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책임 전가할 때가 아니다
  • 이수정 |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
  • 승인 2016.01.28 19:09
  • 호수 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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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아동학대 시신 유기 사건…학대 의심 아동정보 공유시스템 구축해야

어찌하여 인간이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 것인가. 언론은 경쟁적으로 부천 아동학대 사건의 엽기적인 시신 유기 방법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1월21일 경찰 브리핑에서는 심지어 사망한 아들의 시신을 손괴한 후 엄마·아빠가 치킨을 주문해 먹었다고 발표했다. 정말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끔찍한 일이다. 경찰의 발표 내용을 귀로 듣고도 이것이 사실일까 의심하게 된다.

인간은 잔인한 동물이다. 프로이트도 인간에게는 삶의 본능(Eros)뿐 아니라 죽음의 본능(Thanatos)이 있어서, 인간이 벌이는 모든 비이성적인 폭력과 파괴행위의 근간이 된다고 했다.

부모라고 해서 본능 자체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며 이 같은 야만의 본능을 공동체에서 용인되는 방식으로 억제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부모가 되는 과정 역시 후천적인 습득 과정이 꼭 필요하달 수 있겠다.

초등생 아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냉동 보관한 혐의를 받는 최 아무개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1월17일 경기도 부천시 원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포악한 부모로부터 구조할 기회 있었다

혹자는 모성을 본능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천 사건은 이 같은 모성 역시도 제대로 된 학습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이기적인 파괴 본능 앞에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인간이 욕망을 위해 혈육까지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 번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다. 이를 상기하자면 이번 사건이라고 유독 이해하지 못할 법도 없겠다.

문제는 이런 이기적 본성에도 불구하고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지원할 시스템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거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사는 시절에는 부모의 미숙함을 조부모가 채워주고 감시하며 어린 부모들도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 것인지 배우도록 했다. 하지만 가족의 해체가 빠르게 진행된 오늘날에는 불완전한 가족의 형태가 훨씬 많아졌고, 더욱이 경제사정이 힘들어지면서 육아를 포기하는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아동학대가 심화되는 현상은 이 같은 사회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자면 부천의 최군 사건은 독립된 개별 사건이 아니다. 인천에서 발견된 11세 피학대 소녀에 이은 유사한 아동학대 사건, 또한 2013년 칠곡 계모, 울산 계모 사건과 맥을 같이하는 동일한 사건인 것이다.

아동보호 전문 기관에서는 이미 2013년부터 장기 결석자들을 전수조사 하라는 권고를 이어왔다. 또한 아동학대 예방에 각 부처의 업무가 잘 연계돼 있지 않음도 지적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부천 사건도 역시 포악한 부모로부터 최군을 구조해낼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고 한다.

2012년 4월 말부터 최군이 학교를 무단결석하자 담임교사는 최군의 집을 두 차례 방문했다. 현행 지침상 아이들이 7일 이상 무단결석을 하면 학교는 가정에 두 차례까지 경고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담임교사는 주민센터에 이 같은 사실을 지침대로 이첩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가정 방문을 통해 장기 결석 아동에게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야 했던 주민센터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최군은 공기관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고, 온전히 친권자의 손에만 고립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무단결석 이후 3개월여 동안은 최군의 의료기록도 확인된다. 즉 친부의 폭력으로부터 또 다른 구조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해볼 수 있는데,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 의무가 있었던 의사 역시 최군을 외면해 11월께 부친의 폭력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관련 기관을 떠돌다 구조의 기회를 놓치는 사례는 2013년에도 있었다. 울산 계모 사건이 그것인데, 8세였던 소녀는 이미 지역 아동보호 전문 기관에 학대 의심 사례로 보고된 바 있었다. 하지만 행정처분의 지연으로 서류만 오가던 중 소녀는 목숨을 잃었다.

초등생 아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냉동 보관한 혐의를 받는 최 아무개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1월17일 경기도 부천시 원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아동보호 시스템 대폭적으로 손질해야

현재 아동보호 업무는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하지만 학교 내 보호 책임은 교육부에 있고, 학업 중단자 관련 업무는 여성가족부가 맡고 있다. 더욱이 관련 업무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기관에까지 흩어져 있다 보니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느라 혈안이 된다. 더욱더 심각한 점은 학대 사건으로 신고라도 되지 않고서는 경찰이 전혀 개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학교는 주민센터로, 주민센터는 다시 교육청으로, 지역아동센터는 지방자치단체로 서류만 오가는 동안 학대 가해자는 피해자를 데리고 주거지를 옮겨버린다. 학교도 지자체도 강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호되게 경고하거나 아이를 분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무조건 신고부터 하고 보는 노력이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사법기관의 개입이 있어야만 강제력이 발동될 것이므로 아동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구체적 대안이 제공될 수 있다. 또한 학대받는 것으로 의심되는 아동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학교나 경찰, 지자체 및 관계 기관은 아동의 학대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상시 확인할 수단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기관에서 기관으로 문서만 이첩되는 방식으로는 집 안에서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아동의 목숨을 안전하게 지켜내기 힘들다.

또한 검찰과 법원의 개입도 중요하다. 친권을 제한하거나 박탈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권을 가진 기관의 개입이 필수적인데, 이들 사법기관에서는 친권을 제한하는 조치와 더불어 부모로서 부족한 자들이 선도 교육을 통해 참부모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교육명령이나 치료명령을 조건부로 제공할 수 있는 법률 개정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현재 교육부의 전수조사 결과, 장기 결석 아동 중 4명의 소재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부디 부천의 최군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기를 희망해보지만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참에 아동보호 시스템의 대폭적인 손질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요란한 법 개정보다 우리의 인식 전환이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며 그 어떤 경우에도 폭행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부모 되기는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부단한 노력을 통한 자제력의 습득, 본능 억제가 모성애와 부성애를 발휘하는 시작점인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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