다가가면 직원들은 분명 답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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