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배임죄'에 목매는 까닭은?
  • 한광범 기자 (totoro@sisapress.com)
  • 승인 2016.01.14 17:03
  • 호수 1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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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부패특수단 사정 수사 영향 우려한 듯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11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법원의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1심 판결을 정면으로 비난해 법조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 사진=뉴스1

최근 검찰이 조직 내 2인자인 서울중앙지검장을 앞세워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공개 비난한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선 배임죄에 대한 법원 입장이 유지될 경우 박근혜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 중인 부패 수사에서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검찰 내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2014년 하반기부터 부패 척결을 모토로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 해 7월 검찰, 국세청 공무원 등이 포함된 정부합동 부패척결추진단을 결성하기도 했다. 검찰이 지난해초부터 자원외교비리, 포스코 비리 등을 수사한 것도 이와 같은 움직임의 일환이다.

올해도 이 같은 사정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직접 부패척결추진단 추진 계획을 브리핑하며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부패척결단은 향후 대형국책사업, 대규모 방위사업 등에 대한 실시한 감시를 비롯해 예상되는 리스크는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김수남 검찰총장 취임 후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앙수사부 역할을 대신할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을 출범시킨 이유도 이 같은 정부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검찰 관계자는 특별수사단 역할과 관련해 "1년에 한두건 정도의 굵직한 대형 사건만 전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과거 국책사업과 관련한 공기업들이 주된 타깃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공기업 비리에서 잘못된 경영 행태를 처벌할 법이 배임죄 이외에는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검찰 내부에선 배임이 막무가내식 경영을 제어할 유일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검찰은 1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한 석유공사의 하베스트사 인수와 관련해서도 강 전 사장에 대해 배임죄만을 적용해 기소한 바 있다.

배임죄는 단순히 경영 실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법원은 배임죄를 적용할 때 고의성 여부와 함께 손해 발생 여부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을 하고 있다. 더욱이 배임액에 따른 가중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할 때는 손해액의 명확한 산정이 필요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검찰도 강 전 사장에게 특경가법 배임 혐의를 적용하며 "석유공사에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거나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하거나 외면했다"며 "하베스트 인수계약 성사로 석유공사 경영평가와 자신의 기관장 경영평가 실적을 달성할 목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판단은 전혀 달랐다. 재판부는 인수 당시 유가가 상승세였다는 점과 배임 고의성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강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하베스트가 장래 손실을 입을 것이 예정돼 있다고 평가할 정도의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또 이를 용인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이영렬 지검장을 앞세워 법원 비판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법원의 엄격한 배임죄 해석이 계속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법원이 계속 무죄를 선고하는 상황을 염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배임 관련 소송에 대한 검찰의 위기감도 작용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이석채 전 KT 사장,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등이 민영화된 공기업, 방위사업 등과 관련해 배임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사장과 황 전 총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고, 정 전 회장은 1심 재판이 막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 관계자는 "경영 실패라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어느 누가 기업을 이끌려고 나서겠느냐"고 항변했다. 반면 한 부장검사는 "법원의 이 같은 해석대로 라면 개인 욕심으로 빚어진 경영 실패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방만 경영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인지 되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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