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용 회고록] ‘금융계 황제’ 이원조 의원이 비밀 자금 조달
  • 박관용│前 국회의장, 정리=김현일 대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8:01
  • 호수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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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의 드러나지 않은 돈은 867원…‘딴 주머니’ 안 차 퇴임 후 고생

YS(김영삼 대통령)의 ‘밝히지 않은 돈’ 실체가 드러났다.

 

2015년 11월 서거한 YS는 모든 재산을 국가에 헌납했다. 53억원 규모다. 재산 목록을 보면 상도동 자택 15억원을 비롯해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고향 경남 거제군 장목면 임야와 전답 등이다. 여기에 현금 재산(동산)은 없다. 헌납 재산은 그의 정신을 기리는 데 사용토록 돼 있고,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김영삼민주센터’는 이들 부동산을 처분해 센터 건립에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묻혀 있던 현찰이 나타났다. 농협 통장 잔고 확인을 통해서다. 박관용 YS 청와대 초대 비서실장은 “YS는 1원도 없다”고 했는데 ‘허위 증언’을 한 셈이다. 농협에 있던 돈이 그의 서거 후 드러난 것이다. 2월 현재 총액은 867원.

 

1992년 5월 민자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김영삼 총재. 노태우 대통령은 YS를 탐탁지 않아 했으나 ‘일단’ 후보가 되자 측근들을 동원해 자금 지원에 나섰다. ⓒ 연합뉴스

 


많이 받고 썼지만 사사로이 챙기지 않은 YS

 

웃자고 해본 얘긴데 하고 보니 찡하다. 이 나라에서 현찰을 가장 많이 받고, 써본 사람 중의 하나가 YS다. 웬만한 대기업 오너까지를 포함해도 그럴 터다. 특히 그 ‘받은 돈’이라는 게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대개는 ‘그냥’ ‘거저’ 얻은 것이다. 거제에서 멸치어장을 하던 선친 김홍조옹이 정치자금을 대줬다고 하지만 극히 일부임은 당연하니, 50년 정계에 머무르면서 얼마나 받고 썼을까는 어느 누구도 가늠조차 못한다. 오랜 야당 시절은 차치하고 1992년 대선 때 노태우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지원받은 자금만도 ‘공식적(?)’으론 3000억원이다. 그러나 실제 받은 돈이 1조원이 넘으리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직간접으로 YS와 YS 진영에 자금을 건넨 이들의 증언도 있다. 노 대통령의 정무수석이자 YS 부인 손명순 여사의 조카이기도 한 손주환 전 공보처 장관이나 이원조 전 의원(작고) 등이 당시 대선자금을 개략 추정할 수 있는 인물이다. 5·6공 때 금융감독원장 등을 지내며 권력층의 자금 관리를 도맡은 이 전 의원은 ‘6공 황태자’ 소리를 듣던 박철언 전 의원과 비견해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다. 손 수석이 청와대와 당 간의 ‘공식 자금(?)’ 창구 역을 했다면 노 대통령을 대리한 이원조 전 의원은 재계 인사와 YS 간의 ‘비공식’ 거래를 담당했다. ‘3000억과 1조원’의 괴리도 공식-비공식으로 이원화된 자금의 ‘합산 방식’에 따른 차이로 보인다.

 

<사실상 거의가 불법이고 자칫 책임이 따르는 민감한 사안이어서인지 박 전 의장은 돈 문제에 관해서는 직답을 피했다. 때론 YS의 이미지에 흠집을 낼지 모를 부분까지도 사초(史草)가 된다는 사명감하에 사실대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박 전 의장이었지만 이 대목에선 그랬다. 때문에 다른 분들의 증언을 확인하는 형식으로 원고 정리를 진행했고, 그는 ‘완곡’하게 술회했다. YS와 이원조 전 의원의 관계는 전형적 사례다. YS와 이 전 의원 사이를 오가며 ‘일’을 한 인사가 ‘박관용 의원’으로 알려지고 있고, 박 전 의장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몇 차례 거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돈의 성격과 규모로 미루어 박 전 의장에 대한 YS의 신뢰를 감지케 하는데 박 전 의장은 마침 이 전 의원의 대리인이 자신과 지기여서 소통이 편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회고록을 정리하는 기자가 더불어 그에게 설명을 구한 내용을 간추리면 대략 이런 것들이다. “대선자금이 1조원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당선자 시절 대기업주로부터 받은 ‘당선 축하금’만도 400억원에 가깝다는 주장이 있다. YS는 ‘(재벌들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아무렴 노태우 대통령이 집무실 금고에 남겨뒀다는 100억원(일각에선 300억원이라고 주장)까지를 합치면 최소 500억이 되는데 어찌 되나. YS는 집무 이틀째인 1993년 2월27일 자신과 가족 재산을 공개했었다. 당시 밝힌 재산 총액은 상도동 집 등을 포함해 6억8601만3410원이었다. 그해 8월 전격 실시한 금융실명제 시기 등을 아는 사람은 YS 한 사람뿐이다.”

