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 수감생활 윤길자 뒤에 누가 있나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09 10:54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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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병원 특실에서 지낸 후 직업훈련교도소에서 호의호식
청부살인으로 수감 중인 윤길자씨. 작은 사진은 고 하지혜씨. © 연합뉴스·고 하지혜씨 유족 제공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돈이 있으면 무죄로 풀려나지만 돈이 없으면 유죄로 처벌받는다는 뜻이다. 지난 1988년 10월16일,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다 죽기 전에 남긴 말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 말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 심지어 교도소에서까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고 있었다.

2002년 3월 15일,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한 여대생이 공기총으로 살해당한 채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녀의 이름은 하지혜, 당시 이화여대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하씨를 죽이라고 사주한 것은 이종사촌 오빠의 장모인 윤길자(71)였고, 영남제분(현 한탑) 류원기 전 회장(69)의 부인이었다. 윤씨는 판사인 사위 김현철(43)과 하씨의 사이를 불륜관계로 오해하고 조카와그의 고교 동창에게 1억7500만원을 주고 살인을 지시했다. 이른바 ‘여대생 공기총청부살인 사건’이다.

윤씨는 2004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됐으나 유방암·파킨슨증후군·당뇨 등 12개 병명이 적힌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무려 6년 동안이나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특실에서 호화 생활을 하다 적발됐다. 검사·판사·변호사·의사 등의 짬짜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검찰 수사 결과, 남편 류원기 전 회장이 윤씨 주치의 박병우 세브란스병원 교수(56)에게 1만 달러를 주고 허위 진단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두 사람을 구속 기소했지만 모두 보석으로 풀려났고, 2심에서 류 전 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박 교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윤씨는 교도소에 재수감됐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현재 윤씨가 있는 곳은 모범수들이 수감돼 있는 화성 직업훈련교도소다.

이곳은 지난 2009년 설립된 최신식 건물로 교도소 내에서 ‘특급 호텔’로 불린다. 최고급 시설에다 고급 식단까지 국비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남부럽지 않게 생활한다. 곳곳에 잔디가 깔려 있고 야외에 미술품까지 전시돼 있어 마치 야외 공원을 연상케한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28일 교정의 날 70주년을 맞아 교도소 내 시설을 언론에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 기준으로 662명의 수형자들에게 자동차 정비, 컴퓨터 응용가공, 건축·목공, 제과·제빵 등 27개 기술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소자들 사이에서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 알려졌다.

일단 이곳에는 전국 각지의 교정시설에서 모범 수형자들만 올 수 있다. 기결수 중 모범 수형자를 대상으로 잔여 형기 등을 감안해 선발하고, 전문적인 기술 교육으로 출소 후 이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만큼 시설이나 환경 등이 다른 교정시설에 비해 월등히좋다. 해당 교도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난방시설이 완비된 쾌적한 수용환경이라고 소개돼 있다.

매끼 식사도 아주 훌륭하다. “교도소 가서 콩밥 좀 먹어봐라”는 말이 있는데, 이곳에서 ‘콩밥’은 옛말이다. 지난해 이 교도소가 일반 재소자들이 먹는 식단과 동일한 점심 식단을 기자들에게 공개한 적 있다. 여기에는 흑미밥과 청국장, 고등어 튀김에 고들빼기 무침, 김치가 나왔다.

군 복무 중인 여느 부대의 식단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일반 가정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한 끼 밥값이 없어 굶는 영세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도소에는 일주일에 두 번 조식으로 빵과 잼, 그리고 우유와 수프가 제공되고 있다. 이 정도면 교도소 내의 ‘특급 호텔’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셈이다.

이처럼 화성 직업훈련교도소는 죄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곳보다는 출소를 앞둔 재소자들에게 직업을 갖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곳에 가깝다. 바꿔 말하면 윤길자는 지금 죗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화성 직업훈련교도소 © 고 하지혜씨 유족 제공

