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검찰’ 위에 나는 ‘무기중개상’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1.14 16:56
  • 호수 13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함태헌·이규태 등 거물 무기중개상 앞에서 무뎌지기만 하는 검찰의 칼끝
2015년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의 수사를 받은 무기중개상 함태헌 셀렉트론코리아 대표(왼쪽)와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 ⓒ 시사저널 포토

서울 홍대입구와 이태원 두 곳에서 성업 중인 체코 맥주 전문점 ‘C’ 업소. 체코의 수도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시계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압도적 외관, 그리고 가게에서 직접 제조하는 하우스맥주로 인해 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핫 플레이스’로 꼽혀왔다. 2003년 홍대 인근에 1호점을 연 이 집은 2009년 이태원에 2호점을 열었다. C 업소는 젊은 층뿐만 아니라 국방부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군 고위 장성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가게다. 그들 사이에서 C 업소가 유명한 이유는 거물 무기중개상으로 통하는 함태헌 셀렉트론코리아 대표(60)가 소유 및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함 대표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군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무기중개상이다. 무기중개 세계에서 군 출신이 아니라는 것은 그만큼 이미 출발선상에서부터 경쟁에서 뒤처졌음을 의미한다. 함 대표는 비(非)군 출신이란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자리를 잡아나갔다. 오히려 특정 군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육·해·공군을 망라해 무기를 납품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서울 K 고교를 졸업한 학연을 바탕으로 같은 고교 출신 군 인사들에게도 손을 내민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K고 출신 국방부장관도 있었다. 함 대표는 남다른 친화력으로 군 고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C 업소의 이태원점 역시 그와 군 인사들의 접촉점이 됐다. 이곳에 두 차례 다녀왔다는 한 군 인사의 말을 들어보자.

“2009년에 이태원점이 오픈했을 때 군 장성들도 초청하고 주한 체코 대사도 직접 개업식에 왔다. 이후 국방부나 합참에서 일하는 인사들 중에 그 가게에 안 불려가는 사람이 없었다. 한 작전사령관은 외부 손님과 약속을 잡을 때면 무조건 그 집으로 가기도 했다. 체코 음식과 하우스맥주를 팔았는데, 거기 규모나 장사가 되는 것 보면 그것만 가지고는 절대 돈을 남길 수가 없다. 결국 이태원에 식당을 하나 더 오픈한 것은 군 인사들과의 만남 장소로 활용한 것으로 의심될 수밖에 없다.”

잇단 구속영장 기각으로 검찰 난관 봉착

함 대표는 이러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군 인사들과 빠르게 친분을 쌓아갔고, 무기중개업계에서는 거물급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결국 함 대표는 2015년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 내 TF(태스크포스)였던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은 2014년 12월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함 대표와 관련한 첩보 수집 및 내사를 거쳐 2015년 하반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함 대표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말은 2015년 상반기부터 파다했고, 검찰도 출입기자단에 엠바고까지 요청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군 안팎에서는 함 대표 수사의 종착점이 누구라는 식의 소문이 파다했다. 결국 검찰의 칼끝은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을 향했다.

검찰은 “함 대표는 해군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 과정에서 자신이 중개하는 미국 셀렉트론사(社)의 ‘와일드캣’(AW-159)이 선정되도록 최윤희 전 합참의장에게 뇌물과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수사 결과를 밝혔다. 최 전 의장은 이를 위해 ‘와일드캣’이 요구 성능을 충족한 것처럼 허위 시험평가서를 작성·제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최 전 의장에게는 합참의장으로 재임 중이던 2014년 9월 함 대표로부터 아들의 사업자금 명목으로 2000만원을 받은 혐의도 추가됐다.

하지만 현재 함 대표와 최 전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면서 검찰이 당초 기대했던 최상의 시나리오는 틀어졌다. 함 대표의 경우 두 차례나 영장이 기각됐다. 거물 무기중개상과 군 서열 1위 인사 모두를 구속함으로써 방산 비리 수사의 ‘화룡점정’을 기대했던 합수단으로서는 김이 빠지는 일이었다. 결국 불구속 기소 상태에서 검찰은 함 대표와 최 전 의장의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 도입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최윤희 전 합참의장이 2015년 11월25일 서울중앙지검 별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후 검찰 청사를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언론에 보도된 바 없지만 검찰과 군 안팎에서는 “함태헌 대표와 최윤희 전 합참의장이 친분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과 무기중개상의 연결 고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들이 나온다. 또한 방산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왜 매번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지, 궁극적으로는 무기중개업계의 비리가 왜 근절되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실 최 전 의장이 해군참모총장이 되던 2011년만 해도 함 대표와 최 전 의장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함 대표가 해군의 함상훈련 장비인 OBTS(On Board Training System) 교육 프로그램을 납품하면서부터다. OBTS는 일종의 가상현실 훈련장비다. 이 사업은 원래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무기중개상 이 아무개씨가 했던 것이다. 함 대표는 이 사업을 자기가 가져오기 위해 최 전 의장의 해사 1년 후배(해사 32기)인 양 아무개씨를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 영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씨는 해군 장교로 복무하다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으로 자리를 옮겼고 퇴직 후 곧바로 함 대표의 회사로 이직했다.

