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정의 없으면 문명사회 유지 못한다
  • 김윤태 | 고려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15.12.10 17:16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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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통과한 종교인 과세, 주요 쟁점과 남은 과제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하나.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은 종교인에게도 근로소득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개세(皆稅)주의’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육사 8기 출신이자 5·16 쿠데타 실세였던 이낙선은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세수 확보’의 ‘엄명’을 수행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종교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쳤다. 결국 정부안은 백지화됐다.

그 후 47년의 세월이 흘러 2015년 12월 드디어 입법화가 이뤄졌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종교인에 대한 과세를 명시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전격적으로 통과시켰다.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명분에 의해 반세기 동안 ‘성역’이었던 종교인 과세가 실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종교계의 반대를 의식해 시행 시기를 2년 후로 유예했다. 이에 대해서는 여당과 야당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종교계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강석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장이 2014년 11월24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 종교인 과세 관련 간담회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회·절·성당에서 일하는 종교인에 대한 과세는 소득세법의 ‘기타소득’으로 분류될 예정이다. 소득 구간에 따라 ‘필요경비 공제율’은 차등을 두고 적용된다. 소득 수준에 따라 ‘필요경비’로 인정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필요경비율은 연 소득 4000만원 미만은 80%, 4000만?8000만원은 60%, 8000만?1억5000만원은 40%, 1억5000만원 초과는 20%로 정한다. 연간 1억원의 소득을 가진 종교인에 대해서는 40%인 4000만원을 필요경비로 인정받아 6000만원에 대한 세금이 부과된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인이 원하는 경우 종교인 소득 대신 근로소득으로 신고하면 근로소득자와 마찬가지로 근로소득장려세제(EITC)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했다. 세법 개정안은 또 종교단체가 원천징수 또는 종합소득세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종교계의 빈번한 세무조사 우려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가 지급된 장부만 열람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종교인 과세 법안의 쟁점

그러면 과연 몇 명의 종교인이 세금을 내게 될까. 기획재정부는 전체 종교인 23만여 명 가운데 면세자 등을 제외한 약 4만~5만명을 과세 대상자로 본다. 일부 초고소득자를 제외하면 평균 실효 세율은 1% 미만으로 추산한다. 세수 효과 측면에서 보면 100억원 정도를 더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조세 정의라는 상징적 의미는 있다.

세법 개정안에 대한 반응은 종교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불교의 조계종은 종교인 과세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천주교의 신부들은 1994년 이후 20년째 자발적으로 근로소득세를 납부했다. 실제로는 소득이 적어 면세점(免稅點) 이하의 성직자가 많다. 개신교의 경우 찬성하는 교단도 있지만, 일부 교단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종교인 과세 제도의 신설에는 반대하는 대신 자발적 납부 캠페인과 나눔 운동을 벌이겠다고 공표했다. 반대하는 이유로 정부의 세무조사와 지나친 간섭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반면에 시민사회에서는 세법 개정안이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근로소득자와 비교해 공평하지 않다는 형평성 시비가 불거진 것이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연봉 8000만원을 받는 종교인의 경우 소득세로 125만원을 납부하지만, 같은 소득을 가진 직장인은 717만원을 내야 한다. 6배의 차이가 난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이번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종교인들이 근로소득자에 견줘 내는 세금이 굉장히 적다. 그런데도 시행을 또다시 미루다니 지나친 특혜”라고 지적한 후 “정치권이 종교인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끌려다니는지 모르겠다. 일반 근로자들이 세금 낼 마음이 생기겠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참여연대도 “눈치 보기는 그만하고 근로소득에 준한 종교인 과세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지지 여론 높아

최근 종교인 과세에 대한 국민 여론은 지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2014년 말 모노리서치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종교인 과세 도입’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의 75.3%가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종교인 과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2013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종교인 과세에 대해 기독교인들도 71.8%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개정안 통과 직후 실시한 돌직구뉴스와 조원씨앤아이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9명꼴로 종교인 과세를 지지했다.

해외 국가에서는 종교단체와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미국 세법은 종교인을 자영업으로 분류하지만, 종교인은 사회보장기금을 납부한다. 종교인은 급여와 함께 연금을 납부하고 은퇴 후에 연금을 받는다. 독일에서는 종교단체가 법인으로 분류되는 경우 법인세는 면제되지만, 법인이 아닌 종교단체는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반면에 독일에는 ‘교회세’가 있는데, 전체 국민의 70~80%가 소득세의 8~10% 정도를 자발적으로 납부한다. 독일 가톨릭교회의 경우 공무원과 유사하게 급여에 대한 소득세를 원천징수한다. 일본은 종교법인 대다수에 대해 과세가 면제되지만, 종교인은 자신의 소득에 대해 소득세 신고를 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다수가 종교인에게 근로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다. 한국처럼 종교인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는 국가는 매우 예외적이다.

일부 학자와 전문가들은 종교인 과세가 종교단체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2014년 한국갤럽이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양적 성장, 외형에만 신경 쓰는 모습’이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같은 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비(非)기독교인들이 개신교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로는 언행의 불일치,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 강압적 전도 등이 지적됐다. 교회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활동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은 윤리와 도덕 실천운동(45.4%), 봉사 및 구제활동(36.4%), 환경·인권 등 사회운동(7.2%) 순으로 나타났다. 향후 교회가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투명한 회계로 운영하고 사회복지 사업을 늘린다면 종교에 대한 신뢰가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라고 말했지만, 한국은 예외였다. 부유층과 대기업이 탈세로 부를 축적하며 상속하고 있다는 불신이 팽배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모든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가 적용되는 것처럼 ‘납세의 의무’도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에 대한 과세는 종교단체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단체의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소득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존경받을 만한 영광스러운 시민의 의무로 간주돼야 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은 모든 국민이 한배에 탄 운명공동체라는 사회적 연대감도 강화할 수 있다. 20세기 저명한 미국 대법관 올리버 웬들 홈즈가 “세금으로 우리는 문명을 산다”고 말했듯이, 조세 정의가 없다면 문명사회도 유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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