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연예계에는 스폰서 제안 비일비재”
  •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1.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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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 멤버 지수의 폭로로 짚어본 은밀한 제안의 ‘연예계 스폰서 흑역사’

인기 걸그룹 ‘타히티’의 멤버 지수가 스폰서 제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스폰 브로커’라는 사람이 ‘고급 페이 알바’를 권유하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처음엔 ‘한 타임’에 60만~200만원을 불렀다가 지수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300만~400만원 선까지 올라갔다. 결국 지수 측은 이 발신자를 형사 고소했다.

정확하게 성매매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스폰 브로커란 말이 나오고 액수가 제시된 것으로 보아 연예인 대상 성매매, 즉 스폰서를 제안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사건이다. ‘진짜 스폰 브로커가 과연 SNS 메시지로 접근할까’라는 의구심과 ‘나름 현실성 있는 액수로 볼 때 진지한 제안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결국 경찰 수사를 지켜봐야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 여부와 별개로, 이번 사건은 봉인을 열었다. ‘연예계 스폰서’라는 민감한 이슈의 봉인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해서 연예계를 정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드높다.

재력가 ‘갑’, 연예인 ‘을’···스폰서 계약서도

2009년, 여배우 장자연의 자살 사건에 한국 사회는 경악했다. 그녀가 유력자들에게 성상납을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관련자 리스트까지 터졌기 때문이다. 이 건도 스폰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 성매매는 단순 거래로 끝나지만 연예인 스폰서는 그런 일회성 단순 성매매부터 장기간의 후원 또는 권력자를 향한 청탁성 성상납까지 폭넓게 포함되기 때문이다. 장자연 사건 당시에도 “이번에야말로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그러나 밝혀진 것은 없고 연예계는 그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지수의 폭로가 나온 것이다.

예전부터 그래왔다. 소문만 무성했을 뿐 정확히 밝혀진 것은 드물다. 1970년대엔 ‘7공자’ 사건이 유명했다. 시온그룹 후계자 박동명을 비롯한 재벌가 2세들의 엽색행각이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당시 경찰이 박동명의 집에 들이닥쳤는데, 마침 그때 신인 여배우가 그와 동침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여배우 리스트까지 나와 일파만파 일이 커졌다. ‘마담뚜’라는 브로커가 채홍사 역할을 했고, 여배우들은 박동명의 재력에 놀아났다고 한다. 소문이 꼬리를 물어 100여 명의 여배우가 거론되고, 연예계에서 퇴출되거나 이혼당하는 여배우까지 등장했지만 이때도 결국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진 않았다.

걸그룹 '타히티'의 멤버 지수는 '스폰서 브로커'라는 사람으로부터 스폰서 제안 메시지를 받자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 뉴시스

1980년대엔 재력가 모델 남성이 주도하고 재력가 2세들이 가세한 엽색행각 사건이 있었다. 당시 떠오르는 미녀 스타였던 여배우가 연루되어 특히 충격파가 컸다. 이 여배우는 마담뚜를 통해 재력가 2세와 관계를 가지며 마약까지 흡입했고, 그 외 미스코리아 출신부터 여러 탤런트들까지 거론됐다. 이 사건은 그나마 검찰 수사를 통해 어느 정도 내막이 밝혀졌는데, 당시 돈으로 마담뚜에겐 소개비 100만원, ‘화대’로는 3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지급됐다고 한다.

2011년 저축은행 비리를 수사하던 합동수사단은 불법 대출 혐의를 받은 사람이 여자 연예인 두 명에게 각각 억대의 돈과 외제차를 건넨 정황을 포착했다. 스폰서 의혹이 일었지만 관련자들은 부인했다. 2013년엔 연예인 성매매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여자 연예인 리스트가 돌아 파장이 일었다. 당시 회당 3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한 여성 스타는 3회에 5000만원을 받았다는 수사 결과에 유죄 판결까지 나왔지만, 당사자는 매매가 아닌 사랑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 간간이 터진 사건·사고와 관련 기사들을 종합하면, 연예인 준비생은 회당 30만원부터 100만원까지, 포털에 프로필이 나올 정도의 급이 되면 회당 300만원부터인데, 보통은 6개월 이상의 기간을 두고 급에 따라 1억대에서 10억대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트레이너 정아름은 미스코리아 입상 후 억대 스폰서 제의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했고, 가수 아이비도 3억 유혹을 받은 적이 있다며 “연예계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마음만 먹으면 한 다리만 건너도 그런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전문 브로커, 기획사 관계자, 동료 연예인 등 다양한 경로가 있을 수 있다. 최근엔 강남의 일부 피부관리·미용·스파 등의 업소에서 관계자가 재력가와 연예인 사이를 이어준다는 보도도 나왔다. 알선 수수료는 10~30% 정도라고 한다. 재력가를 ‘갑’, 연예인을 ‘을’이라고 표현한 스폰서 계약서도 공개됐다. 행사 계약서 형식인데 ‘△갑은 을의 이벤트 행사 스케줄을 최소 2~3일 전에 미리 통보하여야 한다. △을은 갑이 원하는 시기, 날짜에 이벤트 행사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대가는 반드시 현금이 아닐 수 있다. 현물이나 출연 기회일 수도 있다.
 
대가성 성관계, 제3자가 입증하기 어려워

수많은 증언과 소문이 있어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것은 이것이 워낙 은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가성 성관계는 제3자가 입증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스폰서 사건이 계속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연예인을 성적 상품으로 바라보는 재력가들의 시각, 그리고 당장 큰돈이 필요한 일부 연예인의 이해관계가 맞물려서다. 사회 유력자의 유혹을 거부했다가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할까 하는 염려도 있고, 유력자와의 관계를 통해 좋은 기회를 보장받으려는 욕심도 공존한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거간(居間)을 하는 악어새들까지 은밀하고도 거대한 지하 생태계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사회 지도층의 행태가 문제다. 돈과 권력을 움켜쥔 그들의 협박 혹은 유혹이 계속되는 한 지하 생태계는 사라지기 힘들 것이다. 과거 이 나라의 최고 정점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헤소노 시타니 진가쿠가 아루카(배꼽 아래쪽에 인격이 있나)

?’라며 여자 연예인들을 만났다고 한다. 최고 권부였던 중앙정보부 등이 채홍사 노릇을 했다고 한다. 10·26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는 당시 재판 중에 이렇게 주장했다. “그 집(궁정동 안가)은 대통령이 오시는 곳이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연예인이 드나든다. (중략) 거기서 있었던 일을 폭로하게 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한 달이면 열 번이나 그곳에 왔다.”

이러니 일반인들도 조금만 돈과 권력을 움켜쥐면 연예인들을 찾게 되는 것이다. 사회 지도층이 여자 연예인들과 파티를 하는 모습은 영화 <내부자들>에 표현됐다. 이 영화에서 여자들을 공급하는 이병헌은 연예기획사 사장이었다. 그 내용이 곧이곧대로 사실은 아닐지라도 구조적인 차원에서 그런 구도가 작동하고 있다고 대중은 믿는다. 이런 믿음이 존재하는 한 스폰서 이슈는 계속해서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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