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돈을 못 벌고 밀수꾼만 돈 벌게 생겼다”
  • 중국 단둥(丹東)=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6.03.17 18:56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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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제재 발표 직후 北·中 최대 교역 창구인 단둥 현지 르포

3월10일 정오쯤 북·중 국경도시 중국 단둥(丹東)의 기온은 영하 6도였다. 하지만 압록강 바람이 몰아치면서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를 밑도는 듯했다. 3월의 단둥은 아직 한겨울이었다. 바깥 기온만이 아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광명성)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안이 3월2일(한국 시각 3일 0시) 발표된 후 오히려 혹한의 겨울 한복판으로 되돌아간 듯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단둥은 북·중 교역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교역 창구다. 시사저널은 3월7일부터 11일까지 5일 동안 유엔 제재 조치 이후 술렁이는 단둥 현지를 취재했다.

 

기자는 지난 3월7일 저녁, 단둥의 한 식당에서 북한 사람 림 아무개씨를 만나 술잔을 주고받았다. 기자의 단둥 현지 소식통을 통해 소개받은 30대 후반의 림씨는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 ‘유엔 제재 때문에 한국이 싫지 않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왜 싫습니까. 그러면 기자 형님은 조선(북한) 사람들 싫어요?”라고 반문했다. “(북한의) 백성들은 남조선 사람들을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박근혜 같은 미제 반동분자들을 싫어하는 거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조선 사람들끼리 나쁘다, 좋다 얘기할 건 없잖습니까”라며 북한 말투로 말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조치 이후 중국 단둥의 겉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파장이 일고 있다. 3월10일 촬영한 중국 단둥의 중조우의교(왼쪽)와 압록강단교. ⓒ 시사저널 김지영

이날 기자는 단둥에 오기 위해 중국 선양(瀋陽)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기자의 휴대전화로 외교부에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외교부] 북한 국경지역(여행 유의), 신장 위구르 티베트(여행 자제)’라는. 기자는 외교부의 ‘여행 유의’ 지역인 단둥에 온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단둥의 모습은 평온했다. 몇 차례 단둥 지역에서 취재한 경험이 있는 기자의 눈에 비친 단둥의 겉모습은 그랬다.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에는 오전 9시부터 북한의 평안북도 신의주로 건너가는 화물트럭과 기차 행렬이 여전히 이어졌다. 중조우의교 바로 옆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의 폭격으로 다리 일부가 무너진 압록강단교(鴨綠江斷橋)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압록강변에 중국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도 예전과 같았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유엔 안보리 제재의 파장이 일고 있었다. 당장 북·중 교역의 관문인 중국 해관(海關·세관)에서 감지됐다. 3월8일 오후, 중조우의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중국 해관 분위기는 썰렁했다. 해관이 운영하는 화물터미널은 예전에는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인 화물차량 등으로 북적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산해졌다는 게 단둥 현지인의 전언이다. 현지인은 “유엔 제재 이후 (북·중 간) 교역이 줄어 해관도 일이 줄어들었다”며 “지금 유엔 직원이 여기에 와서 북·중 간에 교역하는 걸 비밀리에 감시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고 말했다.

 

3월9일 오전, 중국 단둥의 해관(세관) 앞 도로에 북한 신의주로 들어가려는 화물트럭들이 일렬로 대기하고 있다. ⓒ 시사저널 김지영

 


“유엔 직원이 비밀 감시 나왔다” 소문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조치 가운데 북한의 석탄·철·금 등 광물 수출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 또 해외에 있는 북한 은행 지점을 폐쇄하고 거래를 중단키로 했다. 단둥에서 이런 조치들이 실제로 이행되는지 유엔 직원이 파견돼 비밀리에 감시하고 있다는 얘긴데, 취재 기간 동안 이를 확인할 순 없었다.

 

