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이 너무 힘들어 나 먼저 갈게”
  • 서종한 | 프로파일러 (사이몬프레이저대학 정신건강법 (.)
  • 승인 2016.02.25 18:40
  • 호수 137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임병 성추행에 씻을 수 없는 수치심 휴가 중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

수원에 사는 20세 김현주씨가 한겨울 차가운 한강에 몸을 던졌다. 군대를 갔다 1년 차 휴가를 나온 시점이었다. 그는 포천에 있는 부대로 복귀한다며 집을 나섰지만 그날 복귀하지 않았다. 곧 해당 부대는 그에 대해 근무지 이탈로 수배를 내렸고 아버지는 남부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다. 그런 지 이틀 만에 마포대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선착장에서 관리인이 시신을 발견하고 112에 신고한 것이다.

ⓒ 일러스트 임성구


군,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몰아가

군인은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살률이 높다. 특히 부사관과 병사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3.9명을 웃돌고 있다. 공동체 생활과 상명하복의 위계적인 분위기에서 선임 혹은 후임들과의 관계를 힘들어하는 경우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특히 선임의 잦은 폭언과 폭력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게 된다. 선임으로부터 성추행, 학대나 무시를 당해온 경우 총기를 사용해 살인 후 자살을 하기도 한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휴가를 나온 상태에서 자신의 주거지나 여행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심리부검을 하다 보면, 군 자살의 경우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군 내부의 폐쇄적인 병영문화 특성 탓에 사건이 발생한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보호자에게 통보되고 이 중에서도 극소수가 언론에 공개된다. 과학수사의 체계도 미흡한 수준이며 현장 보존과 실체 규명이라는 수사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윤 일병 사건처럼 책임 회피를 위해 해당 부대장이 현장을 훼손하거나 자살과 관련된 사실을 은폐·축소해 오히려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하려는 속셈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군에서 이뤄지는 심리부검에는 가능하다면 내부자를 관여시키지 말 것을 추천한다. 외부 민간 심리부검 전문가가 조사에 참여해 외압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근거로 군 내부의 확증적 편견과 작위적 수사 방식을 점검함으로써 견제의 기능을 할 수 있다.

“고참 상병이 새벽마다 불러내 성추행”

김현주씨의 경우도 군대가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 즉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몰아가려고만 했다. 그 우울증이 군 복무 이전부터 있었으며, 군대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개인 성격 문제로 사회에서 앓아왔던 우울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몰아갔다. 이렇게 묻힐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간 흘러 피해자 가족의 소청 끝에 법원에서 재심의가 결정됐고, 사망자와 유일하게 알고 지냈던 한 병사, 지금은 제대한 김진석씨와 누나와의 면담을 통해 그때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됐다.

누나의 진술에 따르면 이랬다. “휴가 나온 군인치고는 우울해 보였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활기가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혼자 있을 때 갑자기 커터 칼로 손목을 그었다. 내가 막 집에 들어서는 순간이어서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 병원에서 간단히 치료받고 귀가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울기만 하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알게 되었지만 휴가 기간 동안 집에 있으면서 노트에 유서를 짧게 작성했다. 자살 전에 자신의 휴대폰을 이용해 자살 방법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특이한 점은 동생의 로그 기록을 살펴보면 인권위 홈페이지에 수차례에 들어가 검색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기록 중에는 성희롱·성폭력·동성애 등 알 수 없는 검색어도 있었다. 그 아이가 죽고 나서야 이 검색어와 자살 간에 연관성이 있을 수 있겠구나, 직감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이 내용조차도 몰랐다.”

