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민변 절대 만나지 말라고 협박”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7:59
  • 호수 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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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보위부 직파 간첩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받은 홍강철씨

“탈북 이유를 댔는데, 조사관이 ‘너 탈북 이유가 말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중략) 대답한 대로 답을 또 하니까 옆에 다시 와서 책상을 발로 ‘꽝’ 걷어찼습니다. 책상이 밀려서 저한테 올 때까지 머리털이 섰습니다. 내게 ‘양아치 XX, 싸가지 없는 XX, 찔찔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제5공화국 이전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홍강철씨(43)가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이하 합신센터)에서 있었던 일을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검찰과 국정원은 홍씨를 ‘북한 보위사령부에서 보낸 간첩’이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014년 3월 구속 기소했다. 수사 당국은 홍씨가 합신센터에서 간첩임을 시인했다면서 간첩이 맞는다고 했다. 또 홍씨의 탈북을 지원하려 했던 브로커 유 아무개씨가 “홍씨는 간첩이고 나를 납치하려 했다”고 주장한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하지만 2월19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최재형)는 홍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로 결론이 난 셈. 법원은 홍씨가 합신센터에서 한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홍씨가 합신센터 조사를 받을 때 진술 거부권, 변호인 조력권을 제대로 고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홍씨가 합신센터에서 한 진술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점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브로커 유씨의 진술도 홍씨의 탈북 과정으로 본 여러 정황상 믿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2월26일 현재까지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2월23일 홍씨를 만나 그동안 있었던 탈북 과정과 합신센터의 조사 과정에 대해 들었다. “2심 재판이 끝난 후 변호인(장경욱 변호사)과 지리산에 다녀왔다”는 그는 전보다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간첩 혐의 항소심 판단까지 2년이 걸렸다.

허무하다. 이런 죄를 쓰고 모함을 받으니 내가 선택한 길(탈북)이 옳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1심보다 항소심이 힘들었다. 1심 때는 구치소에 있었다. 변호사님만 믿었다. 하지만 2심 때는 한국 생활에 부딪치면서 재판 준비도 해야 했다. 준비해야 하는 기록이 1만 쪽이 넘었다. 주변 사람이 그럴 거면 사법고시를 준비해보라고 했을 정도다.

 

북한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북에서 강건종합군관학교(북한의 육사 기능을 하는 학교)를 나왔다. 검찰이 나에게 ‘엘리트라 허위 자백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군 제대 후 탈북 지원을 했다. 나는 국경경비대에 인맥이 많으니 이를 통해 탈북을 소개했다.

 

왜 탈북하려 했나?

2013년 2월말~3월초에 탈북하자고 결심했다. 당시 부인이 나와 비슷한 일을 하다 감옥에 갔다. 내가 잡히면 이 일을 함께한 처가는 다 감옥에 가야 했다. 보안소(경찰서)에도 나와 함께 탈북 지원을 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내가 걸리면 옷을 벗어야 했다. 그런데 내게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그래서 탈북하자고 결심했다.

 

탈북 과정에서 간첩 혐의를 받게 된 이유는 뭔가?

탈북을 결심했을 때 돈이 없었다. 부인을 감옥에서 빼내려고 알아보다가 다 썼기 때문이다. 그때 브로커 유씨가 나를 도와준다고 했다. 유씨는 박 아무개씨와 그 딸을 데리고 중국으로 넘어오면 탈북을 돕고 돈을 준다고 했다. 갖은 고생 끝에 도강(渡江)해서 중국으로 갔는데 유씨는 접선 지점을 계속 바꾸다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브로커를 통해 한국에 왔다. 그 후 유씨가 나를 간첩이라고 수사 당국에 제보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정원, 가족 데려다준다 회유한 뒤 말 바꿔”


국정원 합신센터는 어떤 분위기였나?

탈북자를 사람 취급 안 했다. 직원은 소지품 검사를 할 때 이 새끼, 저 새끼라고 욕을 했고, 군대식으로 사람을 줄 세웠다. 배식을 할 때도 국정원 직원이 ‘북한 사람은 알아서 먹게 하면 맛있는 것만 다 먹고 뒤에는 사람 먹을 게 없다’고 했다. 또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고 내게 ‘머저리’라고도 했다.

 

합신센터 조사에서 자신이 간첩이라고 말한 이유는 뭔가?

국정원은 ‘KAL기 폭파 사건’ 김현희씨를 예로 들며 ‘사람 115명을 죽였는데 징역 3년밖에 안 살았다. 너 말고도 탈북한 보위부 정보원이 한둘이 아닌데 잘 살고 있다. 너는 한국 와서 잘못한 게 없는데 그거 하나 인정 못하느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간첩 혐의를 인정해도 별일이 없을 줄 알았다. 또 당시 나는 담배와 술, 읽을거리 없이 독방에 있으니 힘들었다. 조사관은 협박과 동시에 내게 담배·술을 주며 조서를 쓰도록 힌트를 줬다. 가령 조사관이 내게 ‘너 종북 인사 동향 파악하러 왔지’라고 하면 내가 남파된 목적을 조사관 말대로 ‘종북 인사 동향 파악’이라고 쓰는 식이다.

 

재판까지 가게 된 과정은 어땠나?

국정원은 간첩 혐의를 인정하면 가족을 데려다주고 언론에 발표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정원이 평양에 있는 사람도 데려오는데 접경지역에 있는 네 가족 데려오는 건 일도 아니라고 했다. 나는 혐의를 인정하고 국정원 말을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에 국정원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있는데 정신 나간 변호사들이라면서 찾아오면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다. 구치소에 간 나는 나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난 걸 알았다. 그걸 보고 가족이 위험하니 데려다달라고 했는데 검찰은 가족이 탈북해서 제3국으로 넘어오면 보호해준다고 했다. 그건 누구나 보호해주는 게 아닌가. 그때 속은 걸 알았다.

 

합신센터를 겪어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나도 간첩은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합신센터의 독방은 없어져야 한다. 한국에서 탈북자 인권 이야기 나오는데 진짜 인권을 생각하면 이런 부분이 먼저 고쳐져야 한다. 합신센터에 머무르는 인원이 150명 정도인데 통일 꿈꾸는 국가가 그 인원도 관리 못해서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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