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떨고 있니?”힐러리와 트럼프 ‘동병상련’
  • 김원식│국제문제 칼럼니스트 (.)
  • 승인 2016.01.20 21:47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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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첫 관문 2월 ‘아이오와’ ‘뉴햄프셔’ 혈투 예고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내에서 각각 이른바 ‘대세론’을 이어가고 있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 주와 뉴햄프셔 주의 선거를 앞두고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힐러리는 지난 2008년 급부상한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 주를 내주면서 대세론이 급격히 사그라졌고, 결국 대권 후보 자리까지 빼앗긴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또한 최근 급부상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 주를 테드 크루즈 후보에게 내줄 가능성이 커 과연 그가 ‘막말의 대명사’로 불리면서도 유지해온 대세론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힐러리와 트럼프는 맞서 싸워야 할 적임에도 첫 경선에서 모두 패배해 몰락의 길을 걸을지 모른다는 동병상련의 두려움에 봉착해 있는 상태다.

미국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 도널드 트럼프 ⓒ AP연합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힐러리 클린턴 ⓒ AP연합  

미국의 대선 후보는 공화·민주 양당의 대선 예비후보들이 각각 50개 주에서 예비선거를 치른 다음 각 당의 전당대회를 통해 확정된다. 각 주마다 절차가 다르나, 대체로 당원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코커스’와 일반 유권자도 참여할 수 있는 ‘프라이머리’로 나뉜다. 2월1일 선거가 치러지는 아이오와 주가 코커스인 반면, 2월9일 선거를 치르는 뉴햄프셔 주는 프라이머리로 진행된다. 미국 50개 주 중에서 이 두 개 주가 미국 대선 후보들이 통과해야 할 첫 관문으로 꼽힌다. 특히 아이오와 주는 향후 대선 후보의 전망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선 풍향계’로 불린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이다. 힐러리는 전국적인 지지율에서 버니 샌더스(버몬트 주 상원의원)에 앞서 있음에도 뉴햄프셔 주에서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샌더스에게 39% 대 53%로 오차 범위를 넘어 밀리고 있다. 아이오와 주에서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44% 대 49%로 샌더스 후보에게 역전을 당했다. 아이오와 주는 힐러리가 상당한 지지율로 앞서 있었으나, 급격히 추월을 당한 다음 결국 역전당했다. 이러다 보니 8년 전인 2008년 경선에서 당시 초선 상원의원이던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에게 패해 결국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던 상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당시 힐러리의 승리가 대세처럼 돼 있었지만, 아이오와 주에서 첫 뚜껑을 연 결과, 힐러리는 오바마와 존 에드워즈 후보에게 밀려 3위에 그쳤고 결국 그 여파로 경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샌더스는 미국 대선 예비후보 중에서 최고령인 74세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2008년 경선 당시 오바마의 상황과 닮아 있다. 이 때문에 힐러리 캠프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이 최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샌더스가 45세 이하 연령대에서 힐러리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지지율을 얻은 점은 그에 대한 방증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면서 과감한 공약을 내거는 샌더스에게 기성 사회에 불만이 많은 대학생이나 청년들의 지지가 몰리고 있는 양상이다. 다만 과거의 오바마와는 달리 흑인이나 히스패닉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힐러리를 앞서지 못하는 것이 힐러리 캠프의 유일한 위안거리다. 대부분의 선거자금을 과거 오바마처럼 이른바 ‘풀뿌리’ 소액 기부에 의존하고 있는 샌더스 후보가 대선의 풍향계인 아이오와 주와 뉴햄프셔 주에서 승리한다면, 과거 오바마 돌풍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힐러리 캠프에 몰려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뉴햄프셔 주에서는 힐러리의 패배가 확실해지고 있다. 따라서 힐러리 캠프는 잘못하다가는 첫 경선 관문인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모두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

‘막말의 대명사’로 불리면서도 대세론을 이어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도 대선의 첫 관문을 앞두고 힐러리와 거의 같은 상황에 몰려 있다. 트럼프도 힐러리와 마찬가지로 전국적으로는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첫 경선이 실시되는 아이오와 주에서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투는 테드 크루즈(텍사스 주 상원의원)와 30% 내외에서 막상막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트럼프는 다만 뉴햄프셔 주에서는 30% 전후의 지지율로 여타 공화당 후보들을 배 이상 앞서고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각종 막말에도 불구하고 대세론을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도 첫 관문인 아이오와 주에서 패배한다면 치명타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 캠프는 최근 미국 내 대표적 에탄올 생산 지역인 아이오와에 유리한 정책인 ‘에탄올 혼합 의무화 정책’에 관해 자신의 찬성 입장과는 달리 크루즈 상원의원이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막판 지역 표 몰이에 몰두하고 있다.

힐러리·트럼프, 대선 맞상대 원해

힐러리와 트럼프는 내심 서로 상대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특히 첫 관문 통과를 장담하지 못해 깊은 고민에 빠진 힐러리 측의 속내는 노골적이다. 힐러리 입장에서는 정통 정치인 출신인 테드 크루즈 후보나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주 상원의원) 후보보다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선정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트럼프가 막말을 이어가면서 주로 백인 중심의 기존 공화당 성향의 보수 지지층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전 계층이 투표에 참가하는 본선에서는 오히려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등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란 분석에서다.

트럼프 측에서도 노장인 샌더스보다는 힐러리가 상대하기 편하다는 분위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막말’이라는 그동안의 공격 수단이 증명했듯, 힐러리의 경우 국무장관 역임 과정에서 불거진 이메일 스캔들을 비롯해 공격할 만한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또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여전히 유효한 약점이다. 파격적인 공약을 앞세워 젊은 층을 파고드는 샌더스보다는 기존 정치인의 허물을 간직하고 있는 힐러리가 오히려 좋은 먹잇감이라고 보는 것이다.

미국 대선 경선을 앞두고 힐러리와 트럼프가 동병상련에 빠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까지는 힐러리와 트럼프 모두 첫 관문인 아이오와 주 경선에서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이들 두 후보에게는 아이오와 주의 결과가 가슴에 꽂히는 저주의 칼날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초기 경선 지역인 아이오와 주와 뉴햄프셔 주의 경선 결과가 반드시 미국 대선 결과와 일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6년 2월1일과 9일에 각각 치러질 이들 주의 경선 결과가 ‘예상을 초월하는 트럼프 돌풍’이나 ‘힐러리 대통령은 시간문제’라는 현재의 판세를 한 방에 날릴 수도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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