제대한 동기 김진석씨의 진술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휴가를 나가기 4개월 전부터 동기가 이상해진 것 같았다. 새벽 2시만 되면 화장실에 간다면서 나갔다. 그리고는 30분이 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그러다가 갈수록 횟수와 시간이 길어졌다. 한 날은 내무실에서 환복을 하다가 목 부위에 시퍼런 멍이 든 것을 보고 놀라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제야 나에게 울며 털어놓았다. 1기 선임인 박 상병이 자신을 새벽마다 불러내 성추행을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성기를 애무해달라고 했다가 어떤 날은 항문 성교를 하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 자신도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라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 더 이상 가지 말라는 나의 당부에 자신도 그랬다가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덩치가 좋은 박 상병은 후임들을 때리거나 욕설이 심해 기피 대상자였다. 나는 내무반장한테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이전에 자기를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하면서 허벅지 부근에 칼로 상처를 냈다고 하며 보여줬다. 그 이후로 나도 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몇 개월을 보냈다. 그리고는 나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 휴가를 나가 자살을 한 것이다.”

정작 그의 유서는 짧았다. “아빠·엄마·누나 미안해 나 먼저 갈게. 군 생활이 너무 힘들어. 누나 부모님 잘 돌봐줘. 군대에서 받은 돈 통장에 있으니깐 찾아서 부모님께 용돈 드려.”

그는 군대 가기 전 누나와 부모님 두 분과 함께 살았다. 학교도 집 근처를 다니며 통학했다. 아버지는 좀 무뚝뚝한 편이셨지만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시는 근면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였지만 가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 무뚝뚝한 아버지 때문에 외로움을 많이 느낀 어머니는 여자 아이처럼 말도 많고 붙임성이 좋았던 아들을 많이 의지하며 살았다. 누나와는 네 살 터울이었지만 동생을 알뜰하게 챙겨주거나 용돈도 주면서 잘 지내왔다.

2014년 8월12일 육군 28사단 관심병사 2명이 휴가 중 숨진 채 발견됐다. 군 수사기관은 이들 사병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 연합뉴스

성격이 외향적이고 얼굴도 갸름하게 잘 생긴 여성형이라 주변 여자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연애에 관심이 없어 이성 교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미술에 취미가 있어 전공도 응용미술을 선택했다. 차분하고 주변에도 착한 이미지를 줘 사람들이 많이 따르거나 의지를 했다. 주말에는 어머니 일을 도와드렸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도 챙겨 드렸다.

여성적인 취향이 있었는데, 파마를 하거나 머리를 길게 기르기도 해 뒤에서 보면 여자로 착각하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군대 가기 전까지 공부만 했다고 한다. 가족 중에 정신병력이 있거나 자살한 친척이나 지인에 대한 노출은 없었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도 별로 없었지만, 군대 사건 이후 스트레스에 민감해진 것으로 보였다.

군인 심리부검 전담 기구 절실해

필자는 심리부검을 통해 이런 형태의 자살을 ‘급성 위계적 대인(對人) 자살’이라고 명명했다. 사망자의 삶이 군 입대 이후 순조롭고 스트레스가 없다가 자살 시점을 기준으로 불과 몇 개월 전부터 착취적인 대인 관계에 의해 아주 심한 스트레스를 느낀다. 이후 불안과 스트레스를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이른바 무망감(無望感), 덫에 걸려 갇힌 듯한 무기력감, 불안에 따른 극단적인 우울감을 경험하게 되는데 특히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이 이를 더 극단적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망자의 경우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함께 느꼈을 것이다. 삶의 의미를 잃을 만큼의 자존감 훼손은 결국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위계를 행사한 대상자는 분명 살인에 준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더군다나 그런 소인(素因)이 전혀 없었다면 순전히 성추행으로 인해 발생한 자살이기 때문에 그 책임이 더 크다.

현재 미국은 2002년부터 국방부에서 개발한 군대 건강증진 프로그램 규정에 명시된 기준과 과정에 따라 심리부검(PAM-2002)을 진행하고 있다. 자살 사망자의 죽음과 관련해 그 종류를 규명하고 원인을 찾기 위해서다. 사망에 대한 후향적 분석은 보고의 정확성을 높이고, 자살에 대한 역학연구, 자살 예방활동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데 유용하다. 한국도 군인에 대한 심리부검을 제도화·전담화할 전담 기구 설치가 절실해 보인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 등 민간 전문가가 참여함으로써 ‘자살 상황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군대 간 아들의 죽음에 의심을 품기 마련인 유가족’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투명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