 

YS, 다양한 자금조달 파이프라인 가동 

 

이에 대한 박 전 의장의 설명은 이렇다(역시 돈 문제이라선지 시원치는 않다). 

“대선 당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 선대본부에서 지급하는 돈은 그 많은 인원의 밥값도 안 됐다. 후보 YS가 내 방에 들렀을 때 ‘식사를 하면서 소주 한 잔도 못할 지경’이라고 했더니 포켓에서 수표를 잡히는 대로 꺼내주었다. 세어보니 1200만원이었다. 민정계의 견제 등으로 어렵게 자금을 구해가며 선거를 치르고 있나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건 아니었다. 수천억 얘기가 나오고…. 당선자 시절을 내가 확인할 위치에 있지도 않으니 언급할 게 아니고, 취임 후 일절 돈을 안 받은 것은 장담한다. 한번 한다면 하는 독한 YS다. 그가 재임 중 돈을 받았다면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낼 수 있었겠나. 김기섭 안기부 기조실장이 700억원의 통치자금을 관리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당선자 시절의 축하금 등을 맡긴 게 아닐지 모르겠다. YS의 큰 씀씀이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어디 가겠는가. 쓸 곳은 많고, 달리 받지를 않았으니 재임 중 그 돈을 가져다 쓰지 않았을까 싶다. 항상 자신만만한 YS였기에 후일을 대비하느라 아끼지는 않았을 게다. 몇 푼 남겼더라도 얼마 아닐 터다. 예전의 부하나 기업인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몇 백만 원이 없어 힘들어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봤다. 경호원들 식사비 걱정을 하고 미국에 거주하는 둘째 딸(혜정)의 비행기 표를 못 사줬다고 아쉬워했던 YS의 모습이 선하다. 말년엔 너무 어려운지 식사에 초대한 상대가 ‘잡비나 쓰시라’며 봉투를 내밀자 덥석 받아 넣기도 했다. 민망스럽지만 YS가 사욕을 취하지 않은 생생한 방증들이다. 돈에 관한 한 YS는 정말 깨끗하다. 사욕이 없다는 점에서. 돈에 관한 한 바보스럽다는 표현이 적확할 터다.” 

그는 대통령 취임 초기 6억8000여 만원의 재산이 50여 억원으로 늘어난 데 대해선 부동산 값 상승에 따른 것일 뿐 동산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야당 총재 YS를 뒤에서 가장 많이 도와주던 이는 서울 문리대 동기생인 구평회 LG 계열 회장인데 구 회장마저 세상을 뜨면서 많이힘들어했다는 것.

 

“신민당 총재 시절, 당사 옆 설렁탕집 주인이 밀린 외상값을 재촉한다고 푸념하는 유한열 사무차장을 뒤로하고 신라호텔에서 외식을 하는 YS였다. ‘폼’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주머니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YS다. 그런데 대통령이 됐으니 오죽하겠나. 정말 손이 컸다. 청와대로 부른 국회의원에겐 ‘넉넉하게’ 쥐여줬다.” “허세가 아니라 YS는 기본이 그런 사람이었다. 여느 정치인들과 달리 돈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정계 원로들이 전하는 이런 유형의 YS 회고담은 숱하다.

