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하나 주세요” 광고 효과 있을까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12.17 18:43
  • 호수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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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자극적인 금연광고, 거부감 불러 효과 떨어진다는 지적

소비자가 편의점에서 “폐암 하나 주세요” 또는 “뇌졸중 두 갑 주세요”라고 말하고 담배를 건네받는다. 보건복지부가 11월 내놓은 TV 금연광고 내용이다. 담배를 사는 행동은 결국 질병과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복지부는 “과거 금연광고는 흡연이 질병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광고는 흡연이 곧 질병이며 치료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담배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발끈했다.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 전국 13만명의 담배 판매인 단체인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이하 담배판매인회)는 12월3일 이 금연광고를 금지시켜달라고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허위사실, 명예훼손, 업무방해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특정 개인이 흡연하더라도 반드시 폐암 등이 발병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1999년 흡연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5년 만에 원고 패소 판결이 난 것이다. 우제세 담배판매인회 회장은 “얼마 전만 해도 담배 판매인들은 담배를 팔아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는데 지금은 범죄자로 몰리는 것 같아 비참하다”며 “또 광고는 우리가 소비자에게 팔아서는 안 될 물건을 불법적으로 팔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어 명예를 훼손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에서 보건복지부의 금연광고 영상이 방영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금연구역 480곳에 흡연 공간은 1개꼴

2003년 “신용이 사라지면 당신도 사라집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무분별한 소비를 일삼던 주인공이 늪에서 익사하는 장면의 공익광고가 나왔다. 신용불량자에게 죽거나 아니면 없어지라는 일방적 메시지는 인권과 경제적 평등권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신용카드 과소비 방지를 위한 것이었지만 여론 저항에 부딪혀 결국 중단됐다.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위협소구(fear appeal)는 오히려 메시지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 광고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와 노마 페슈바하는 충치 예방 강의에 참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세 개 그룹으로 나눠 A그룹에는 충치 말기의 끔찍한 증상을, B그룹에는 다소 순화된 내용을, C그룹에는 불쾌한 내용이 없는 콘텐츠를 보여주면서 치아 관리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 내용에 따라 치아 관리를 잘한 그룹은 C그룹, B그룹과 A그룹 순으로 조사됐다. 인간은 강한 불쾌감의 원인을 외면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자아 방위적 회피 반응’을 나타낸다는 결론이다.

복지부가 이번에 내놓은 금연광고는 강도가 세지만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광고를 보고 금연을 결심해야 할 흡연자들이 오히려 거부감을 느껴 광고 자체를 회피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흡연자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스모킹’은 11월26일 복지부 앞에서 금연광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담배=폐암’이면 ‘음주=간 질환’, ‘패스트푸드=심혈관계 질환’, ‘숯불고기=위암’이라는 등식도 성립한다”며 “흡연만을 질병으로 연결하는 것은 심각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강력해졌지만 실효성 논란에 휩싸인 금연정책은 광고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올해 모든 음식점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금연구역은 늘어나지만 흡연 공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의 실외 금연구역은 1만2000여 곳에 이르지만 흡연자를 위한 합법적인 흡연 공간은 25곳이다. 금연구역 480곳에 흡연 공간은 1개꼴이다. 흡연자들은 이면도로나 건물 뒤에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 간접흡연 문제가 나오는 배경이다. 아이러브스모킹의 이연익 대표는 “간접흡연으로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에 갈등이 있는데, 오히려 정부가 이를 조장하고 있다”며 “담배로 팔아 거둔 세금이 이런 갈등 해소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흡연자단체가 11월26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왜곡된 금연광고로 흡연자를 편견에 가두려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 아이러브스모킹

“담뱃세로 흡연시설 늘려야 간접흡연 줄어”

담배에만 부과되는 목적세인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올해 초 담뱃세 인상으로 갑당 354원에서 841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이로 인해 올해 거둬들일 국민건강증진기금은 약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흡연자들은 그 세금을 흡연 공간 마련의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연익 대표는 “세금으로 금연시설이 아니라 흡연시설을 늘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섞이지 않도록 해야 간접흡연 갈등이 사라질 것”이라며 “우리보다 앞서 길거리 금연을 시행했던 일본은 음식점주들이 흡연실을 설치할 경우 정부가 설치비용의 50%를 지원하는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연정책이 강력한 나라로 캐나다를 빼놓을 수 없다.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캐나다는 국립공원에 오히려 흡연 공간을 늘리는 중이다. 유명 관광지인 로키산맥의 설퍼 산 정상에도 재떨이가 여러 곳에 비치돼 있다. 호주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건물 내부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출입구 앞에 재떨이를 설치했다. 흡연구역을 만들어 비흡연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한국은 2013년부터 국립공원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주차장과 화장실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됐고, 이 때문에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갈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

정부는 흡연의 폐해를 효과적으로 알리고자 담뱃갑의 앞뒷면에 흡연에 따른 질병 및 신체 손상 등을 사진이나 그림으로 경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복지부는 또 매장에 담배를 진열할 때도 경고 그림을 가리는 행위를 금지할 계획이다. 우제세 회장은 “경고 그림이 정면에 보이도록 담배 진열을 강제하면 판매인들은 매일 혐오스러운 그림에 노출돼 시각적·정신적인 폭력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지나치게 혐오스러운 담뱃갑 경고그림 진열로 판매점을 찾는 고객들이 줄어들고, 손님들이 가게에 머무르는 시간도 짧아져 다른 제품의 매출도 떨어질 것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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