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철거와 10억 엔 맞바꿨나
  • 유재순│일본 제이피뉴스 대표 (.)
  • 승인 2016.01.07 16:37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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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 “위안부 합의한 10억 엔 출연하는 대신 소녀상 철거” 보도

“합의된 것은 확실하게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은 아사히(朝日)신문 2015년 12월30일자 조간 1면 톱뉴스에 게재된 ‘10억 엔 소녀상 이전이 전제’라는 타이틀의 첫 문장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이 2015년 12월28일 서울에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끝내고 29일, 도쿄 시내 호텔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나 귀국 보고를 하자 총리가 했다는 말이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의 ‘확실한 후속 조치’라는 말에 방점을 찍었다. 그 ‘후속 조치’의 의미는 다름 아닌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져 있는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라는 것. 2015년 12월28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외무장관 회담의 후폭풍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거세다. 우익들은 아베 총리가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하며 반성한다”고 말한 사실에 굴욕적인 외교를 했다고 성토하고, 진보 세력은 문서상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 법적 효력이 없는 것에 불만을 제각각 표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29일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반발해 총리 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P연합  

일본 언론들은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그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 엔(약 97억4000만원)의 기금을 출연하는 조건으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져 있는 소녀상을 이전하기로 했다’고 보도하며, 벌써부터 철거 방법과 이전 장소에 대해 추측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이전한다’고 명시돼 있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그렇게 약속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2월30일자 조간에서 일본 정부 고관의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소녀상을 철거하도록 요구, 한국 정부도 긍정적으로 나설 생각임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즉,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하기 전에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한국 정부도 일본 측의 이 같은 요청에 이해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 고관은 “소녀상의 철거가 이뤄지지 않은 채 10억 엔을 출연하게 되면 합의에 대한 일본 내의 이해를 얻기가 힘들다. 때문에 소녀상 철거에 대한 한국 측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산케이(産經)신문은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사다 외상이 보수 우익들의 반발이 나오자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 엔뿐이며, 대신 소녀상이 철거될 것이다”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의 대체적인 보도 흐름에 따르면 이번 한·일 외무장관 회담의 합의는 10억 엔의 출연기금 대신 소녀상 철거로 그 함의(含意)가 압축되고 있는 모양새다. 반면, 일본 정치인이나 평론가들은 이번 외무장관 회담 내용이 ‘10억 엔 대(對) 소녀상 철거’라는 이분 구도로 보도하고 있는 일본 언론과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총리 재임 중에 과거 역사에 대한 사과 내용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문’을 발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는 이번 회담에 대해 “솔직히 아베 총리의 결단은 잘한 것이다. 총리로서 사과를 했다고 하는 것은 그 책임까지 인정한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이로써 한국과 일본 사이의 걸림돌이 없어졌다”고 이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나타냈다.

또한 무라야마 총리 재임 시절 설립된 ‘아시아여성기금’의 준비위원으로 참가했던 오카모토 유키오 전 외무성 출신 외교 평론가는 “한·일 양국에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분들이 생존해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당시에는 일본 측만으로 기금을 조성했지만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관여한다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다. 일본도 정치적 결단을 했지만 한국 측도 일본과의 화해를 하고자 하는 정치적 결단을 했다고 본다. 완전한 화해에 이르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회담으로 대화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매우 좋은 실마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5년 당시 ‘아시아여성기금’은 1억5000만 엔 정도가 조성됐지만, 대다수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지원 단체의 반발로 240명 중 61명만 이 기금을 받았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2월30일자 1면(왼쪽)에서 소녀상 철거가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에 대한 일본 정부의 10억 엔 출연의 전제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 연합뉴스

日 국민 대다수 관망하는 분위기 

그런가 하면, 한반도 전문가인 기무라 미키 고베 대학 교수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은 획기적인 합의를 한 것이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기시다 외상이 “10억 엔의 출연기금은 배상이 아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 내에서도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데 왜 합의를 했느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불만이 여론의 대세가 되면 위안부 할머니들도 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기여하는 형태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양국 정부가 ‘새로운 시대’임을 내세워도 한국 국민의 대일 감정 개선은 기대할 수가 없다. 일본 정부는 10억 엔의 출연만으로 모든 문제 해결을 한국 정부에 떠넘긴 것이다. 소녀상 철거도 역시 반발이 클 것이다. 차라리 지금의 장소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수습하면 어떨까 싶다.” 

극우 인사로 손꼽히는 니시오카 쓰요시 도쿄기독교육대 교수는 “본질적 해결과는 거리가 먼 합의다. 일본 정부의 책임 내용이 불명확하고 소녀상 철거도 한국 측이 노력한다고 하지만 지원 단체가 반대하고 있어 실현될지 의문이다. 한·일 양국이 서로 비판을 자제한다는 것도 한국 측의 허위 주장에 대해 일본 측이 사실을 가지고 반론하는 것도 자제하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오히려 멀어지는 것 아닌가”라면서 “과거 역사에 대해 일본은 잘못한 게 없다”고 되풀이해서 주장했다.

일부 고령층에서도 거센 반발을 보였다. 극우단체 회원 200여 명이 12월29일 총리관저와 외무성 앞에서 ‘선조의 명예와 자긍심에 상처를 준 일·한 합의에 단호하게 항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대형 일장기를 흔들며 “아베는 전몰자의 정신을 더럽혔다. 매국행위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외치며 한동안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반면에 일반 국민들은 예(例)의 신중한 자세로 그저 지켜보자는 듯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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