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일본식 장기불황 점점 닮아가
  • 원태영 기자 (won@sisapress.com)
  • 승인 2016.03.18 16:44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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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치솟은 청년실업률·소비심리 하락·기업투자부진 등 판박이"
자료=LG경제연구원

한국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을 따라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비심리 하락, 최악의 청년 실업률, 내수 부진에 따른 기업투자 감소 등 일본의 장기침체 당시 상황과 흡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1990년 들어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나타났다. 집값은 폭락했고, 기업이 도산했으며, 대량 실업자가 발생했다. 이후 일본경제는 장기침체의 늪에 빠졌다. 일본인들은 이를 두고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 16일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29세 청년 실업률은 12.5%로, 1999년 6월 관련 통계 기준이 변경된 이후 역대 가장 높았다. 이는 일본에서 청년 실업 문제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3년(10.1%)보다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청년 실업 증가가 한국이 일본의 장기 불황을 뒤따르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한다. LG경제연구원은 15일 발표한 ‘우리나라 청년 실업 문제, 일본 장기침체기와 닮은 꼴’ 보고서를 통해 “국내 성장 흐름이나 청년층 인구 추세가 20년 전 거품경제가 무너진 직후의 일본과 유사하다”며 “잠재성장률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청년 실업 문제는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류상윤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모습을 보면 버블 붕괴 후 악화된 일본 청년 고용 실태를 떠올리게 한다”며 “우리 경제와 일본이 2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청년 실업률 역시 20년 전 일본처럼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일본식 장기불황 진입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서울 파이낸셜포럼 조찬강연에서 “일본식 장기 불황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가장 주요한 정책 방향”이라며 침체된 경제상황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또 다른 문제는 내수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71.9%로 전년(72.9%)에 비해 1% 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2003년 관련 통계가 나온 이후 최저치다. 평균소비성향은 한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 중에서 얼마만큼을 소비 지출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이 수치가 낮아졌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그만큼 지갑을 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인 것은 한국 경제 상황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반증이다. 최근 취업률 하락,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가계 소득의 안정성은 줄어드는 상황이지만,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노후대비 필요성은 증가했다. 노후 복지가 충분치 않은 한국에서 소비보다는 저축을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 일본 역시, 장기불황 초기에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양상을 보였다. 이때문에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 오히려 경제침체를 불러온 ‘저축의 역설’이 사회 문제가 됐었다.

더욱이 최근엔 기업 실적도 부진해 기업의 투자와 고용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기업의 투자 위축은 고용불안을 낳게 되고 이는 다시 소비 위축, 이로 인한 기업 실적 둔화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2016년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 조사 결과에 따르면, 52.2%의 대기업이 상반기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국내 기업들도 한국 경제의 장기불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월 현대경제연구원은 13개 업종 매출액 기준 상위 77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나’는 물음에 73.6%는 “일정 부분 가능하다”, 20.8%는 “상당히 있다”고 답했다. ‘거의 없다’고 답한 비율은 5.6%에 불과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청년 고용 안정을 통해 내수 살리기에 힘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전시성 행정이라는 비난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김성민(가명·30)씨는 “정부에서 하는 고용정책 대부분이 단기간만 일할 수 있는 인턴이나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다”며 “정작 청년들이 원하는 정규직 자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류상윤 책임연구원은 “구조개혁 등을 통한 잠재성장률 회복이 청년실업 장기화의 해결방안”이라며 “무엇보다 노동시장에서 구직·구인 수요가 엇갈리는 불일치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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