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정 체결하려고 반기문 초청했나
  •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 승인 2015.11.26 20:54
  • 호수 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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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북·미 평화협정 체결 중재자로 나설 수도 있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조만간 북한을 방문할 것이란 뉴스가 유엔본부의 고위 소식통으로부터 나왔다. 중국 신화통신은 지난 11월17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에 문의한 결과, 북한이 반 총장의 방북을 부인하지 않았다면서 “반 총장의 방북 문제가 논의되고 있으며,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반 총장이 조만간 북한을 방문할 것이란 신화통신의 보도에 유엔이 부인하는 등 반 총장 방북을 둘러싼 소문은 무성하지만 아직 북한과 유엔 모두 이와 관련한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반 총장은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을 방문할 생각이 있으며, 꼭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에는 북한이 반 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허용했다가 곧바로 취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8·25 합의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열기로 한 남북 당국회담이 이뤄지지 못하는 가운데,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면서 반 총장의 방북을 추진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방문한 리수용 북한 외상(왼쪽 네 번째)과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오른쪽 두 번째) 등 북한 대표부 일행. ⓒ 뉴시스

반 총장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북핵 문제 등으로 교착된 한반도 정세를 완화할 묘수를 찾을 것인지와, 방북 성과 여부에 따른 반 총장의 국내 정치적 입지 강화 여부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기를 1년여 남겨둔 반 총장의 방북 소식에 정치권이 관심을 보이는 것도 차기 유력 대권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반 총장의 방북이 성사돼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업적을 남길 경우 그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8·25 합의 이후 대외 관계 확장 위한 노력

북한은 유엔에 좋지 않은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6·25 전쟁을 일으켜 ‘남조선 해방’을 시도했지만 유엔군의 참전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북한은 연이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유엔으로부터 각종 제재를 받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로부터는 매년 인권결의안 채택 등으로 지탄받고 있다. 북한은 유엔을 미국의 사주를 받아 움직이는 국제기구쯤으로 인식하고 부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1991년 9월17일 유엔에 남북한이 동시 가입하면서부터 유엔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남한이 6·25 전쟁에서 유엔을 통해 구원받았듯이, 북한도 사회주의권 붕괴를 목격하면서 단일 의석이 아니면 들어가지 않겠다던 유엔에 남북한 동시 가입을 실현하고 유엔으로부터 체제 유지를 담보받으려 하고 있다.

북한이 반기문 사무총장을 초청했다면, 8·25 합의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대외 관계 확장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사이에는 당국회담 개최를 둘러싸고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남측의 회담 제의에 북측은 대결 정책과 체제 통일 포기를 요구하면서 회담 제안에 응하지 않고 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한·미의 ‘탐색적 대화’ 제의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조치 요구에 응하지 않아 진전이 보이지 않고 있다. 8·25 합의 이후 북한은 남북 당국회담에 응하지 않고 미국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면서 ‘선(先) 평화협정 체결, 후(後) 비핵화 협상’ 주장을 펴고 있다.

북한이 반기문 사무총장을 초청하려는 목적은 평화협정과 관련한 돌파구 찾기일 가능성이 크다. 유엔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이기 때문에 북한은 유엔을 상대로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설득해 미국을 움직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반 총장의 방북을 계기로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정전협정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평화협정 체결의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려 할 가능성이 크다.

3차 핵실험 이후 2013년 3월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 노선을 채택한 북한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지고 대외 관계를 확장해 인민 생활 향상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경제 발전을 위한 평화로운 대외 환경 조성 움직임에 한국과 미국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선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북한은 지난 시기 선 비핵화 협상, 비핵화와 평화보장 문제를 동시에 논의하는 회담이 아무런 결과를 보지 못한 바탕에는 북·미 간 적대 관계가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북한 외무성 대변인 대담, 2015년 11월14일). 북한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북·미 적대 관계를 근원적으로 청산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내년 5월 당 대회 이전에 평화로운 환경 조성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에 진전이 없는 지금, 북한이 반기문 사무총장을 초청했다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과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엔의 사명이 세계 평화와 지역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때, 북한이 유엔 사무총장을 초청해 평화협정 문제를 부각한다면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지도 모른다.

유엔이 직접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수는 없다. 결국 반 총장의 역할은 중재자에 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 총장은 북한 핵 고도화에 대한 한·미 등 서방세계의 우려를 북한에 전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요구를 반영해 중재안을 만들고 이란 핵협상 타결과 같이 북핵 문제와 관련한 대타협을 끌어낸다면 최상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 의지와 한·미·중 등 관련 국가들의 ‘북핵 불용’ 의지가 평행선을 그리면서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이후 7년여 동안 중단되고, 그사이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고 있다. 이제 북핵 문제를 제재와 압박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시기로 접어들었다. 반 총장의 방북이 이뤄진다면, 반 총장은 제재와 압박 위주의 선 비핵화 북핵 해법을 전환해 평화협정 체결과 연계한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묘수’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반 총장을 초청한 다른 이면에는 그가 남한의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 중 한 명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은 차기 대권 후보로서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업적을 남기길 열망하는 반 총장이 노력한다면, 교착 국면에 빠진 한반도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지고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북·미 평화협정을 맺어 ‘평화로운 대외 환경’을 조성하려는 북한의 의도에 한·미가 동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반 총장의 방북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방북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내년 5월 7차 당 대회를 준비하는 김정은 정권이 평화로운 대외 환경을 조성해 새로운 정책 노선을 제시하려는 큰 그림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북핵 고도화를 중단하는 조치를 우선 취하고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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