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망론 2.0’의 시작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5.11.25 12:37
  • 호수 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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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총장, 북한 문제 일조 의지 강해”…지난 5월 개성공단 방문 좌절 이후 정부는 ‘한 발짝’ 물러선 모양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북한 당국과 방북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은 11월19일 “반기문 사무총장이 북한 방문을 위해 북한 당국과 실무 협의를 하고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반 총장의 방북 시도는 올해 들어서 두 번째다. 앞서 반 총장은 지난 5월21일 개성공단 방문을 추진했다. 그는 5월19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2015 세계교육포럼 개회식’에 참석한 후 기자회견에서 “5월21일 개성공단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다음 날인 5월20일 북한 측이 갑작스레 입국 불허를 통보하면서 무산됐다. 

반 총장의 방북 소식이 알려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연스럽게 ‘대권’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외교관 출신인 반 총장이 방북까지 할 경우, 최근 일고 있는 ‘반기문 대망론’에 더욱 탄력이 붙을 것이란 관측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과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려는 반 총장의 의지와, 냉담해진 북한과의 관계를 완화하기 위한 ‘당근’이 필요한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 취임 초기부터 방북 의지를 보인 반 총장의 성격상 ‘대권’보다는 ‘책임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다는 해석이다. 

© EPA연합

언론의 ‘방북 보도’ 이어지자 “논의 중” 시인

반 총장의 이번 북한행이 처음 언론에 보도된 것은 11월 중순이다. 연합뉴스는 11월16일 유엔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반 총장이 금주 안에 북한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고 처음 보도했다. 연합의 보도가 나오자마자 블룸버그와 AFP, 교도 등 세계 주요 통신사들도 잇따라 반 총장의 북한행을 알렸다. 블룸버그는 “최근 남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긴장 완화에 노력하는 가운데 반 총장의 방북이 결정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유엔 측의 반응은 모호했다. 반 총장의 방북 시점과 관련해 여러 보도가 이어졌음에도 방북 여부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보도가 된) 해당 시점에는 (북한에) 방문하지 않는다”고 말해 언론 보도가 틀리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만 인정했다. 
유엔이 확실한 답을 내놓지 않으면서 방북과 관련한 추측성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11월18일 중국 신화통신은 조선중앙통신사 관계자발로 반 총장이 11월23일부터 약 4일간 평양에 머무를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방문 시점과 기간까지 언론에 알려지자 유엔도 직접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11월18일(현지 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한반도 내에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평화와 안정을 증진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반 총장의 방북)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언론 보도처럼 시점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북한을 방문하려는 논의를 하고 있다는 점은 시인한 셈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9월26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청와대 교감’ 아닌 ‘유엔 사무총장 행보’ 분석

반 총장의 방북 얘기가 나오자 국내 정치권이 들썩였다. 연초부터 계속된 ‘반기문 대망론’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가 늘 초미의 관심사다 보니, 반 총장의 방북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와 일종의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와의 교감보다는 유엔이 단독으로 추진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도 유엔의 방북 추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반 총장의 방북 계획이 보도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처음 듣는 얘기”라고 밝혔다. 그는 또 청와대나 정부와의 교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것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이 단계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측근 그룹에서도 이번 방북은 철저히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추진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반 총장의 한 최측근 인사의 말이다. 

“반 총장은 외교부장관 시절부터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북핵과 인권 문제에 대해 늘 어떤 해결방안이 있을지 고민해왔다. 유엔 사무총장이 된 후에도 그런 고민을 계속 이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국제기구의 수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기 전에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마땅히 일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 반 총장은 2007년 1월 유엔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기 전부터 정부의 대북 인권정책에 변화를 가져왔다. 2006년 11월16일 당시 노무현 정부는 유엔 총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에 불참하거나 기권해오다가 처음으로 결의안 채택에 찬성한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결정에는 취임을 앞둔 반 총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이하원·안용균 기자가 쓴 책 <조용한 열정, 반기문>에 따르면, 반 총장은 2006년 9월 유엔 사무총장 당선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북한을) 유엔 사무총장의 입장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대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중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이번 방북에서는 국제 평화에 이바지해야 하는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의지와, 북한과의 관계를 완화할 필요성이 있는 정부의 이해가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의 방북이 성사돼 국제사회와 북한의 긴장이 완화될 경우, 남한과의 전향적인 대화도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유엔 수장으로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질서를 존중하면서 정상 국가로 나오는 데 있어 충분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데뷔시킬 수만 있어도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14년 2월28일 유엔본부에서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 대표를 만났다. ⓒ Xinhua 연합

‘반기문 대망론 2.0’의 시작

이번 방북 추진에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점에 무게가 실리고는 있지만, 반 총장과 관련한 ‘대망론’은 또다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반 총장이 외교 분야에 강점이 있고, 북한 문제를 잘 해결할 적임자로 꼽히고 있어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반기문 대망론 2.0’이 시작된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특히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박근혜 정권 입장에서 반 총장의 존재는 ‘정치적 카드’로 활용하기에 좋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여당 내 ‘김무성 대세론’을 견제할 수 있다. 또한 내년 4월 총선 이후 부상할 수 있는 비박계 잠룡들을 사전에 견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시사저널 제1356호 ‘반기문은 이미 대선 레이스에 올라섰다’ 참조> 특히 아무런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차기 대선 잠룡들을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다는 점이 반 총장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해석이다. 

‘반기문 카드’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아직까지도 확실한 ‘당파성’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반 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세력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친박계와 야당 비주류 쪽이다. 지난해 초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은 반 총장의 대선 후보 가능성을 타진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정권 말 ‘레임덕’을 차단하기 위해 차기 대선 후보군을 견제해야 함에도 ‘반기문 카드’를 내민 것은 당내 다수 의석을 차지한 비박계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 체제가 출범하는 등 새누리당의 흐름이 친박계의 의도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반기문 대망론’이 허구가 아닌 실체로 다가서게 됐다. 현재 친노계에 대항해 마땅히 내밀 주자가 없는 야당 비주류에게도 반 총장은 영입 1순위다. 야권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작고한 성완종 전 의원이 숨지기 1년여 전쯤 야당 비주류 측에 ‘반 총장을 대선 후보로 내는 것은 어떠냐’는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반 총장의 의사와는 무관한 것이긴 했다. 하지만 반 총장이 그만큼 야당에도 매력적인 인사였고, 성 전 의원이 거기에 편승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결론적으로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국제적 평화 구축’을 위해 방북을 추진했지만, 그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정치적 입지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의 한 측근은 “‘반기문 카드’는 앞으로 계속 위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 총선이 끝나고 나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경우 ‘반기문 카드’는 하나의 패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대선 후보 반기문’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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