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드러난 업체와 계속 거래 부당이득 환수는 ‘나 몰라라’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1.07 16:47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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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군납 비리 외면한 채 내부고발자 징계에 혈안

국방부가 내부고발자의 양심선언으로 밝혀진 군부대 내 매점(PX) 납품 비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일부 업체들이 가격을 부풀려 납품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부당이익 환수는커녕 최근까지도 그중 일부 업체와 거래를 해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반면 국방부는 비리를 고발한 내부고발자에 대한 징계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납품 비리 사건의 단초는 국군복지단(이하 복지단)이 2011년부터 신규 납품 품목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판매가 최고 할인 제도’를 도입하면서다. 시중 판매가에 비해 높은 할인율을 제시하는 업체가 낙찰받는 방식이다. 시중가의 근거로 업체들은 마트 등에서 결제 단말기로 사용되는 ‘판매 시점 정보 관리 시스템(POS)’ 영수증을 제출한다. 납품업체들은 이 제도를 악용했다. 시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들을 중심으로 가격을 부풀린 허위 영수증을 제출한 다음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 낙찰을 받아낸 것이다. 시중에서 1000원에 거래되는 제품의 영수증상 가격을 1만원이라고 속인 후 80%의 할인율을 적용해 2000원에 납품하는 식이었다.

ⓒ 시사저널 포토

당시 복지단에 근무하던 민 아무개 대령은 이런 정황을 포착하고 2012년 11월 국방부 검찰단과 감사관실에 신고했다. 그러나 결론은 ‘무혐의’였다.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민 대령은 시민단체에 관련 사실을 제보했고 서울서부지검에 별도의 형사 고발도 했다. 그러자 2013년 이후 언론을 통해 PX 납품 비리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2014년 초 국방부는 “‘군 PX 상품 고가 판매 납품 비리’ 등의 제하(題下)로 보도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복지단이 자체적인 가격 조사를 통해 판매가격 조작이 의심되는 품목은 사전에 계약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8개월 후 나온 검찰 수사 결과는 국방부의 해명과 달랐다. 2014년 10월 서울서부지검은 판매가를 부풀린 허위 영수증을 복지단에 제출해 입찰을 방해한 혐의로 비리 관련자 11명을 기소했다. 예비역 중령인 복지단 근무원은 입찰 관련 정보 등 편의 제공 명목으로 3000여 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상당수 제조업체 관계자들이 2012년 6월부터 9월 사이에 스낵·떡·만두·드링크·육포·양갱·문구류 등의 품목에 대해 가격을 부풀린 허위 영수증과 거래 실적 자료를 제출한 사실도 적발됐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납품업체와 복지단 간의 유착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의혹의 중심에 서 있던 김 아무개 전 복지단장과 김 아무개 전 복지단 재정과장의 사건을 군 검찰단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검찰단은 2015년 7월 이들을 무혐의로 처리하면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군납업체들, 허위 영수증 제출해 낙찰

문제는 납품 비리가 드러난 이후 지금까지도 국방부가 제대로 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 군 내부에서는 시정을 요구하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그럼에도 군 당국은 검찰단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회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단 수사가 끝난 후에도 군 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일단 부당이득 환수에 전혀 나서지 않았다. 검찰은 납품업체들이 올린 부당이득이 18억원에 달한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복지단은 손해배상 청구나 위약금 부과 등 민사소송을 검토했지만 계약의 특성을 고려해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은 계약에 따라 중간 수수료를 받는 입장이어서 금전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복지단과 납품업체가 체결한 위탁물품 공급계약서 제19조의 ‘손해배상’ 항목에 따르면, 납품업체가 특별한 사유 없이 복지단에 타 기관보다 고가로 물품을 공급했을 경우 그 차액을 환불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2013년도 PX 신규 납품 리스트’를 보면, 시중가보다 비싼 가격이 매겨진 제품이 눈에 띄었다. 계약서대로라면 차액을 환불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대표적인 게 목우촌의 ‘함부르크 비프스테이크’다. 납품 리스트에는 이 제품의 시중가격이 2720원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1만5950원짜리 영수증을 제출한 후 72%의 할인율을 적용해 시중가보다 비싼 3570원에 판매했다. 또 시중에서 3400원에 팔리는 ‘옹가네 진간장’도 이런 방식으로 4900원이라는 가격이 매겨졌다. 그 밖에 시중가 4750원인 피죤의 세제 ‘액츠드럼 2.0L’은 7800원에 팔려나갔고, 애경산업의 세제 ‘리큐 진한겔드럼’과 ‘퍼펙트드럼’도 시중가보다 비싼 값에 거래됐다.

