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는 한·중 관계 파국 지름길”
  • 홍순도│아시아투데이 베이징지국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2.23 17:47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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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국에 경제보복·무력시위 등 초강경 대응할 수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월12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 외교장관 회의 직후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 Xinhua 연합

수교 이후 가장 좋다고 하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 문제로 크게 삐걱거리고 있다. 자칫하면 수교 이후 가장 나쁜 관계로 추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관계의 파국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여겨진다.

사드가 북한 핵 방어용이 아니라 자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중국의 반응을 보면 진짜 이런 우려는 단순한 기우에 그치지 않을 듯하다. 우선 정부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2월17일 정례 내외신 기자회견에 나선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의 입을 통해 “사드 배치는 긴장 국면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중국의 국가 안전과 이익을 훼손한다. 배치계획의 철회를 요구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며칠 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 항우의 동생 항장이 칼춤을 춘 것은 유방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미. 다시 말해 미국이 한국을 통해 중국을 압박한다는 의미)이라는 고사성어를 사용한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입장에서 몇 걸음 더 나간 적극적인 주장으로 보인다. 자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압박하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한국, 사드 배치 대가 감내해야” 강경한 입장

사실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면 이 같은 중국의 강경 자세는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의 보도들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우선 1월27일자 사설을 봐야 할 것 같다.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과 중국 사이의 신뢰를 엄중하게 훼손할 것이다. 한국은 그로 인해 생기는 대가를 감내할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협박에 가까운 주장을 펼쳤다. 이뿐만이 아니다. 2월17일자 논평은 한 술 더 떴다. “한반도의 전쟁 발발을 막기 위해 중국이 대륙 동북 지역의 군사력을 증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전쟁 발발을 막겠다는 요지의 주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군사력으로 한국을 압박하겠다는 의지가 더 잘 읽힌다고 해도 좋다.

이러니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나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을 통한 일반 중국인들의 반응도 과격할 수밖에 없다. “이참에 미국과 한국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처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을 희롱하고 있다. 정말 괘씸하다” “최악의 경우 한국과 단교도 불사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넘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중국정법대학 정치학과 한셴둥(韓獻棟) 교수는 “중국인들의 반응이 이런 것은 당연하다. 사드가 북한이 아닌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것은 사실 아닌가. 이런 경우 어떤 나라가 가만히 있겠는가”라면서 앞으로는 더욱 격한 반응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드에 대한 중국의 이런 극단적 거부 반응은 사실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표출돼왔다. 가장 먼저 거론한 주인공은 바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었다. 2014년 7월 국빈 방한을 했을 때 “한국은 사드가 문제되지 않도록 주권국가로서 반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상당히 직설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이어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같은 해 11월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 간담회에서 “사드 배치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목표로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확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국회 방중단을 서울 명동의 중국대사관에 초청한 자리에서도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은 모기를 잡기 위해 대포를 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사드 문제를 거론했다.

인민해방군 내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없다면 이상하다고 해야 한다. 실제로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이 지난해 2월 “사드의 한국 배치는 중국 안보와 한·중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사드가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과 관련이 있다. 사드의 핵심인 엑스(X)밴드 레이더의 탐지 반경이 2000㎞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일면 이해될 소지도 없지 않다. 미국이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레이더의 감시 대역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으나 중국이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까닭이 없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2월16일 장예쑤이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드는 중국 겨냥한 것” 극단적 거부 반응

또 사드 배치가 동북아의 새로운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부담 역시 이유로 손색이 없다. 이는 중국이 틈만 나면 입에 올리는 이른바 “한반도를 비핵지대화하고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협상과 대화로 해결한다”는 이른바 대(對)한반도 3원칙 정책에도 어긋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드 배치로 인해 동아시아의 미·중 간 전략적 균형이 완전히 파괴된다는 사실과 냉전 시대에 구소련의 핵미사일 공포에 시달린 악몽과 트라우마 역시 중국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로 꼽아야 할 것 같다.

당연히 중국은 사드 배치 저지를 위해 더욱 적극적 행보에 나설 개연성이 농후하다. 가장 먼저 예상되는 것이 한국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압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한국에는 뼈아픈 경제 보복을 꼽을 수 있다.

무력시위로 맞불을 놓는 강경 대응에 나서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최근 이례적으로 최대 사거리가 1만3000㎞에 이르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둥펑(東風)-31A의 발사 장면을 사상 처음으로 중국중앙방송(CCTV)을 통해 공개한 것은 이런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해도 좋다.

러시아와 연대·공조하는 전략 역시 충분히 선택 가능한 카드가 아닌가 싶다. 러시아가 사드 배치와 북한 고강도 제재를 반대하는 것에서는 중국과 입장을 같이하는 만큼 상당히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도 있다. 러시아도 은근히 중국과의 공조를 원한다는 점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남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한·미·일, 북·중·러가 대립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 분위기를 보면 사드의 한국 배치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시간문제라고 해도 괜찮다. 앞으로 한·중 관계가 더욱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결코 과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경우 피해는 한국이 훨씬 더 많이 보게 된다는 점에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슬기로운 대처와 전략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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