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가 법 안 지켜 무죄가 유죄로 뒤집혔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3.31 18:30
  • 호수 138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유죄 선고받은 피고인이 대법원에 재심 청구한 사연

‘(법관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해 민주적 기본 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대법원 규칙 제2021호 법관윤리강령의 서문이다. 이 강령의 제4조(직무의 성실한 수행) 1항과 2항은 ‘법관은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재판을 ‘신중하고 충실하게 심리해 재판의 적정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법관의 판결은 고도의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만큼, 사법부 독립 차원에서 보장받는다. 그러나 법관의 독립적 판단을 존중하는 이면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 진행이 ‘무결점’을 지향해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유종화씨 사건과 관련한 판결문 등 자료 ⓒ 일러스트 정찬동

 


동일한 증거에도 1·2심의 판결 엇갈려

 

그런데 법원의 재판 과정을 두고 잡음이 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우리 사법부의 현실이다. 사법부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법원의 재판 진행 과정이 적법하지 않았거나 부적절했다고 주장한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돼 2013년 유죄가 확정된 유종화씨(44)의 사연도 마찬가지다. 유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후에도 법원 판결에 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왜 이런 주장을 계속하고 있을까.

 

유종화씨는 2013년 상해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재판(병합 심리)을 받았다. 유씨는 1심 재판에서는 상해 혐의만 인정돼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항소심) 재판에서는 공무집행방해 혐의까지 추가로 인정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2013년 11월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돼 형이 최종 확정됐다. 문제는 유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한 재판 결과다. 유씨는 2012년 9월 서울 화곡동 한 음식점에서 음식 문제로 식당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이 유씨를 연행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경찰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당시 출동한 경찰관의 주장을 근거로 유씨가 경찰관을 폭행하는 등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있다며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유씨가 연행 과정에서 경찰관의 어깨를 밀치고 주먹을 휘두르는 등 폭행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씨는 “출동한 경찰관이 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팔을 잡아 뿌리쳤을 뿐”이라면서 “경찰관을 상대로 폭행을 한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유씨의 연행 과정이 녹화된 CC(폐쇄회로)TV 영상을 재판정에서 꼼꼼히 확인했다. 재판부는 경찰관 폭행 부분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CCTV 녹화 영상에 의하면 경찰관 2인이 체포하려고 하는 순간 피고인이 체포를 면하기 위해 소극적 저항행위를 한 것으로 보일 뿐, 경찰관을 상대로 폭행을 했거나 또는 그 행위로 공무집행이 방해될 정도의 위험성이 있었다고 보이지 아니 한다”고 무죄 판단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유씨와 경찰관 등의 진술, CCTV 녹화 영상을 근거로 내세우며,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관의 주장을 상당 부분 인정했다. 특히 검찰이 당초 기소 때와는 달리 유씨가 주먹을 휘두른 행위를 제외한 채 항소 이유를 제출했는데도 재판부는 유씨가 주먹을 1회 휘두른 행위까지 존재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주요 증거 자료인 CCTV 영상을 적법하게 처리하지 않아 논란을 낳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CCTV 영상 등 증거 자료를 재판정에서 확인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등을 지키지 않는 불법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291조 제1항에선 ‘소송 관계인이 증거로 제출한 서류나 물건은 검사, 변호인 또는 피고인이 공판정에서 개별적으로 지시·설명하여 조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형사소송규칙 제134조의 8(음성·영상 자료 등에 대한 증거 조사) 제3항에서도 ‘녹음·녹화 매체 등에 대한 증거 조사는 녹음·녹화 매체 등을 재생해 청취 또는 시청하는 방법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존중하는 차원이다. 대법원은 과거 판례(2009도10412 판결)에서도 “헌법 제27조가 보장하는 기본권은 법관의 면전에서 모든 증거 자료가 조사·진술되고 이에 대해 피고인이 공격·방어할 수 있는 기회가 실질적으로 부여되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구현”하고, 이에 따라 “현행 형사소송법은 당사자주의·공판중심주의·직접주의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CCTV 영상 적법하게 심리 안 해”


결과적으로 유씨 사건의 경우, 적법 절차를 거쳐 CCTV 영상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공무집행방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반면, 법을 지키지 않은 항소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한 셈이 됐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원심의 무죄를 뒤집을 만한 유력한 증거가 있다면, 항소심 재판부가 형사소송법 등 법으로 정해진 바에 따라 심리를 해야 한다”면서 “특히 피의자에게 증거 자료가 불리하게 작용할 경우, 항소심에서 CCTV 영상을 정밀하게 심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항소심 재판부에 참여했던 법관이 소속된 인천지방법원의 공보담당 판사는 “이미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재판의 절차와 관련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만 밝혔다.

 

유씨 사건과 관련해 법원의 일 처리가 납득되지 않는 부분은 또 있다. 유씨 측은 2013년 9월 항소심 재판 이후 법원에 요청해 주요 증거 자료인 CCTV 영상 사본 CD를 받았다. 하지만 유씨 측은 “(구치소를 통해 우편으로 받은) CCTV 영상 CD를 컴퓨터 전문 업체에 맡겨 살펴봤지만 영상물이 없는 공CD였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에 대해 “법원 직원의 단순한 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항소심 재판에서 억울하게 유죄를 받은 상황에서 유력한 증거인 영상 CD까지 빈 것을 받으니 의혹이 더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 재판 절차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계획이다. 유씨는 3월22일 자신의 항소심 재판부 판사들을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권리행사(증거조사참여권) 방해죄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하는 한편, 대법원에는 해당 판사들을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하도록 요청하고, 재심 청구를 했다. 유씨는 “법률로 명확히 규정된 절차도 지키지 않고 판결을 한 법관들에 대해선 사법 개혁 차원에서도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면서 “대법원도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판결에 대해 다시 면밀히 검토해 엄정하게 처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