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혼맥 문화가 ‘금수저’ 낳았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9:12
  • 호수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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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기득권 사회를 파헤친 <한국을 움직이는 혼맥·금맥>의 저자 소종섭 시사평론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인맥의 그물망 막후에는 혼맥(婚脈)이 있다. 혼맥은 곧 금맥(金脈)이기도 하다. 혼맥과 금맥은 상호작용을 하며 대를 이어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을 움직인다. 사슬로 얽힌 혼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경구(警句)를 되새길 뿐이다. 혼맥은 세습과도 연결된다. 한국 사회는 이미 세습사회가 됐다. 재계·정계·법조계·언론계·연예계 등 어디를 돌아보아도 자리로 대표되는 부와 권력의 세습은 점점 늘어나는 흐름이다. ‘끼리끼리’ 문화는 사회를 양극화하는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기득권이 기득권을 낳는 밑바탕에 혼맥이 있다. 최근 유행하는 ‘금수저론’ 역시 이런 끼리끼리의 혼맥 문화와 맥이 닿아 있다.”

 

언론사 기자를 거쳐 현재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소종섭 홍보컨설팅 ‘인포마스터’ 사회전략연구원장은 최근 <한국을 움직이는 혼맥·금맥>을 펴내며 ‘금수저론’에 숟가락 하나를 더 얹었다. 소 원장이 지적하는 혼맥 문화의 그늘은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보고서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연구보고서의 주장은 이렇다.

 

‘한국 사회는 증가하는 불평등으로 사회 계층과 계급은 공고화하고, 강화된 사회 계층·계급 격차는 교육 격차를 확대하며, 그것이 다시 우리 사회의 사회 이동성을 낮추는 악순환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략) 이처럼 사회 이동의 통로가 막히고 점점 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본인의 지위가 상당 부분 결정되는 현실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손실과 비효율을 낳고, 나아가 좌절과 갈등을 증폭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 시사저널 이종현

 


“재계의 모든 혼맥은 LG家로 통한다”

 

소종섭 원장은 혼맥문화 또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데 한몫한다며 연구보고서와 비슷한 취지의 말로써 책을 펴낸 이유를 설명했다. “혼맥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틀 가운데 하나다. 촘촘히 연결된 혼맥은 거대한 그물망을 형성하며 사회를 움직인다. 과거 한국의 재벌들은 권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성장했다. 지금은 ‘끼리끼리 문화’를 통해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연결망을 통해 ‘땅 짚고 헤엄치기식’ 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력, 언론사 사주를 비롯한 언론권력도 재벌가와 혼맥으로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다.”

 

소 원장의 분석에 따르면, 재벌가 중 혼맥이 가장 화려한 곳은 LG가(家)다. 삼성·현대·한진·대림·SK·태광·경방·두산그룹 등과 직접 또는 한 다리 건너 연결되고, 정·관계와 학계로도 뻗쳐 있다. 방계인 LIG금융그룹과 LS그룹, 사돈 간인 GS그룹의 혼맥까지 더하면 더욱 화려하다. 효성·벽산·신동방 등과도 연결된다. ‘재계의 모든 혼맥은 LG가로 통한다’, 즉 ‘통혼(通婚) 경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LG가는 우선 자녀를 많이 낳았다. 창업주인 구인회 본인이 6형제 중 맏이였다. 구인회는 6남 4녀, 구인회의 후계자인 아들 구자경도 4남 2녀를 낳았다. 자녀를 많이 두었을 뿐 아니라 재계 인사들과의 혼사에도 특별히 신경을 썼다. 구인회를 비롯한 여섯 형제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남부럽지 않은 혼맥을 구축해 오늘날 거대한 혼맥을 이뤘다.”

 

소 원장은 한국 재벌 대다수가 권력과 이러저러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온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일제가 남긴 적산(敵産) 기업을 불하받거나 전쟁 복구, 정부의 경제개발계획 흐름과 발맞추며 기업을 키웠던 ‘정경유착의 역사’에서도 혼맥 문화를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조선·중앙·동아, 혼맥으로 연결돼 있다”


소종섭 원장은 재벌가 1세대와 2세대가 혼맥문화에서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1세대는 재계-정계로 이어지는 혼사에 관심이 있었다면, 2세대로 와서는 재계-재계, 재계-언론계로 이어지는 혼사가 도드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사회가 발전하면서 정치권력의 힘이 약화되고 재벌권력과 언론권력의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과거에는 재벌-정치인-관료가 혼맥을 맺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이후락 전 부장이 SK·한화그룹과 혼맥으로 연결된 것이나,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의 오빠인 김복동 전 국회의원이 두산·한일그룹 등과 혼맥으로 연결된 것 등이다. 하지만 최근 정치인 가문은 재벌들로부터 점차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대신 성장 배경이나 문화적인 공감대가 큰 재벌가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결혼을 끝으로 한동안 재벌가와 정치인 가문의 결합은 보기 힘들어졌다. 2001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딸 이수연과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아들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결혼한 것이 눈에 띈다.”

 

소 원장은 재벌 2세대의 혼맥문화를 들여다본 결과, 3대 메이저 언론사라고 일컫는 조선·중앙·동아가 혼맥으로 연결돼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장남 방준오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이사대우는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녀 허유정과 혼인했다. 허광수의 장남 허서홍은 홍석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의 장녀 홍정현과 결혼했다. 홍정욱 헤럴드미디어 회장은 지난 1999년 손정희와 결혼했는데 손정희의 어머니가 허광수의 부인 김영자의 언니 김영숙이다. 허광수를 매개로 조선일보·중앙일보·헤럴드미디어가 혼맥으로 연결돼 있다.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의 동생 김재열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 이서현과 결혼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은 홍라희로 홍석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의 누나다. 삼성을 고리로 해서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혼맥으로 이어진다. 따지고 보면, 3대 메이저 언론사라고 일컫는 조선·중앙·동아일보는 한두 다리를 건너면 혼맥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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