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해고당하기 더 쉬워졌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2.03 14:17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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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해고·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논란 / 야권·노동계 “위헌적 발상”
© 일러스트 정찬동

“당신은 ‘전략적 성과관리’ 대상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어느 날 대형 증권사 ‘15년 차증권맨’ 김 아무개씨는 이런 회사의 통보를 받았다. ‘증권맨’으로서 자부심이 강했던 그다. 그는 서울 노원구의 한 지점에서 일했다. 하지만 회사가 요구하는 영업 실적을 채우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을 두고 회사는 ‘교육’이라고 했다. 실제로 회사는 일정 기간 김씨에게 온라인 교육을 했다. 회사는 김씨에게 이 교육을 해주며 2개월 동안에 목표 실적을 꼭 달성하라고 했다. 하지만 김씨가 평소에도 채우지 못한 실적을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해내기는 어려웠다.

회사는 김씨가 이 ‘교육’을 통과하지 못했기에 ‘2차 전략적 성과관리’ 대상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시 노원구의 지점에 있던 김씨를 경기도 고양시로 발령 냈다. 이번엔 3개월 동안 매달 목표 영업 실적을 내라고 했다. 이 기간 동안 월급의 절반만 지급했다. 김씨의 주요 고객은 먼 지역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2차를 통과하지 못한 김씨에게 다시 3차 ‘교육’이 진행됐다. 회사는 김씨에게 외부 명함 10장 받아오기, 산 정상까지 가서 인증샷 찍기 등 직무 관련성이 적은 일을 지시했다. 김씨는 모멸감을 느꼈다. 결국 사직서를 냈다. 이미 그에게는 ‘저(低)성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이는 대신증권의 ‘저성과자 해고’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대신증권 사례는 저성과를 빌미로 편법 해고한 대표적 예다.

회사가 공정하게 ‘저성과자’ 가려낼 수 있나

정부가 최근 내놓은 ‘양대 지침’은 대신증권과 같이 저성과를 빌미로 노동자를 해고한 회사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이 인다. 양대 지침은 정부가 1월25일 시행한 ‘일반해고·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를 말한다. ‘일반해고’는 저성과자 해고를 뜻한다. 근로기준법 23조에 따라 기존에는 사측에서 노동자를 해고하는 방법이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두 가지였다. 징계해고는 노동자가 비리를 저질렀을 때, 정리해고는 회사가 경영상 위기를 맞았을 때 이뤄진다.

‘일반해고’ 지침은 저성과자 해고를 인정해 사실상 새로운 해고 사유를 만드는 셈이다. ‘일반해고’와 함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지침도 시행됐다.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업무 수행을 위해 정한 노동자의 노동 조건과 규율을 말한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이를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꾸려면 노동자집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정부 지침은 노동자 동의 없이 사용자가 임의로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단,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은 양대 지침이 노동 시장을 개혁해 일자리가 늘어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새누리당도 정부의 양대지침에 대해 “전적으로 수용한다”며 반기고 나섰다. 반면 야당은 정부의 노동 관련 양대 지침이 ‘초헌법적 쿠데타’이자 ‘위헌적 긴급조치’라며 맞서고 있다. 한국노총은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제기 등을 통해 지침의 효력을 무력화하겠다며 ‘소송투쟁’에 나섰다. 민주노총은 양대 지침이 시행된 1월25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양대 지침이 가장 비판받는 부분은 회사가 과연 ‘저성과자’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장관은 “회사의 자의 적인 평가를 막기 위해 계량평가나 절대평가를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 회사가 노동자 측 대표를 포함한 인사평가자를 복수로 두고, 저성과자를 해고하기 전에 교육 훈련, 배치 전환 등 고용 유지 노력을 하도록 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수치화할 수 있는 인사평가 기준 역시 회사가 주도해 만들기 때문이다. KT 노동자 해고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2000년대 후반 KT는 직원에게 본업과 관련 없는 업무를 맡겨놓고, 이를 다른 사람만큼 해내지 못하면 ‘성과 부진’이라며 징계했다. 안내원 일을 하던 여직원에게 전신주에 오르는 업무를 맡긴 후 “실적이 좋지 않다”며 해고한 일도 있었다. 우지연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업무 자체가 극소수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평가 기준은 회사의 주관적 판단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도 “정부는 회사가 평가 기준을 마련할 때 노동자 대표가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하는데 노동자의 대표성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전혀 반영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이 1월25일 전국 47개 지방관서장이 참석한 기관장회의에서 수첩을 꺼내고 있다. © 연합뉴스

양대 지침 위법성 커 줄소송 우려

양대 지침은 행정지침에 불과한데도 근로기준법 및 법원 판례와 심각하게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통해 노동자가 법의 보호망 밖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법원과 노동위원회가 업무 능력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을 이유로 저성과자 해고를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15년간 노동위가 판정한 정규직 구제신청 사건을 검토한 결과, 업무 저성과를 이유로 해고를 정당하다고 인정한 사례는 15년간 11건에 불과했다. 우지연 변호사는 “노동위뿐 아니라 법원도 저성과 문제만을 이유로 해고한 사건은 대부분 부당해고로 판단해왔다”고 말했다.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지침에 대해서도 법적 오류가 있다는 비판이 많다. 대법원 판례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94조도 회사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때 노동자 동의를 얻어야 효력이 발생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이 때문에 행정지침에 불과한 양대 지침이 상위 성문법인 근로기준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광택 국민대 명예교수는 “정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경우에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인정한다고 판단한 일본 판례를 들어 이 지침이 정당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한국 근로기준법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를 명시하고 있는데도 굳이 일본 판례를 가져온 것은 무리수다”라면서 “양대 지침은 법과 충돌하기에 줄소송을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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