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공습에 국내 ‘빅3’ 위기 본격화
  • 노진섭·이석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1.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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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덧칠한 ‘메이드 인 차이나’의 세계 시장 공략… 자본력과 정부 지원에 투자 전략까지 갖춰
휴고 바라 샤오미 글로벌사업부 부사장이 2015년 6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사의 스마트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XINHUA 연합

대륙의 공습이 본격화되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중국의 ‘메이드 인 차이나’에 밀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와 샤오미에 협공당하고 있다. 세계 가전업계 시장 도전에 나선 하이얼은 LG전자와 삼성전자를 거세게 위협하고 있다. 향후 전기차로 바뀔 자동차업계에서도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은 완상그룹과 타이치그룹이현대·기아차 및 삼성·LG보다 한 발짝 더 나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3대 그룹이 모두 중국에 따라잡힐 것이라는, 아니 이미 따라잡히고 있다는 우려가 점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美 실리콘밸리 IT기업들과 합작 투자 전략”

2012년 전 세계에서 팔리는 스마트폰 2대 중 1대는 한국산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 주인공은 중국산으로 바뀌었다. 시장조사 기관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중국 업체들의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합계는 약 42%였고, 올해는 45%를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 12억9300만대 가운데 중국산은 5억3900만대로, 삼성과 애플의 판매량 합계인 5억 4700만대와 엇비슷했다. 올해는 중국산 스마트폰 출하량이 삼성과 애플의 전체 수량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상위 10개 스마트폰업체 중 7개가 중국 업체다.

중국 스마트폰업계를 이끄는 화웨이(華爲)는 지난해 1억대 이상을 판매하며 삼성과 애플에 이어 세계 3위의 스마트폰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1초에 3대씩 판 셈이다. 1월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 2016)에서 화웨이는 신작 스마트폰(메이트8)을 공개하며 2년 안에 세계 시장 2위로 발돋움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삼성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이런 장담에는 중국 방식의 치밀한 전략이 있다. 화웨이는 삼성·애플에 이어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자체 설계하는 등 부품 경쟁력을 갖췄다. 제품의 성능 향상을 위해 화웨이는 매년 매출의 10% 이상을 R&D(연구·개발)에 쏟고 있다. 세계 9개국 16곳에 R&D센터를 설립했고 17만명의 직원 가운데 45%를 연구·개발 분야에 배치했다. 이를 기반으로 약 4만 건의 특허를 보유한 세계 최대 특허 보유 기업이 됐다. 삼성전자의R&D 투자 비율은 매출의 5~8%다. 송원근 경남과학기술대학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기업은 재벌 지배권 강화에 집중하느라 연구·개발 투자가 미약하다”며 “특정 부문에서는 삼성과 LG가 협력할 줄도 알아야 한다. 국내에서 스마트폰도 언젠가는 면봉이나 이쑤시개처럼 우리가 만들지 않는 제품이 될 텐데, 그때를 대비해 AP나 소프트웨어 등 특별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약 7000만대의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4위로 뛰어오른 중국 샤오미(小米)의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생산 단가와 마케팅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생산을 외주로 돌리고 판매를 온라인 중심으로 진행한다. 200만원대 TV를 100만원 이하로 판매하지만, 품질 낮은 제품이 아니라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중국 기업들의 분석력도 상당 수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에서 2014년 말 시행된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이후 이동통신사와 스마트폰 제조사의 혈맹 관계가 깨지는 국내 상황을 중국은 꿰뚫고 있었다. 단통법으로 보조금 규모가 축소되자 위기를 느낀 국내 이통사들은 삼성·LG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자구책을 찾고 있었다. 이를 포착한 화웨이는 지난해 12월 LG유플러스를 통해 저가 스마트폰(Y6)을 국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샤오미는 KT와 전자상거래 업체 인터파크를 통해 1월4일 스마트폰(홍미노트3)을 6만9000원에 판매했다. 국내 한 이통사 관계자는 “LG유플러스에 이어 KT까지 중국 제품을 들여오니까 삼성·LG등이 거세게 항의해 국내 판매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며 “삼성과 LG는 이통사의 중·저가 폰 판매에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전했다. 송원근 교수는 “중국은 과거와 달리 정교한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품질과 가격만 따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중국산 공세에 대해 “고급 제품과 저가 제품은 시장이 달라 우리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지금의 스마트폰을 개발하기 위해 중국은 오래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IT(정보기술)기업들과 합작 투자하는 전략을 썼는데, 합작 계약을 맺을 때 중국은 기술 이전 조건을 두어 핵심 기술을 축적했다”며 “이는 비단 IT산업뿐만 아니라 중국의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이뤄지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연간 4억대 규모로 2위 미국보다 약 3배가 크다. 중국 제조업체로선 자국에서만 영업을 잘해도 세계 5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나치게 내수 시장 의존도가 높은 게 향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화웨이와 ZTE를 제외하고 샤오미·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내수 시장 의존도는 90%에 이른다. 또특허 침해 소송에도 시달리고 있다. 화웨이와 샤오미는 내년 미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을 야심 차게 갖고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세계 리더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송원근 교수는 “중국은 향후 10년 동안 성장세를 타겠지만 그 후 세계 리더가 될지는 미지수”라며 “‘재벌문화’ 때문에 우리 기업이 세계리더가 못 되는 것처럼, 중국 역시 국영 기업이라는 속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전업체 시장에서의 중국 공습도 거세다. 이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은 그동안 한국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돼왔다. 글로벌 브랜드로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LG와 삼성의 경쟁력 우위가 확고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만하는 사이 어느덧 중국은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1월6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6’에 참가한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의 전시장. © 연합뉴스