때마침 양씨와 해사 동기이자 경리장교 출신인 정 아무개씨가 OBTS 납품 중개업체에서 비공식 브로커로 일하고 있었다. 정씨는 군에 있을 때부터 최 전 의장과 아주 가까운 인물이었다. 정씨는 원래 이씨 밑에서 일했으나, 무기중개 규모가 훨씬 컸던 함 대표와 일하기 시작했다. 결국 함 대표는 양씨와 정씨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통해 최 전 의장에게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최 전 의장의 운전기사 출신이 함 대표가 운영하는 식당에 취업했다는 게 군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결국 해사 출신 무기중개상 이씨가 가지고 있던 5000억원 규모에 이르는 사업인 OBTS는 함 대표에게로 넘어갔다. 또한 정씨를 통해서 해군 사업 규모를 점차 늘려갔다. 검찰은 함 대표와 최 전 의장 수사 과정에서 정씨가 연결 고리라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이어갔지만, 구체적 단서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한 군 출신 무기중개상은 “(정씨가) 경리장교 출신에다 현금을 가지고 움직였기 때문에 구체적 팩트를 밝혀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씨의 경우, 함 대표의 회사에 공식적으로 취업해 활동한 것이 아니라 ‘비선’처럼 움직였던 것도 수사에 혼선을 줬다. 검찰은 군 안팎 인사들로부터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해 조사했지만, 결국 사실 확인에 실패했다.

함 대표에 대한 수사가 쉽지 않았던 이유는 함 대표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점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토로다. 함 대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함 대표는 와일드캣과 같은 완성 제품을 중개하는 것 외에도 각종 수리 부속을 군에 납품했는데, 미국 업체와 자신의 한국 법인, 그리고 우리 군 사이에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되는 미국 캘리포니아 내 법인을 하나 더 끼워서 제품 가격을 부풀린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즉 미국 업체에서 우리 군이 부품을 수입해 올 때, 미국의 법인 하나를 더 거치면서 가격을 많게는 10배 이상으로 부풀리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이 이 인사의 주장이다.

합수단도 이런 제보를 접하고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 지난해 11월15일 미국 FBI(연방수사국) 측에 함 대표의 계좌 입·출금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합수단이 요청한 자료가 넘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일단 함 대표의 국적이 미국인 데다, FBI가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자료를 우리 수사 당국에 내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0년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가 LIG넥스원의 방산 비리를 수사했을 당시에도 미국 측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2015년 말에 겨우 소량의 자료만 넘어왔을 뿐이다. 또한 함 대표는 법원에다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임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결국 사건이 외국인을 주로 재판하는 형사합의30부에 배당됐다.

함태헌 셀렉트론코리아 대표가 운영하는 홍대입구 C 업소. ⓒ 시사저널 박은숙

무기중개상들 갈수록 ‘면역력’ 생겨

함태헌 대표 수사 과정을 보면 검찰 합수단이 합법적 범위 내에서 수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합수단은 앞서 언급했던 정씨에 대한 계좌추적 영장 청구도 고려했으나, 좀 더 구체적인 자료가 있어야만 영장이 발부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합수단 관계자는 “과거처럼 계좌추적이 용이했을 때는 일단 의심이 되면 까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하다”며 “법적 절차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범법자들이 수사망을 피해가는 것도 쉬워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무기중개상들은 점점 지능적으로 자금을 세탁하는 반면, 법원과 검찰은 법적 한계에 부딪혀 수사가 가로막히는 셈이다.

1년이 넘은 합수단 활동의 최대 성과는 역시 거물 무기중개상으로 통하는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의 구속이다. 하지만 검찰이 기소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무기중개상들은 이미 한두 차례 검찰 수사나 세무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에 잘 대처하는 ‘면역력’이 생겼다. 이 회장은 검찰 수사에 철저하게 비협조적이었다. 합수단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구치소에 있으면서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으러 오지 않은 일이 비일비재했다.

현재 이 회장은 총 23명의 변호인을 쓰고 있는데, 검찰 수사에서는 딱 한 사람의 변호사만 선임했다. 그것도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선임을 하지 않고 묵비권으로 일관하다가, 한 번은 자신과는 무관하게 합수단 검사를 찾아온 변호사를 기억해두었다가 그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그리고 나머지 22명의 변호사는 대부분 재판을 앞두고 선임했다. 이 회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을 선임해봐야 로펌 배만 불려준다는 것을 예전 검찰 수사를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법원 출신 변호사를 대거 선임했다”고 말했다.

사실 방산 비리 척결은 역대 모든 정권들이 부르짖던 구호다. 그럼에도 뿌리가 뽑히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로 꼽힌다. 하나는 이제껏 설명한 것처럼 무기중개상들이 점차 지능적으로 로비를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함 대표와 이 회장 모두 로비 과정에서 각각 사찰과 교회를 창구로 이용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종교시설은 세무조사 등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로는 무기중개상들이 한두 번 법적 처벌을 받는다고 해서 그들의 비즈니스 자체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 무기중개업자는 “군이나 방사청에서 밑에 있는 실무자들이야 같이 엮을 수 있겠지만 로비의 최종 대상만 불지 않는다면 중개업자와 군 사이에 신뢰가 더욱 쌓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오히려 이(중개업자와 군 간의 신뢰)를 어겼을 경우 (무기중개상 자신의) 법적 처벌은 약해질 수 있겠지만, 출소 후 사업은 영영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위급 수사는 정권 부담 탓에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는 무기중개가 결국은 군을 넘어서 정권이나 정치권 인사들과의 연관성이 깊을 때가 많은데, 검찰이 이와 같은 ‘현재 권력’을 건드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에 합수단이 꾸려진 후에도 합수단에는 현 정권 고위 인사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흘러나왔지만, 결국 그들을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우지는 못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사실 언론이 관심을 갖는 급의 인사에 대한 수사는 최고위층의 사인이 있어야만 가능한데, 이런 인사는 대부분 정권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사가 쉽지 않다”며 “이런 인사들과 무기중개상들이 결국은 공생 관계에 있기 때문에 방산 비리는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고 토로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