모범수 만든 후 가석방 음모설 모락모락

교정본부 홈피에 소개된 화성 직업훈련교도소장의 인사말을 보면 “법을 그르친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참회의 눈물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하세요. 위로하고 희망을 주세요. 행복한 날 꼭 다시 올 것입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윤길자가 이곳에 수감된 것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윤씨는 지금까지 한 번도 피해자와 그 가족을 위해 참회의 눈물을 흘린 적이 없고 “잘못했다” “용서해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윤길자는 죄질이 불량한 악질 흉악범에 속하는 범죄자다. 불과 2년 전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이런 윤길자가 어떻게 모범수들이 들어올 수 있는 교도소에 들어와 호의호식하고있을까.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내가 낸 세금으로 내가 사는 집보다 더 좋은 곳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다”며 개탄스럽다고 했다. 무기징역은 가석방이 가능하다. 윤길자를 모범수가 있는 직업훈련교도소로 보냈다는 것은 가석방으로 풀어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윤길자에 대한 가석방 음모론이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잔혹한 살인자를 누가 이곳에 보낸 것일까. 그것도 형집행정지로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렇다고 윤씨가 이곳에서 직업훈련을 받는 것도, 노역을 나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특혜라고 볼 수 있다. 교정시설 배치는 수형자의 범죄 경력과 범행 내용, 수용생활 태도 등을 평가해서 등급에 따라 결정된다. 윤씨는 어떤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했기에 이곳에 온 것일까.

이에 대해 법무부의 답변이 석연치 않다. 법무부는 “행형 성적이 우수하고 관련 규정에 따른 처우 등급과 수용 여건 등을 고려해 해당 교도소에 수용돼 있다”고 하면서도 어떤 기준에 따라 윤씨를 이감했는지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피해자 오빠 거리에서 1인 피켓 시위

대다수 국민은 윤길자의 직업훈련교도소 수감에 공분하고 있다. 국민 법감정을 배신한 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한 행태이며, 이를 가능하게 만든 ‘큰손’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무기수 윤길자가 호화 병실에서, 직업훈련교도소에서 호의호식할 때 피해자인 하지혜씨 가족은 풍비박산되다시피 했다. 화목하고 단란했던 가족의 행복은 완전히 짓밟혔다. 하씨의 어머니 설 아무개씨는 딸을 비명에 잃은 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그 아픔과 분노를 술로 달랬다. 그리고 얼마 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향년 64세, 한참 인생 후반기를 즐길 나이다. 이 가족에게 지난 14년은 잃어버린 삶이었다. 오빠 진영씨는 “윤길자는 내 동생뿐 아니라 우리 어머니까지 죽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진영씨는 윤씨가 제대로 된 죗값을 받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동생이 비명에 간 지 14년 만에 상복을 입고 1인 시위에 나섰다. 2월29일부터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을 시작으로 3월2일 세브란스병원, 3일 화성 직업훈련교도소, 4일 영남제분(현 한탑)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윤길자가 교도소 안에서 편하게 지낼 때 피해자 오빠는 추운 겨울날 길거리에서 피켓을 들어야 하는 현실이다.

 

윤길자가 직업훈련교도소에 수감된 것은 언제 알게 됐는가.


지난해 형집행정지와 관련한 법이 개정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윤길자가 어디에 수감돼 있는지 한번 알아보라’고 하셨다. 그 후 12월에 지혜 사망신고를 한 후 성동구치소에 가서 확인한 결과 화성 직업훈련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감번호는 32번이었다.

이런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나.

아니다. 부모님이 속상하고 억울해하실까 봐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대신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기가 막혔다. 청부살인을 저지른 무기수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윤길자가 모범수라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어머니는 윤씨가 화성으로 옮긴 것은 아셨지만 그곳이 정확하게 어떤 곳인지는 모르신 채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셨다.

윤씨가 직업훈련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가슴이 콱콱 막히고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지혜가 죽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죄지은 자가 벌을 받지 않는다면 법이 왜 필요한지 묻고 싶다.

향후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가.

제대로 된 법집행이 이뤄질 때까지 싸울 것이다. 죄를 지은 자들이 그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범죄 피해자가 계속 나올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과 같은 불행을 막기 위해서 나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내가 싸움으로써 피해자 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언론에 의한 피해를 극심하게 보지 않았나.

다수 언론들로 인해 우리 가족이 받은 상처는 너무나도 컸다. 지금도 아물지 않았다. 어머니는 지혜가 죽은 검단산이 있는 하남을 떠나기 싫어하셨다. 아버지는 평창에 머무르고 계시고, 나는 남양주에 살았다. 비록 가족들이 떨어져 살았지만, 자주 한자리에 모였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어머니를 찾았다. 그런데 언론들은 어머니를 알코올 중독에 걸린 폐인, 영양실조로 굶어죽은 것처럼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난도질을 했다. 나는 졸지에 어머지를 방치해 죽게 한 패륜아가 됐다. 이렇듯 사실을 왜곡하며 마음대로 소설을 썼다. 조회 수를 올려 돈을 버는 데 눈먼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지금이라도 언론은 각성해야 한다.

윤씨의 사위이자 이종사촌인 김현철은 사과했나.

윤길자나 김현철이나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이 없었다. 지혜나 어머니 장례식 때도 찾아오지 않았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따로 없다. 이들은 사람으로서 최소한 가져야 할 양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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