중국 가전업체, 내수로 막강한 자금력 확보

세계 가전 시장에 미묘한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싸구려’ 취급을 받던 중국 업체들이 M&A(인수·합병)를 통해 고가 시장에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 사업 부문을 인수한 하이얼이 대표적이다. 중국 내수를 통해 축적한 자금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인 GE의 가전 부문까지 삼킨 것이다. 인수금액만 54억 달러(6조5600억원 상당)의 초대형 M&A였다. 하이얼은 이번 거래로 자사 제품에 GE 브랜드를 사용하는 판권도 확보했다. 재계에서는 하이얼이 GE의 브랜드 파워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삼성·LG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북미 지역에서는 그동안 월풀(14%), LG전자(12%), GE(10%), 삼성전자(9%) 순의 점유율을 보여왔다. 하이얼의 경우 현재 북미 시장 점유율이 1%대에 불과했지만, GE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3위권 으로 부상했다. 삼성을 제칠 뿐 아니라, LG와도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선 것이다.

세계 5위권 TV 제조업체인 중국 ‘하이센스’도 최근 일본 ‘샤프’의 멕시코 TV 공장을 2370만 달러(277억원 상당)에 인수했다. 마찬가지로 하이센스 제품에 샤프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샤프 상표의 판권 확보는 하이센스에 날개를 달아줬다. 기존의 시장 선도 업체인 삼성이나 LG 등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은 1월19일 미국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하이얼은 앞서 일본의 ‘산요’도 인수했지만 시장 변화는 크지 않았다”며 “하이얼이 GE를 안고 간다고 해도 (프리미엄 기술을 따라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단기적인 위협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원 현대증권 연구원은 “세계 가전 시장은 친환경이 대세”라며 “이를 기반으로 브랜드 인지도나 디자인 경쟁력, 모터 등 핵심 부품 내재화 역량 등을 확보하는 LG전자 입장에서 하이얼은 당분간 큰 위협 요소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이얼의 원가 경쟁력에 GE의 기술력과 마케팅 네트워크가 더해질 경우 국내 기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가전 부문 매출의 20%전후를 북미에서 올린 LG나 삼성의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경쟁자가 나타난 셈이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GE의 중저가 제품에 하이얼의 원가 경쟁력이 반영되고, 하이얼의 고가 제품에 GE의 브랜드 인지도가 반영될 경우 국내 가전업체에 큰 위협이 될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제조업은 최근 제2의 ‘넷크래커’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급속한 기술 발전과 일본의 엔저(低)로 국내 기업의 경쟁력 하락이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권세훈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중국 가전업체들의 자국 패널 조달률은 올해 8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국 기업의 빠른 기술 추격과 브랜드 인지도상승으로 한국 가전산업의 위협 요소가 증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 주도로 전기차 육성 정책 나서

