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1200조시대…정부는 마냥 느긋
  • 하장청 기자 (jcha@sisabiz.com)
  • 승인 2016.02.26 17:45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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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늘리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 또다른 경제위기 단초될 수 있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여신심사가 강화된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대출부스에서 고객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 사진=뉴스1

가계부채로 국내 경제가 멍들고 있다. 2014년 하반기 이후 정부의 주택경기 활성화 정책과 저금리 기조 속에 가계부채는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가계부채는 1207조원에 달해 실물 경제로 위기가 번질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 지난해 말 가계부채 총량 1270조원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 총량은 1206조9798억원으로 3분기 말 1165조9000억원에 비해 41조1000억원(3.5%) 증가했다. 이런 가계부채 잔액은 국내총생산(GDP)의 70%를 넘어서는 위험 수준이다.

가계부채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 916조1622억원에서 2012년 963조7944억원으로 늘었고, 2013년엔 1019조405억원으로 단숨에 1000조원을 넘어섰다. 2014년 1085조2592억원, 지난해엔 1207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됐다. 이런 추세라면 불과 3년 안에 1500조원마저 넘어설 기세다. 지난해 4분기 말 가계대출은 1141조8000억원으로 3분기 말 대비 39조4000억원(3.6%) 늘었다.

이 가운데 예금은행 대출은 22조2000억원으로 4.1% 증가했다. 아파트 분양이 호조를 보이며 집단대출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주택담보대출이 18조원으로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상호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 대출도 9조6000억원으로 4.0% 늘었다. 보험, 연금기금, 여신전문기관 등 기타금융기관 대출은 7조6000억원으로 2.4%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 말 판매신용은 65조1000억원으로 1조7000억원(2.7%) 증가했다. 다만 신용카드 사용액 감소에 따라 신용카드회사의 판매신용 증가폭은 축소됐다. 3분기 말 3조2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줄었다.

◇ 정부, "가계부채 심각한 수준 아니다…안정적으로 관리"

정부는 이런 가계부채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이다. 전반적인 실물 경제 위기론 등 확대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는 요인으로 주택시장 정상화, 금리 인하에 따른 대출 수요 증가 등이 꼽힌다. 분양 물량이 확대되며 부동산 거래가 늘었고, 대출 관리 강화 시행 이전의 선수요 등도 가계부채 증가에 일조했다.

정부는 그 동안 가계소득 증대, 서민과 취약계층 지원강화 등 가계부채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다고 밝혔다. 상환능력 범위 내, 분할상환 등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선진국형 여신심사 제도도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최근 취급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67%가 비거치식∙분할상환 방식이다.

정부는 오히려 주택 실수요자 중심의 가계대출이 늘어 실물경제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교적 건전성이 양호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위주로 증가했기 때문에 금융시스템 차원의 안정성은 유지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상환능력이 양호한 소득 4~5분위 가구의 가계부채가 약 70%를 보유하고 있어 실물 경제 위기는 다소 과장됐다는 평가를 내놨다.

◇ 가계부채 급증…정부의 느슨한 대응 탓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의 느슨한 대응이 가계부채를 키웠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경기부진으로 가계소득은 정체되고 있는 반면 가계부채 총량과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안일한 가계부채 대응이 또 다른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가구 중 빚이 있는 가구는 전체의 64.3%, 가구당 평균 빚 규모는 6181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중은 24.2%에 불과했다. 아직 갚아야 할 금액이 더 많은 셈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는 빚이 늘어난 결과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역시 과도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로 인해서다.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기관들의 영업 형태도 가계부채 확대에 일조했다. 그 동안 금융대출 대부분은 거치식 구조였다. 대출을 받은 이후 상당기간 원금상환에 대한 부담 없이 이자만 상환하는 방식이다. 저금리 기조로 예대마진이 축소됨에 따라 부동산 담보대출을 적극 장려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 담보대출이 늘어나게 됐다.

정부의 부동산 경기 활성화 방안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부동산 정책이 경기 부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한 조치들을 완화하며 부동산 투기심리는 되살아났다. 부동산 투자를 통해 부를 축적하기 위한 대출 시행도 본격화됐다.

◇ 올해도 가계부채 증가세 이어질 것

전문가들은 올해도 가계부채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완중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관리 대책 시행에도 불구, 아파트 집단대출 확대 등을 고려할 때 가계부채는 상당기간 급증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정부 가계부채 관련 질적구조 개선에 따른 변동금리 대출 비중 감소, 분할상환 대출 비중 확대 등의 효과는 긍정적이지만 부채 총량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소득 증대가 근본적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으로 인한 금리 상승 위험, 전∙월세가 상승 등으로 가계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가계 소비여력 위축, 주택담보대출 보유 차주∙다중채무자∙고령층 차주의 금리 상승 위험 등에 따라 가계부채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경완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계부채의 급격한 증가는 금리 하락에 따른 레버리지 확대와 정부 부동산 활성화 정책 효과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은 연구원은 “올해 대출 심사 강화, 원리금 부담 증가 등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둔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저금리 환경이 지속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가계부채 증가세는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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