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열전] 이광구 우리은행장 키워드 '민영화, 핀테크'
  • 이준영 기자 (lovehope@sisapress.com)
  • 승인 2016.01.19 16:35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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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민영화 쉽지 않아...핀테크는 선두
이광구 우리은행장(사진=우리은행, 시사비즈)

"서금회는 식사를 함께 하는 친목단체에 불과하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지난 2014년 12월30일 취임식 후 한 말이다. 당시 이광구 행장은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출신으로 정치금융 인사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이순우 전 우리은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광구 행장이 선임되면서 논란이 가열됐다.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의 모임이다. 이광구 행장은 1980년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서금회 출신은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 김병헌 전 KB손해보험 사장, 황영섭 신한캐피탈 사장, 박지우 KB캐피탈 사장 등으로 금융업 각 부문에 포진해 있다. 

이광구 행장의 색다른 이력은 또 있다. 그동안 우리은행장은 합병 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이 번갈아 했다. 상업은행 출신이 연이어 행장으로 선임되기는 이순우 전 행장 뒤를 이은 이 행장이 처음이다.

이 행장은 1979년 한국상업은행에 입사했다. 2003년 2월 우리은행 홍콩지점 지점장, 2004년 개인마케팅팀 팀장, 2007년 카드전략팀 부장을 맡았다. 2009년 우리은행 광진성동영업본부장 본부장을 거쳐 2010년 12월 우리은행 경영기획본부 부행장이 됐다. 이후 2012년 12월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 부행장을 맡다가 2014년 12월 행장에 올랐다.

이 행장은 입사 후 업무 능력에서 두각을 보였다. 2004년 개인마케팅 팀장 재직 시 개인영업부문에서 높은 성과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 카드전략팀을 이끈 당시 인기를 끌었던 우리V카드가 출시됐다. 

그러나 업무 능력만으로 정치금융 논란을 종식시키기엔 부족했다. 서금회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는 강력한 업적이 필요했다. 정부와 우리은행의 염원인 민영화였다. 그는 취임식에서 민영화 달성을 경영목표로 제시했다. 임기도 일반적인 3년이 아니라 2년으로 짧게 잡았다. 민영화에 대한 의지였다. 

쉽지 않았다. 우리은행 민영화는 그간 네 번 실패했다. 이에 지난해 정부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 51.04%를 4~10%씩 나눠 파는 과점주주 매각방식으로 전환했다. 아부다비투자공사(ADIC) 등 중동 지역 국부펀드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저유가가 심화돼 중동 국부펀드들이 세계 투자금을 회수하고 신규 투자를 피하고 있다.

이 행장은 다음달부터 유럽 투자 유치를 위해 직접 영국, 독일 등을 돌며 투자설명회(IR)를 실시한다. 그러나 우리은행 주가가 공적자금 회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유럽에서의 투자자 유치도 불확실하다. 지난 18일 종가 기준 우리은행 주가는 8470원으로 공적자금 회수 기준 주가 1만3500원보다 5030원 낮다.

이 행장은 주 임무인 민영화 숙제는 아직 풀지 못했지만 우리은행을 모바일 중금리 대출 선두주자로 세웠다. 한발 빠르게 실행한 덕분이다. 우리은행은 2014년12월 조직을 개편해 핀테크사업부를 신설했다. 금융권 최초였다. 모바일 전문은행 위비뱅크가 여기서 태어났다.

지난해 1월 신용보증기금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신용보증기금과 연결한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위비뱅크에서 출시했다. 지난 11월에는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해 연내 영업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점과 인력 비용을 줄여 중금리 대출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우리은행 내부 관계자는 "이광구 행장은 영업통이다. 위비뱅크, 케이뱅크도 그런 면에서 시작한 것"이라며 "우리은행에 공적자금이 들어와 있다고 해서 중금리 핀테크에 나선 것만은 꼭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위비뱅크의 대출액 한도는 2500억원이다. 이는 지난 12월 16일 기준 우리은행의 가계(신용)대출 잔액(주택담보대출 제외) 20조원과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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