북·중 간 교역이 줄어든 것은 분명해보였다. 중국 해관의 직원은 “(유엔 제재 조치 후) 민감한 물건은 (북한으로) 안 들어가고 (중국으로) 안 들어온다”고만 짧게 말한 후 입을 닫았다. 해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직 중국 공무원은 “해관은 유엔에서 합의한 건 거의 통제하고 있다. 그래서 해관 일이 반 이상 줄었다”며 “특히 화학공업 제품에 대해선 엄격한데, 건축용 등 조선 백성이 쓰는 화학제품은 괜찮지만 공업용 화학제품은 (북한으로) 못 들어간다. 기계류도 못 들어간다”고 말했다. 공업용 화학제품이 핵무기나 로켓, 미사일 등 무기 제작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로 해석된다. 그는 또 “그 사람들(해관 직원들)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일이 없어도 해고될 염려가 없다. 오히려 업무량이 줄어들면 일하지 않아도 되니 좋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유엔 제재로 북한산 광물을 수입하지 못하면 중국도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중국엔 광물이 많기 때문에 걱정 안 된다”며 “중국은 괜찮은데 (대북) 투자가 줄어드니 (북한의) 일반 백성들이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압록강 건너 신의주엔 최근 1~2년 동안 고층 건물이 여러 채 들어섰다. 압록강변에서 육안으로도 10층 이상 고층 건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단둥에서 건축자재회사를 운영하는 한국인 조 아무개씨는 “북한 평양뿐 아니라 신의주 등 대도시에 대규모 건축 붐이 일고 있다”며 “북한에서 중국산 건축자재를 대량 사들여 간다. 그나마 이번 유엔 제재 대상 품목에 건자재가 포함되지 않아 건자재 사업을 하는 내 입장에선 다행이다”고 말했다. 무기와 관련된 제품이 아닌 일반 생활용품이나 건자재 등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거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3월8일 오후 5시쯤 해관의 화물터미널에는 ‘평북82-1306’ 번호판 관광버스와 ‘평북83-2885’ 트레일러가 주차돼 있었다.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이 함께 인쇄된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단 30여 명의 북한 남자들이 급하게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단둥에서 대북 무역을 하는 사람들은 잔뜩 위축돼 있다. 앞서 언급한 전직 중국 공무원은 “변경(邊境) 무역을 해보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며칠 전에 단둥에서 돈을 벌고 싶다고 해서 내가 ‘여기 와봤자 일 못하니까 오지 말라’고 말렸다”고 말했다.

 

북한 사람, 한국인 경계하는 눈빛 역력


단둥의 고려가(高麗街)에서 북한인과 조선족 등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조선족 조 아무개 사장은 3월9일 “내 친구 중엔 중국 남방(南方)에 사는 중국인 사장 밑에서 일하는 조선족이 있다. 그 친구 집은 선양인데 단둥에서 북한 광물을 수입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그저께(3월7일) 선양으로 가면서 ‘앞으로 단둥에 올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조선과 광물 거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북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고려가에 있는 J 식당에 갔다. 기자가 예전에도 가본 적이 있는 식당이다. 3월9일 정오쯤 식당 2층까지 손님들이 가득 찼다. 기자 일행도 2층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북한 사람들이었다. 테이블 4곳에 북한 사람 20여 명이 점심 식사를 하러 온 것이다. 기자 일행이 자리 잡은 바로 옆 테이블은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고 있는 청년 두 명과 중·장년 3명이 낮술을 마시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표정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경직된 표정들이었다. 기자 일행은 한국 관광객이라 소개하고 ‘조선에서 오셨느냐’고 웃으며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간부급으로 보이는 사람이 “남조선에서 왔습니까”라고 되물으며 “우리는 식사하러 왔으니까 식사만 하고 가겠습니다”며 기자 일행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이후 식사 내내 주변에 있던 다른 북한 사람들도 기자 일행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경계하는 눈치였다. 기자가 2년 전인 2014년 1월 이 식당에서 북한 무역상 4명과 우연히 합석해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술잔을 주고받았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한반도 정세와 남북 관계가 단둥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이 식당의 여사장인 조선족 고 아무개씨는 ‘유엔 제재 이후 북한 손님이 줄어들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우리 식당엔 조선(북한) 손님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중국 사람, 조선족이다. 그런데 여기 오시는 조선 분들은 그대로 다 오고 계신다. 발을 끊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과 교역이 줄어들면 여기 오는 북한 손님도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묻자, 고 사장은 “문건(유엔 안보리 제재 조치 발표)만 나왔지 아직 못 느끼겠다. 조선 분들도 그런 얘기는 여기서 하지 않는다”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단둥 지역에는 북한에서 나온 무역상이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북한산 수산물이나 광물 등을 중국에 수출하고 생활필수품 등을 북으로 수입한다.

 

기자가 단둥에 머무른 5일 동안 중조우의교를 통해 화물트럭은 끊임없이 왕래했다. 오전 9시면 어김없이 북한 신의주로 화물트럭과 트레일러가 넘어갔고 오후 4시쯤이면 다시 단둥으로 돌아왔다. 그 화물트럭에 실린 물건이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단둥 현지인은 “예전에는 화물을 싣고 북한으로 넘어갔던 트럭들이 돌아올 때도 화물을 싣고 왔는데 요즘은 빈 트럭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숙박한 중조우의교 앞 중련대주점(호텔)에서 내려다본 트럭들 가운데 상당수가 빈 트럭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교역이 줄었다는 방증이다.

