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연쇄살인범이다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프로파일러) (.)
  • 승인 2016.02.04 14:17
  • 호수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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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죄수가 추가 범행 실토 형사와 게임하려는 자기과시형 범죄자인가

A씨(50대)는 2011년 유흥주점 여종업원을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야산으로 옮겨 암매장해 은닉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그런데 조용하게 복역을 하던 그가 갑자기 자신을 담당했던 형사에게 A4용지 두 장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 “D 형사님, 살인 사건은 총 11건입니다. 저를 만나러 오십시오.” 이후 그는 접견 온 형사에게 11건의 살인 사건 리스트와 자술서를 작성해 건넸다. A씨는 자신이 작성한 내용대로 관련 사건을 해결하려면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일종의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A씨는 ‘자백’의 대가를 요구하기도 했다. D 형사는 영치금이나 영치물품을 반복적으로 넣어줬고, 부산 일대 살인 사건 등에 관한 자료를 일부 제공했다. 물론 진실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관련 단서 제공을 미끼로 담당 형사를 괴롭힌 것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낙서하듯 그린 약도 한 장을 건넸는데, 그 장소는 2011년 유흥업소 여종업원을 암매장한 장소와 비슷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장소에서 2003년 실종된 여성(A씨의 동거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자백한 듯 보이던 A씨는 곧바로 자신의 자백을 번복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살인 사건의 단서라며 뭔가를 던져주는 등 일종의 수사 방해를 시도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그렇지만 결국 이 황당한 사건 전개로 인해 A씨는 편지의 내용대로 2003년 저지른 동거녀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다시 재판을 받았는데,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평생 바깥 햇살을 볼 수 없게 됐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는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10년 정도 감옥살이를 하면 출소하는데 자신의 또 다른 범죄를 노출시켜 그 기회마저 놓치는 바보짓을 한 꼴이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사례를 들며 일종의 ‘자기과시형 범죄자’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과연 그런 걸까.

낮은 자존감에 분노 폭발

2011년 사건부터 되짚어보자. A씨는 2011년 9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유흥주점 여종업원에 대한 살인죄와 사체은닉죄 등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살해 수법은 교살(絞殺)이었다. 당시에 시체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 고향인 함양군 인근 ‘아리랑고개’ 야산 능선에 암매장했다. 시체 훼손 여부는 분명하지 않았다. 이 범죄는 우발적 동기와 내면의 계획이 결합된 범죄라고 판단된다. 술을 마시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피해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이전에도 경험했던 방식대로, 그리고 평소에 했던 대로 분노를 살인이라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단지 이 사건은 A씨 입장에서는 재수가 없어 체포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2003년 사건은 어떨까. 과거로 돌아가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A씨는 2003년 6월경 평소 동거하던 여자 B씨(34세)를 자주 폭행해왔다. 동거녀가 지인의 집으로 자신을 피해 도망간 채, 자신과 통화하면서 심하게 다투자 B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A씨는 대구에 있는 자신의 거주지로 B씨를 데리고 가서 살해했다.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토막)한 후 여행용 캐리어에 넣어 고향 함양군 인근 ‘아리랑고개’ 야산 능선에 암매장했다.

2003년 사건과 2011년 사건은 거의 유사하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고, 자기 소유라고 생각한 존재가 자신에게 모욕을 줬고, 이에 자존감을 구긴 범인이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분노조절장애’, 정확히는 DSM-V상에서 ‘파괴적·충동통제장애 및 품행장애(Disruptive, Impulse-Control, and Conduct Disorders)’ 범주에 속한다. 일종의 ‘정서와 행동에 대한 자기통제의 문제를 나타내는 다양한 장애’에 해당하고 하위 범주에서 ‘간헐적 폭발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일종의 사이코패스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장애와 같은 하위 유형에 ‘반사회적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낮은 존재감으로 인해 늘 열등감에 시달리는 특징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별로 말이 없다가 어느 순간 자신을 모욕한 존재를 향해 폭발하는 것이다.

폭발하려는 대상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그가 통제할 수 있는, 혹은 그렇게 믿는 대상이다. 이는 그가 가진 낮은 자존감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범죄자들에게 주로 당하는 피해자들은 동거녀, 내연녀, 유흥업소 여종업원, 작은 선술집 주인, 동네 슈퍼 주인, 고시원이나 원룸의 주인 등이다. 또 이들의 행동은 그 반경이 넓지 않다. 시신을 유기하는 장소는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곳이 아니라 자신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장소와 깊이 관련돼 있다. 그 장소는 이후 다른 범죄에서도 이용된다.

