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꽃, 나비가 되어 ‘귀향(鬼鄕)’하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3.02 01:07
  • 호수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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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삶 다룬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이 영화로 감독 인생 끝나도 괜찮다”
© 시사저널 최준필

“언니야, 미안하다. 혼자 돌아왔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그래. 괜찮다. 나도 다 안다. 집에 같이 가자.”

홀로 돌아온 열네 살 정민이는 열다섯 살 영희를 수십 년 만에 만났다. 위안부의 증거를 없애기 위한 일제의 ‘소각명령’에 운명이 엇갈린 그들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기차에서 동무가 됐고, 위안소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산 자(者)의 상처는 평생토록 사라지지 않았다. 스러진 20만여 영혼은 아직도 이국땅을 헤매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다룬 영화 <귀향>이 2월24일 개봉했다. 첫날 15만4000명이 넘는 사람이 관람해 예매율 순위 1위를 기록했다. 50여 개 정도로 예상했던 상영관도 500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7만3164명이 모금을 해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꼭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지 14년 만의 일이었다.

개봉 이틀째인 2월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정래 감독은 웃지 않았다. 그동안 짊어진 짐을 내려놨다는 홀가분함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컸던 것일까. 개봉 첫날에는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는 “<귀향>은 먼 곳에서 위로받지 못했던 영혼을 부르는 치유의 영화”라며 “이 영화가 한 번 상영될 때마다 한 분의 영혼이 고향 집을 찾아오신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했다.

한 장의 사진, 14년의 열정으로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잠이 오지 않았죠. 어렵사리 잠들고 꿈을 꾸었는데 불에 태워진 소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더라고요. 너무 선명한 기억이었어요. 다음 날부터 바로 영화 <귀향>을 준비했죠. 인생을 바꾼 순간이었어요.”

대학 시절 국악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조정래 감독은 2002년 우연한 계기로 ‘나눔의 집’을 찾았다. 위안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그저 불쌍한 할머니들이라고만 여겼다. 자신의 장구 소리를 듣고 어깨를 들썩이며 즐거워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장의 그림을 접했다. 강일출 할머니가 심리치료를 받으며 그렸던 <태워지는 처녀들>이었다. 처음에는 분노했고, 분노는 수치심으로 변해갔다. 그리곤 영화를 통해 수치심을 씻어내자고 다짐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4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영화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10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다. 누군가는 ‘위안부 영화를 누가 보겠느냐’고 조롱했다. ‘위안부는 돈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간 사람들’이라는 말에 분노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차례 진행된 모금에 7만여 명이 참여했다. 적게는 100원에서 수십만 원까지 건넨 이들도 있었다. 배우 손숙씨를 비롯해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촬영 장소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겠다는 곳도 생겼다. 그렇게 기적은 시작됐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도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특히 위안소에서 고통을 당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찍을 때에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조정래 감독뿐 아니라 연기자, 촬영 스태프들까지 함께 분노했다.

일각에서는 위안소의 적나라한 장면이 잔혹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굳이 그런 모습까지 그대로 담아야 했느냐는 의미다. 이에 대해 조정래 감독은 “이 영화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문화적 증거’”라며 “고증을 통해 실제 모습을 담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촬영 도중 연기자가 ‘현실성을 더하기 위해 다 벗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증언한 내용의 10분의 1도 담지 못했다”고 일축했다.

 

영화 스틸컷 © (주)와우픽쳐스 제공

“일본, 독일 100분의 1만큼이라도 반성해야”

조정래 감독은 지난해 12월 시사회를 진행하고 부산으로 이동하던 도중 한·일 간 위안부 협상 타결 소식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10억 엔을 지원하는 대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는 합의 내용에 대해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말을 아꼈다. 그는 “피해자들, 당사자들이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제 말은 필요가 없다”며 감정을 억눌렀다.

조 감독은 합의 이후 일본의 행태에 대해 또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유엔에서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부인하고, 외무상이 이를 재차 확인해주고 있다”며“(한·일 간 합의 이후) 더욱 뻔뻔해졌다. 체감적으로 예전보다 더욱 심해졌다”고 평가했다. 앞서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은 2월16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출석해 “아사히신문의 오보 때문에 ‘위안부 강제연행’ 주장이 퍼졌다”고 강제연행 사실을 부인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월24일 스기야마의 발언에 대해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 논리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일침을 놓았다. 조 감독은 “정치적 논리와 무관하게 영화 <귀향>은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고발 내용을 담고 있다”며 “전쟁을 주도하고 계획한 이들은 아직도 야스쿠니(靖國) 신사에서 주요 지도자들의 참배를 받으며 일본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의 태도는 (전쟁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죄한) 독일과 너무 비교된다”며 “역사는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털고 가야 한다”고 했다.

조 감독에게 영화 상영이 끝난 이후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은 확실했다. “영화 수익이나 영화를 통해 얻어질 명예에 관심 없어요. 이 영화로 감독 인생이 끝나도 괜찮습니다. 할머니들도, 일반 시민들도, 위안부 문제 쟁점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영화를 보고 함께 대화했으면 좋겠네요. 영화 <귀향>이 이번에 상영되고 상영 횟수 목표치인 20만 번을 채울 때까지 평생 살면서 채워가야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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