 

현철, 헌납 거제 땅 돌려달라 떼쓰다 혼쭐


많은 식솔을 거느린 YS이기에 경제적 궁핍을 겪은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종국엔 이런 사달까지 벌어졌다. “퇴임 13년 차가 되던 2011년 YS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선언했고 그의 유지를 받든 김영삼민주센터 이사회는 센터 정상화에 분주했다. 준공 검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지난 1월 부분 개관 중인 센터에서 김수한 이사장 주재로 이사회도 개최했다. 이날 회의 때 차남 현철씨가 들어섰다. 부친의 전 재산 헌납 선언 등에 불만을 품고 오래전 이사직 사임을 선언한 바 있는 현철은 다른 부동산은 몰라도 거제 시내에 위치한 시가 10억원 상당의 땅만은 돌려달라고 했다. 김 이사장과 김덕룡·김봉조 이사 등은 현철의 요구를 들으며 난감해했다. 이때 이사 중 한 명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현철을 준엄하게 나무랐다. ‘YS의 유지이기도 하고, 재단에 편입된 재산은 법적으로도 불가능한데 무슨 망발’이냐며 그를 쫓아냈다.”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박 전 의장은 “나도 센터 이사인데 김수한 이사장이 ‘현철이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고 하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이사회는 열 필요조차 없다. 나는 회의에 안 나간다’고 했다”면서 “정말 한심하다”고 딱해했다.

 

이렇듯 말 많게 마련인 ‘대통령과 돈’이지만 YS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역대 대통령들 모두 정치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검은돈과 무관치 않은 현실에서 다른 여러 대통령들과 달리 개인 치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물론 그게 야당 시절이건 대통령 후보 혹은 재임 중의 일이건 간에 시비 소지는 다분하다. 통상의 비즈니스나 금융 거래가 아니므로 법으로만 재단하면 치도곤 감이다. ‘관례화된’ 정치자금이었다고 치장을 해도 대충 넘길 일이 아닌 탓이다. 그럼에도 역대 다른 대통령들과 비교돼 YS는 일단 ‘평가’를 받는다. YS가 기득권층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금융실명제를 밀어붙인 것도 검은돈의 병폐를 절감한 반성적 결단이라는 진단도 있고 그런 치적 때문에라도 YS는 그 천문학적 자금의 ‘왕래’에도 불구하고 구설에서 비켜난 모양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욕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같은 평가를 받는 것과 흡사하다. YS의 정치자금 문제를 전두환·노태우·김대중 등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같은 반열에서 평가해선 곤란하다는 견해에 많은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는 게 우연이 아니다. ‘다른 분’들의 어마어마한 ‘수입 >지출’ 도식과는 다른 탓이다. 그래서 YS 자신은 돈 문제에서 ‘해방’됐다. 한데 YS 정부는 그렇지 못하다. 아들 현철을 비롯한 측근들이 검은돈에 물들어서다.

 

 

상도동에 자리한 김영삼민주센터. ⓒ 시사저널 임준선

“일본에서 초청을 받았으나 포기한 적도 있다. 저쪽에선 어른 내외와 수행원 2명의 항공편과 숙소만 부담하기로 했는데 7명의 경호원은 어쩌겠나. 겉으론 경호원 숙소 문제라고 했으나 실은 비용 때문에 그만뒀다. 남들은 YS로부터 혜택을 받은 정·재계 인사도 많으니까 여유가 있을 것으로 지레짐작하지만 아니다.” 1998년 퇴임 후 서거 때까지 17년 넘게 곁에서 YS를 모신 김 실장은 권력의 염량세태(炎凉世態)를 새삼 절감했다면서도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은 YS였으니 청와대를 떠난 후 애를 먹은 것은 정한 이치라고 했다.

 

돈에 욕심을 안 내는 게 YS의 천성이라는 것. “어른 명의의 통장은 연금(월 1000여 만원) 수령용이 전부였다. 그래서 서거 후 유품 정리를 하면서도 은행 쪽은 신경도 안 썼는데 농협에서 YS 명의의 구좌가 있다고 알려왔다. 잔고는 867원이었다. 20여 년 전 농협 사업을 격려한다고 200만원을 맡겼다가 원금은 찾아 썼는데 그 이자가 이체돼 있었다. 영부인 명의의 통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른이 돌아가시니까 배우자로서 본연금의 70%를 수령해야 했는데 통장이 없었다. 거동이 어려운 영부인을 배려해 은행 여직원이 실명 확인차 방문하고, 부랴부랴 나무 도장 한 개를 새겨오는 수선을 떨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부인 손명순 여사는 YS 국상을 치른 후 보름 동안은 힘들어했으나 “내가 중심을 잡아야지. 정신 차려야겠다”며 마음을 다잡은 이후에는 차분히 지내고 있다. 시가 15억원 상당의 상도동 집은 이제 김영삼민주센터 재단 소유가 됐지만 손 여사가 계속 기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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