 


 

 

“우린 남조선처럼 미국에 쩔쩔매지 않는다”


기자는 3월10일 정오쯤 단둥 시내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외곽의 한 북한 식당에서 북한의 고위급 단둥 주재원을 만날 수 있었다. 기자의 단둥 소식통을 통해 한 다리 건너 소개받은 사람이었다. 기자를 포함한 일행은 그를 ‘김 사장’이라 불렀고, 기자는 ‘조선족으로 한국에 자주 오가는 사람’이라고 신분을 감췄다. 김 사장은 단둥의 북한 식당과 무역회사 등에서 일하는 북한 사람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했다. 

 

김 사장과 만났던 북한 식당은 북·중 합자회사였다. 김 사장은 이 식당의 여성 복무원 10여 명도 직접 관리하고 있다. 그는 한 달에 네 번 정도 북한에 다녀온다고 했다. 비자 없이도 북한을 오갈 정도여서 북한 내에서는 상당한 고위급으로 추정된다. 대화는 기자 일행이 기자를 대신해 물어봤고 김 사장은 동태찜과 도라지 무침 등을 안주 삼아 낮술을 마시면서 비교적 편하게 말했다. 2시간 정도 낮술을 마시며 나눈 대화 내용 중 일부다.

 

기자 일행: “유엔에서 조선하고 교역을 끊으라고 해서 불편해졌다.”

김 사장: “밀수꾼들만 좋아졌지. 밤에 배로 다니는 놈들이 있는데 그놈들만 돈 벌게 생겼다.(웃음)”

기자 일행: “그러면 조선과 중국의 교역을 막으나 마나 아닌가?”

김 사장: “(교역을) 막아봐야 소용없다. 다 못 막는다.”

기자 일행: “그래도 조선이 피해를 보지 않겠나?”

김 사장: “국가(북한)가 돈을 못 벌고, 밀수꾼들만 돈 벌게 생겼다. 국가만 손해 보는 거다.”

기자 일행: “이 식당 여직원들이 한결같이 미인이다.”

김 사장: “내가 중국에 와서 (중국 사람과 합자회사를) 계약한 다음 조국에 가서 직접 미인들을 뽑아왔다.(웃음)”

 

김 사장은 기자의 말투를 의심하기도 했다. 기자에게 “왜 남조선 말투를 쓰느냐”고 경계하는 눈빛이었는데, 기자와 함께 갔던 일행들이 “남조선에 자주 왔다 갔다 해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김 사장은 술에 좀 취했는지 이내 경계심을 푸는 듯했다.

 

기자 일행: “조선과 남조선이 같은 민족인데 서로 도와주면 좋을 텐데….”

김 사장: “개성공단은 잘됐었다. 박근혜가 막으니까 그런 거지. 오바마가 박근혜한테 50억 달러를 줬다. 오바마가 그 돈 주면서 ‘개성공단 닫아라’라고 했고, ‘그 돈으로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보상해주라’고 했다. 50억 달러 주면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도 (한국에) 배치하게 하고….”

기자 일행: “핵실험, 미사일 발사가 필요한가?”

김 사장: “조그만 나라(북한)가 그렇게 세계를 소름 나게 하고, 흔들고…. 200개 넘는 나라 가운데 소리 없는 나라도 가득하다. 이렇게 세계를 시끄럽게 하는 것, 그것 자체가 자부심이다.”

기자 일행: “그래도 단둥 무역이 걱정된다.”

김 사장: “배짱을 가지고 미국하고 맞서는 것은 우리밖에 없다. (미국의) 생트집이란 말이다. 우린 절대 남조선처럼 미국 앞에서 쩔쩔매지 않는다.”

 

단둥에는 북한에서 파견한 노동자 1000여 명이 북·중 합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의류 가공회사나 전자부품 회사 등에서 200~300명씩 집단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 제재 발표 이후에도 이들 공장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게 현지인의 전언이다.

 

유엔 제재 조치가 취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현재까지 단둥은 외관상으론 큰 변화를 느낄 수 없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제재 조치로 인한 파장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파장이 앞으로 얼마나 커질지도 예측하기 쉽지 않다. 3월 단둥은 분명 다시 한겨울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압록강은 유유히 서해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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