복지단 사정에 정통한 군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군납업체가 복지단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는 11% 정도로 60~70%에 달하는 민간 납품 제품보다 저렴하다. 이를 감안하면 복지단 마트의 판매가격은 시중 대비 20%는 낮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시중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싼 가격에 판매돼온 것이다. 특히 가격이 부풀려진 제품 상당수는 시중에서 잘 판매되지 않는 것들이었다고 한다. 결국 군 장병들은 비인기 품목을 웃돈을 지불하고 구매해온 셈이 된다. 이 관계자는 “군납업체들이 얻은 부당이득은 모두 군 장병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며 “장병들의 권익에 앞장서야 할 복지단이 이들의 피해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복지단은 또 비리에 연루된 납품업체들에 대한 제재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탁물품 공급계약서 18조의 ‘업체 제재’ 항목에는 납품업체가 복지단을 상대로 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 납품과 판매 중지 또는 업체에 대한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복지단은 비리 업체 8곳에 대한 계약을 모두 해지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복지단은 2014년 11월1일 5개 업체, 같은 해 12월31일 1개 업체와 계약을 해지했다. 그러나 나머지 2개 업체에 대해서는 2015년 11월까지도 계속 납품을 받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복지단은 가격이 부풀려진 제품들에 대한 가격 조정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향후 납품 비리를 방지할 이렇다 할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납품 비리를 수사한 검찰은 “납품업체 선정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도록 할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2016년 위탁물품 정기 선정부터는 서류접수와 동시에 가격 투찰, 원가 부풀리기 방지를 위해 원가 계산서 검증, 불시 물가 조사 등을 통해 부정당 업체를 색출하는 노력을 더 기울이고 있다”고만 밝혔다. 원래 해오던 조사와 검증을 더 성실히 하겠다는 약속이 전부인 것이다.

국방부가 이처럼 후속 조치에 손을 놓고 있는 반면, 내부고발자 징계에는 혈안이 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민 대령은 고발 직후부터 전 방위적 압박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민 대령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한 진정서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민 대령은 고발 직후인 2012년 11월 좌천성 인사로 압박이 시작됐다는 입장이다. 복지단이 ‘민 대령이 전문형 직위 근무를 희망한다’는 취지의 문서를 국방부에 제출해 전출을 건의하면서부터다. 전보 희망 의사를 표현한 적이 없던 민 대령은 국방부에 항의를 했지만 결국 외면당했고 무보직 발령이 났다. 이후 2013년 5월까지 4~5차례에 걸쳐 무보직 파견 기한이 연장됐다.

경기도 연천군 육군 28사단 GOP부대 내 PX.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연합뉴스

국방부, 내부고발자에 대한 전 방위 압박 의혹

또 민 대령을 대상으로 한 징계 요구가 쏟아졌다. 징계 요구가 4건, 뇌물 수사 의뢰가 3건이었다. 군 내부에서는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는 기류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 대령에 대한 수사는 대부분 무혐의로 종결됐다. 다만 ‘상관 복종 의무 위반’에 대한 징계 요구가 인정돼 2013년 5월 ‘감봉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2012년 7월 민 대령이 상관인 복지단장이 최종 결재한 보고서의 지시 사항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보고서에는 경남의 한 군인아파트 쇼핑타운 내에 한 대기업 계열의 마트 입점을 수의계약 형태로 진행하는 내용이 담겼다. 민 대령이 국유재산법 위반을 우려해 수의계약 대신 공개경쟁 방식으로 입찰을 진행한 게 화근이었다고 한다. 민 대령은 이후 서울행정법원에 징계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11월 승소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재판부의 판결을 무시하고 다시 민 대령에게 근신 10일의 처분을 내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 대령은 좌천성 인사 이후에도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단 측에서 군내 비리를 언론에 제보했다는 이유로 해당 부대에 지속적인 처벌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민 대령에 대한 압박은 그가 2015년 특수전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부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복지단 측이 처벌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견디다 못한 민 대령은 최근 전보를 신청해 최전방 부대로의 전출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 내부고발자가 이처럼 온갖 수모를 당한 건 민 대령만의 일이 아니다. 2009년 해군 납품 비리를 고발한 김 아무개 전 소령이나 2011년 헌병 비리를 제보한 황 아무개 중령, 군내 성추행과 가혹 행위를 외부로 알린 이 아무개 하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모두 군 내부의 비리를 외부로 알렸다가 ‘배신자’로 낙인찍혀 홀로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은 군 당국의 고질병”이라며 “이는 방산 비리 등 군 내부에 만연한 각종 부패행위가 근절되지 못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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