감옥에서 추가 살해를 자백한 A씨 사건을 다룬 SBS 의 한 장면. ⓒ SBS 캡쳐


‘개털’ 취급하던 재소자들에게 ‘허풍’ 떨었나

A씨는 체포돼 재판을 받았는데, 그는 B씨에 대한 살해 혐의를 부인했다. 대신, 도박 빚 3000만원을 탕감받는 대가로 지인 C씨가 소개한 남성 2명과 함께 검은 비닐 안의 어떤 것을 야산에 묻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비닐 안에 B씨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B씨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시신 유기에 가담했을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2010년 9월 A씨가 지목한 장소에서 B씨의 유골이 발견됐다. 유골에는 인위적인 절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결국 A씨는 당시 담당 경찰관 D씨에게 살해에 대한 자백을 했다.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문제는 A씨가 이후 자백을 번복하고 법정에서도 원래 주장을 되풀이했다는 점이다. 자신은 B씨의 사체를 유기하는 데 가담했을 뿐 살해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가석방에 대비해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의 부착을 명했다. A씨의 무죄 주장에 대해서는 첫째 성명불상의 2명이 직접 시신을 암매장하면 되는 것이고 굳이 신뢰 관계도 없는 피고인에게 갑자기 시신 암매장을 의뢰했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둘째로 시신이 피고인의 전 동거녀라는 것이 너무도 부자연스럽다는 점 등에 비춰보면 피고인의 주장은 그 자체로 믿기 어려운 내용이며, 셋째 피고인이 도박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넷째 피해자의 지인에 의하면 피해자가 피고인의 전화를 받고 나간 후 다시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점, 다섯째 범행 당일까지는 피고인과 피해자 간의 통화 내역이 있는데 그 이후 두절된 점 등을 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전화를 받고 나간 이후 실종된 것에 비춰보면 피해자의 실종 및 사망은 피고인과 관계가 있다고 봤다. 또 A씨가 2011년 선고받은 살인죄 등의 사건에서 시신을 암매장한 장소가 B씨 암매장 장소와 매우 인접한 곳에 있다는 점도 인용됐다.

그렇다면 A씨는 담당 형사에게 왜 편지를 보냈을까. 그 해답은 앞서 언급한 그의 성격장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A씨는 평소 낮은 자존감이 문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교도소 바깥에 있었다면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을 것이다. 가끔 번 돈으로 유흥가에 가서 돈을 쓰고 그 돈으로 동거녀도 구하는 한편 성매매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교도소 안에서 한낱 ‘개털’에 불과한 존재였다.

그런데 A씨 마음 안에서는 이런 생각이 자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내가 사람을 여럿 죽여서 나만 아는 장소에 숨겨놓았다. 경찰은 감도 못 잡고 있다. 그게 바로 나인데 나를 무시해?’ 교도소 안에서 재소자들은 다양한 허풍을 떤다. 범죄 수법을 자랑하는 것은 기본이고 범행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속여 넘긴 담당 경찰들에 대한 비웃음 등등. 그런데 평소 허풍만 떠는 A씨에 대해 다른 재소자들은 신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A씨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솟은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보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큰, 그리고 조폭들일 수도 있는 재소자들을 공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사건을 저지르기로 한 것이다.

A씨는 담당 형사에게 편지를 썼다. 아주 그럴듯했다. 거짓말로는 형사를 완전히 속일 수 없으니까 자신이 벌인 사건 하나를 던져줬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연쇄살인범이다. 나는 이 정도로 대단한 존재다.’ 그러자 그가 생각한 대로 담당 형사가 자신을 찾아왔다. 이러한 사실은 교도소 내에 삽시간에 퍼졌다. 영치금도 받고 필요한 물건도 받았다. 자신을 개털 취급하던 다른 재소자들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 이게 바로 나야.’

그런데 덜컥 문제가 생겼다. 조금만 알려준다는 것이 너무 많은 정보를 실토하게 된 것이다.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설마 형사 놈이 시체를 찾겠어.’ 형사가 접견 올 때마다 교도소 내에서 다른 재소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적당히 섞어서 계속 허풍을 떤 것이다. ‘마치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시체가 발견됐다. ‘어떻게 할까. 그때 다른 재소자에게서 들은 청부 살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 7년이나 지났다. 목격자도 없고 시신도 많이 부패됐을 것이다. 난 그저 허풍을 떤 것이고 다른 사람의 청부살인에 참여한 것뿐이다.’

20년의 자유와 교도소 내 자존감 맞바꿔

만기 출소했을 나이를 가정할 때 A씨는 약 20년의 자유와 교도소 안에서의 자존감을 맞바꾼 셈이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물론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무모하고 또 무의미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러한 행동은 최상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해를 하거나 다른 재소자와 충돌이 일어나 크게 다쳤을 수도 있다.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보호행동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교도소 안에서 예전에 다른 재소자들로부터 받았을 깔보는 눈빛이 아닌 연쇄살인범 대접을 받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만의 세계이고 그들만의 논리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 그는 정말 11건의 범죄를 저질렀을까. 우선 재판부의 판단을 보자. 해당 사건 재판부는 병합된 A씨의 다른 살해 사건 11건 중 2007년 11월 술에 취해 길을 걷다가 어깨가 부딪친 사람을 흉기로 살해했다는 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이전에 그런 주장을 했다고 해도 법정에서 부인하고 있고 증거 능력이 있는 자백 진술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 검사가 제출한 부수적이고 간접적인 증거물이나 정황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물론 당시 담당 수사진은 11건에 대해 일정 정도 수사를 진행했고 실제 11건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사실에 부합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그중 가장 정황이 짙은 거리 범죄 하나만 기소했다.

필자의 생각은 앞서 언급한 대로 허풍과 짜깁기, 그리고 창작의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성격장애 특성상 적어도 3~4건 정도는 사실일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2003년부터 2011년 사이 약 8년 동안 유사한 폭력범죄는 존재했을 것이고, 2003년 교살과 토막 그리고 은닉에 성공했다는 것은 폭력범죄의 반복 과정에서 통계상 2~3년 주기로 유사한 분노 해소의 방법이 반복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쇄살인범의 살인 주기는 가장 길 때가 3년 내외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추정이다. 좀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A씨에 대한 정밀 검사가 필요하고 A씨 주변과 행적에 대한 보강 수사도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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