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받아야 할 경찰이 ‘내사’를?
  • 정락인│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8:11
  • 호수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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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원 선수 자살 결론 온통 의혹투성이 유족들 “경찰을 수사하라” 촉구

윤기원 전 인천유나이티드 FC 골키퍼(당시 24세) 사망 사건이 새 국면에 들어섰다. 윤 선수는 지난 2011년 5월6일 서울 만남의 광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됐고,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렸으나 유족 등은 타살 의혹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윤 선수 부모는 “자살을 인정할 수 없다”며 5년째 아들의 사망신고를 미루고 있다.

 

시사저널은 제1346호(2015년 8월2일자)에서 윤 선수가 타살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핵심 쟁점들에 대해 심층보도를 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2월17일 KBS <추적 60분>에서는 시사저널에서 제기한 의혹을 토대로 타살 주체가 ‘조폭’이라고 좀 더 구체화했다.

 

시사저널은 제1346호에서 윤기원 선수 사망 사건을 심층보도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유족 제공

이후 서울 서초경찰서는 형사과 1개 강력팀을 전담 조직으로 정해 윤 선수의 죽음과 그와 관련해 제기된 조직폭력배 연루설 등을 내사하겠다고 밝혔다. 윤 선수를 “조폭이 죽였고, 이를 목격한 선수가 있다”는 동료 선수의 녹취록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의 내사 방침에 대해 유족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윤 선수의 아버지 윤희탁씨는 “기원이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의혹이 넘쳐나고 자살보다는 타살에 가까운 정황이 많았는데도 경찰은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자살로 단정했다”며 “단순한 부실 수사가 아닌 경찰의 조직적인 연루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해당 사건을 진행한 서초경찰서에서 내사한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경찰에 대한 비난 여론을 무마하거나 물타기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윤 선수 사망 사건을 처리한 서초경찰서의 수사 과정을 보면 온통 의혹투성이다. 경찰은 사건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았고, 변사체가 발견된 승용차 내부의 지문이나 DNA(유전자)를 감식하지 않았다. 시신의 체온 측정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윤 선수가 만남의 광장에서 자살한 핵심 증거물이라고 했던 폐쇄회로(CCTV)는 증거력이 없다며 폐기했을 정도다.

 

경찰, 지문·DNA 감식 안해


범죄 현장에는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지문·혈흔·체모·체액·사체 등이 있다. 그런데 윤 선수 사건에서 경찰은 사건 현장을 보존하기는커녕 오히려 훼손했다. 폴리스라인을 설치하지도 않았고, 윤 선수 차량이 있던 곳을 스프레이로 표시하지도 않았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변사체가 발견된 승용차를 임의로 옮겼다. 유족이 오기 전에 사건 현장을 말끔히 치워버린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지문이나 DNA 감식은 필수다. 윤 선수 차량의 경우 내부 상황이 조작됐거나, 윤 선수 혼자가 아닌 여럿이 있었다는 것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많았다. 가령 윤 선수의 시신 부검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1이었다. 500mL 캔맥주 반 잔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런데 승용차 안에서 나온 6개의 맥주 캔 중 3개의 캔이 뚜껑을 따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두 캔 반은 윤 선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먹었다는 것이 된다.

 

승용차 안에는 라이터와 화로, 번개탄을 포장했던 봉지와 과자봉지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던 만큼 지문이나 DNA 감식을 통해 의혹을 규명해야 했다. 그런데 경찰 수사 자료 어디에도 경찰이 차량 내부에서 발견된 지문이나 DNA에 대해 감식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경찰은 실무지침에도 언급돼 있는 변사자의 ‘체온’을 측정하지 않았다. 국과수 검안서를 봐도 체온을 측정했다는 기록이 없다. 때문에 윤 선수의 사망 시각이 정확하지 않다. 윤 선수 사망 사건의 최대 미스터리는 서울 ‘만남의 광장’이다. 경찰은 윤 선수가 이곳에서 자살했다는 근거로 휴게소 건물에 설치된 CCTV를 증거로 들었다.

 

2011년 5월18일 서초경찰서 형사과장이 서장에게 보고한 ‘수사보고(CCTV 및 번개탄 등 구입 여부 수사)’를 보면 윤 선수의 승용차가 만남의 광장에 도착한 것은 실종 당일인 5월4일 오후 11시2분이다. 그는 5분 후인 11시7분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차량에서 내린 후 1분이 지난 11시8분에 승차하는 장면이 만남의 광장 CCTV에 녹화됐다고 적었다. 경찰의 수사보고서를 보면 윤 선수 차량은 이 광장에 34시간(1일 10시간) 동안이나 주차돼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간대 만남의 광장 CCTV는 차량의 색상·번호판·운전자를 전혀 식별하지 못한다. 특히 윤 선수 차량이 주차돼 있던 곳은 CCTV 사각지대였다. 그러니까 경찰은 광장 CCTV가 윤 선수 차량이나 윤 선수를 전혀 식별하지 못했는데도 허위보고를 한 셈이 된다. 서초경찰서도 자신들이 핵심 증거물이라고 했던 만남의 광장 CCTV에 대해 “증거력이 없어 폐기했다”고 밝혔다.

 

만남의 광장 CCTV 미스터리


그리고 윤 선수가 만남의 광장에서 자살했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여러 정황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만남의 광장에서는 수시로 주차단속을 하고 한 시간에 한 장씩 불법주차 스티커를 붙인다. 윤 선수 승용차에는 한 장의 스티커도 붙어 있지 않았다. 수시로 차량이 오가는 이곳에서 번개탄을 피웠다면 금방 발견돼야 한다.

 

염건령 한국범죄학연구소 선임위원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번개탄이라고 부르는 발화탄이나 연탄을 이용한 자살 사건은 대부분 밖에서 불을 붙인다. 거기(만남의 광장)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한다?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소설이다”라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윤 선수는 언제, 어디에서 사망한 것일까. 윤 선수의 시신 상태, 부패의 정도, 당시의 날씨와 기온 등을 감안하면 다른 곳에서 타살된 후 만남의 광장으로 옮겨졌을 확률이 높다. 윤 선수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진 5월4일 오전 11시45분부터 승용차 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6일 오전 9시36분까지 걸린 시간은 약 46시간이다. 고속도로 하이패스 카드 내역으로 동선을 파악해본 결과, 윤 선수는 4일 오후 5시43분에 금토TG를 통과했다. 실제 차량을 윤 선수가 운전했다면 이때까지는 살아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 이후 윤 선수는 누군가에게 타살됐고, 만남의 광장 CCTV가 차량을 분간하지 못하는 5월5일 밤에서 6일 새벽 사이에 광장으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경찰 수사는 의문투성이다. 억지로 연출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연출됐다. 그런데도 서초경찰서는 ‘내사 방침’을 밝히면서 “사건 수사보고서를 재검토해 윤 선수의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 명확하며 타살 혐의점은 없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밝히는 등 경찰 수사의 문제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선수의 아버지 윤희탁씨는 “당시 서초경찰서의 담당 경찰관들 모두 ‘수사 대상’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자신들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조폭 관련’ 운운하는 것은 전형적인 ‘물타기’다. 먼저 수사를 받아야 할 것은 ‘조폭’들이 아니라 ‘경찰관’들이다. 이들이 기원이를 자살로 몰고 갔다”고 울분을 토했다. 윤 선수의 가족 등은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여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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