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추모 열기가 높은 건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 때문”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5.12.03 20:31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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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정권 때 청와대 대변인 지낸 윤여준 前 환경부장관

 

곁에서 바라본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땠을까. 시사저널은 11월25일 오후 서울 종로 프레스센터에서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과 인터뷰했다. 윤 전 장관은 김영삼 정권 시절 청와대 대변인과 환경부장관을 역임했다. 특히 1994년부터 2년 7개월간 청와대 대변인을 맡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했다.

윤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을 가리켜 “타고난 정치인”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공만큼 과오도 많은 지도자였지만, 민주화를 다진 업적만으로도 한국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윤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인 ‘통합과 화합’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라는 고인의 뜻”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 이후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YS, 자기 사람들 믿었는데 IMF 터져”

공교롭게도 YS가 IMF 담화문을 발표했던 11월22일 서거했다

날을 헤아려보니 그렇더라. 22일 아침 다섯 시에 TV 속보를 통해 (서거 소식을) 접했는데,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민주화 시대가 완전히 끝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YS의 성정은 어땠나.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말처럼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통이 크고 담대했다. 하나회 숙청이나 금융실명제도 그런 담대함이 있으니 신속하고 단호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굉장히 다정다감하다. 대화할 때도 공식 석상이 아니면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덕분에 참모들은 기탄없이 얘기할 수 있었다.

또 서민적인 면모가 있었다. 1996년 제주도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했을 때다. 점심 때 제주도 해안도로변에 있는 작은 횟집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갔더니 밥상에 비싼 다금바리가 수북하게 담겨 나왔다. 이를 보더니 YS가 크게 화를 냈다. 비싸고 귀한 음식을 이리 많이 내오면 어쩌느냐는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값비싼 음식을 함부로 먹지 못했다.

YS는 특유의 ‘용인술’이 강점으로 꼽혔다.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좋은 사람을 발탁해 썼다는 점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 평소에 사람을 예민하게 관찰한다. 심지어 자신과 생각이 다르더라도 인재다 싶으면 과감하게 발탁했다.

판단 과정에서는 나름의 기준을 철저히 지켰다. YS는 평소 ‘공직에만 있던 사람이 재산이 갑자기 늘어나면 비리가 있었을 수 있고, 유산을 많이 받으면 서민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기준을 끝까지 지켰다.

많은 사람은 YS를 ‘외환위기를 몰고 온 대통령’이라고 평가한다.

IMF로 인해 잘한 부분들이 많이 희석됐다. 그런데 이 말은 해야겠다. YS는 본래 민주화운동을 계속해왔던 분이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을 들여다보는 데는 그리 예민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장관이나 실무자들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당시 YS는 금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경제수석을 통해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그때마다 국내 경제 상황이 좋다는 내용의 보고만 올라갔다. 전문가들이 늘 좋은 상황이라고만 얘기하는데, 대통령이 그걸 믿는 수밖에 없지 않나. 자기 사람들을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IMF가 터져버린 것이다.

여기다 차남 김현철씨 문제까지 불거졌다.

현철씨 국정 개입 문제가 나오면서 상황이 굉장히 나빠졌다. 그래서 당시 김광일 비서실장을 찾아가 ‘적당히 덮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건의했다. 김 실장도 이에 동감했다. 결국 YS가 대국민 사과를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사과문을 내가 썼는데, YS와 함께 한 자 한 자 읽으며 검토했다. 그 후에 직접 생방송으로 대국민 사과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집권 후 김대중 전 대통령(DJ)과의 관계는 어땠나.

YS 정권 동안 영수회담을 두 차례 정도 했는데, 그때마다 DJ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좋은 적수로 살아온 두 사람이라 그들만의 의사소통 방식이 있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상대편에게 속임수를 써서 공격)처럼 보이지만 서로 알아듣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헌정을 유린한 5·16과 유신에 분노 커

YS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했나.

YS는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도 5·16과 유신에 대한 분노가 굉장히 컸다. 군사쿠데타와 유신이 헌정을 유린했다는 점에서 용납을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아무래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에 호감을 갖지는 않았다고 본다. 근래에 보면 박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인 얘기도 하다가 굉장히 거친 얘기도 했다. 심지어 ‘칠푼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씀하신 것 아닌가 싶다.

DJ에 이어 YS까지 서거하면서 정치사의 한 시대가 끝났다.

두 사람 모두 민주화에 헌신했던 사람들이다. 즉 국민들로부터 부정할 수 없는 ‘도덕적 권위’를 쌓았기 때문에 집권이 가능했다고 본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공과가 있지만, 민주화에 헌신했다는 것만으로도 공적이 있다고 본다.

현실 정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두 사람이 세운 민주화의 초석에 더 원숙한 민주주의를 꽃피웠어야 했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아직 제대로 민주화를 숙성시키지 못했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예리한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기업 경영 정도로 생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방식이 민주적이지 못하다. 이번 추모 열기가 높은 이유도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 때문이라고 본다.

유훈이 ‘통합과 화합’이었다.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증폭만 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 발전의 걸림돌이란 평가가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과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본다. 통합은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서 더 큰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곧 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국민 통합이 이뤄지게 될 것이다. YS가 ‘통합’을 강조한 것도 결국 민주주의를 잘하라고 지적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YS의 서거가 향후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YS 서거로 인해 진짜 양김의 시대가 저물었다. 총선까지는 모르겠지만, 대선 정국에서는 큰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것 같다. 새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아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가 반드시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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