전기차 시장에서도 중국의 반격이 거세다. 중국은 최근 세계 최대 자동차 판매 시장으로 떠올랐다. 2013년 단일 국가 최초로 판매량 2000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로컬 자동차의 점유율은 2010년 46%에서 2014년 38%로 8%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세단형 승용차는 같은 기간 31%에서 22%로 점유율이 급락하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이나 눈높이는 계속 올라가는데, 로컬 제조사들의 기술이나 브랜드파워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연구원은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에 승부수를 띄웠다. 로컬 자동차 브랜드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 자동차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에서는 최근 대기오염 최고 등급인 적색경보가 발령됐다”며 “로컬 브랜드 육성과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차 육성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전기차에 대한 취득세를 면제해주고 보조금도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전기차 수요는 2013년 5.6%에서 2015년 28%로 크게 증가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글로벌 M&A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완상그룹은 20014년 미국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피스커오토모티브(현 카르마오토모티브)를 인수했다. 현재 1억원대의 쿠페형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출시한 상태다.

중국 자동차기업인 타이치그룹은 한국화이바의 전기버스 사업부문까지 인수했다. 타이치그룹은 1차로 2017년까지 550억원을 투자해 전기차 조립 및 생산 시설을 지을 예정이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삼성이나 LG 등 국내 전자업체가 신성장 동력 확보 차원에서 전기차 사업에 나서고 있다”며 “세계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경쟁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이 2015년 11월 상하이에서 자체 제작한 중형 항공기(C919)를 공개했다. © PIC 연합

지난해 11월2일 비행기 한 대가 엔지니어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대형 오성홍기로 장식된 공장 출구를 빠져나와 위용을 드러냈다. 중국의 첫 중형 여객기 ‘C919’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C919는 중국상용항공기유한책임공사(COMAC·코맥)가 2008년 자체 개발에 착수해 제작한 여객기다. 이 출고식에 대해 중국 언론들은 자국 항공산업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중국 제조업이 첨단 산업 단계로 발돋움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 중국 지도부는 C919 출고에 축하 메시지까지 보냈다. 진좡룽(金壯龍) 코맥 회장은 “C919는 중국 최초 자체 개발 항공기라는 점에서 기념비적인성과”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 여객기의 영문 이름을 ‘C’로 정한 것은 세계 3대 항공기 제작국으로 올라서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프랑스의 에어버스(Airbus), 미국의 보잉(Boeing)과 함께 ‘ABC(Airbus-Boeing-Comac) 항공기 시대’를 열겠다는 전략이다. 코맥은 올해 시험 비행을 마치고 첫 납품 시기를 2018~19년으로 잡았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항공기 개발에 나선 배경에는 향후 내수 수요만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있다. 실제로 중국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철도보다 여객기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모든 지방을 항공망으로 연결하기 위해 매년 공항 100개를 건설해 2030년까지 2000여 개를 확보할 계획이다. 여객기 개발과 공항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이 과거와 다른 전략을 구사하게 된 밑바탕에는 고급 두뇌 영입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인 패션기업과 자동차 제조사에서 뛰어난 인재를 스카우트했다. 최명철 한라대 중국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의 저력은 인력에서 나온다”며 “미국에 유학 중인 중국 학생들을 흡수하는 정책을 쓰면서 고급 인력이 중국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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