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이 외면하는 영화인의 축제
  • 허남웅 | 영화 평론가 (.)
  • 승인 2015.12.03 21:16
  • 호수 136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란으로 시작해 결국 파행으로 막 내린 대종상영화제의 추락

대종상 시상식이 조롱당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대종상이 시끄러웠던 것은 과거에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남녀 주연상 후보 전원이 불참하고, 대리 수상이 남발됐던 올해의 대종상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던 셈이다. 대종상은 어쩌다가 영화인들이 외면하는 영화인의 축제(?)가 된 걸까.

대종상의 모체(母體)는 ‘우수 국산 영화 시상제’다. 1958년 발표된 ‘국산 영화 보호 육성 계획’에 따라 우수 국산 영화를 선정하고 보상하는 제도로 시작됐다. 이것이 1962년 대종상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우리가 아는 대종상의 실질적인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종상은 1966년까지는 공보부가, 1968년에는 한국영화인협회가 주관하다가, 1969년과 1970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상에 흡수되었다. 이후 1972년까지 문공부와 영화진흥조합이,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영화진흥공사와 문화공보부가, 1979년부터 1986년까지 영화진흥공사와 영화인협회가 공동으로 맡았다. 그리고 1987년부터 영화인협회 주관에 영화진흥공사가 후원하는 형태로 바뀌었고, 1992년부터 영화인협회와 후원 기업이 공동 주최하는 형식으로 개최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11월20일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는 남녀 주연상 후보 9명 전원이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 치러졌다.ⓒ 연합뉴스

<광해>에만 15관왕 몰아줘 ‘광해상’ 오명도

이처럼 대종상은 정부 산하의 행사에서 영화인이 주최하는 축제로 행사 주체가 이동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영화제의 순수성을 둘러싼 시비로 자주 시끄러웠다. 관 주도의 행사일 때는 정부의 외풍 아래서 신음했고, 한때는 외화를 수입할 수 있는 이권이 주어지는 덕에 뒷거래가 난무했다. 영화인협회가 주관이 된 이후에는 심사 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1996년의 <애니깽> 논란이 대표적이다. 개봉하지 않은 영화는 후보에 오를 수 없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작품상과 감독상·여우주연상을 <애니깽>이 차지하면서 대종상의 신뢰도는 크게 떨어졌다. 심지어 <애니깽>이 정부 후원 작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어용 영화제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대종상은 거의 매년 후보(작) 선정의 공정성 문제로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려왔다. 2009년에는 대종상 개최 때까지 개봉도 하지 않은 <하늘과 바다>가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장나라) 후보에 오르면서 논란이 일었다. 더욱이 그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던 <박쥐>

와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열연을 펼쳤던 하지원을 대신해 각각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하늘과 바다>의 후보 선정이 적절했는지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11년에는 여자 연기상 부문 후보 기준을 두고 파행을 겪었다. 그해 심은경은 <써니>로 여우주연에, <로맨틱 헤븐>으로 여우조연 부문 후보에 동시에 오르며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뻔’했다. 당시 심은경은 미국에 유학 중이라 대종상 참석이 어려웠다. 이에 대종상 측에서는 불참을 이유로 그녀를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취소하는 이해 못할 처사를 벌인다. 이것이 촌극으로 끝난 이유는 여우주연 후보 취소와는 별도로 여우조연 후보에는 남겨두고 결국 수상자로 심은경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그해 여우주연상을 받은 <블라인드>의 김하늘을 밀어주기 위해 심은경을 의도적으로 탈락시킨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떠돌기도 했다.

2012년에는 <애마부인> 시리즈로 유명한 정인엽 감독이 대종상영화제 보조금 수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종상의 진행비·시상금 등을 명목으로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은 보조금 중 일부를 영화제 대행 계약을 맺은 업체에 계약금 명목으로 송금한 후 돌려받는 방식으로 거액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내우에 더해 외환으로 2012년 대종상은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무려 15개 부문의 수상을 몰아줘 ‘광해상’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다. 그해에 <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건축학개론> <은교> <도둑들> <피에타> 등 다양한 좋은 작품들이 있었음에도, 70대가 즐비한 전문 심사위원들이 자신들 세대의 취향에 적합한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몰표를 던진 것이다.

조직위에 非영화인 많이 포진해

대종상 파행의 역사 중심에는 이권, 즉 밥그릇 싸움이 놓여 있다. 관(官) 주도로 시작된 대종상은 기본적으로 ‘비(非)영화인 대 영화인’의 갈등 구도를 내재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인협회 주관이 된 이후에는 <애니깽> 사태처럼 주요 상 수상을 통해 명예도 얻고 개봉 후 프리미엄 효과를 얻으려는 일부 영화인들 사이에 비상식적인 로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 속에 원로 영화인들의 입맛에 맞는 영화가 주요 상을 독식하는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그와 같은 갈등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2015년 대종상이다. 대종상을 주최한 영화인총연합회는 영화감독협회, 영화기술단체협의회, 영화기획프로듀서협회, 영화시나리오작가협회, 영화배우협회, 영화조명감독협회, 영화촬영감독협회, 영화음악작곡가협회까지 8개 직능협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2012년 당시 영화인총연합회 정인엽 회장이 별도의 대종상 사단법인을 만들면서 협회 사이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조직 구성원 중에는 비영화인도 많다. 올 초까지 영화인총연합회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이는 방산 비리에 연루된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이었다. 그 뒤를 이어 직무대행을 맡은 최하원 집행위원장은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김구회 남북문화교류협회장을 새 조직위원장으로 임명하며 영화인들과의 또 다른 갈등을 촉발했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영화인들이 떠안는 꼴이 되었다. 남녀 주연상 부문 후보 배우들의 전원 불참이 이를 잘 보여준다. 대리 수상이 남발된 올해 대종상은 <국제시장>에 10개 부문의 상을 주며 막을 내렸다.

반면 11월26일 열린 제36회 청룡영화제에는 대종상에 등장하지 않았던 배우들이 모두 출동했다. 결과도 사뭇 달랐다. 1000만 관객 영화였지만 대종상에서는 <국제시장>의 들러리가 됐던 <암살>이 최우수작품상을,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이 감독상을 안았다. 배우 이정현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고작 4만명 정도가 든 작은 영화의 여주인공에 주목하며 상의 권위를 높였다. 원칙과 공정성의 측면에서 청룡영화제가 성공한 반면, 갈등과 반목의 관점에서 대종상은 기대감을 100% 충족시킨 시상식이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