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가객 장범준, 신드롬을 낳다
  • 이경준 | 대중음악 평론가·음악웹진 ‘이명’ 편집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4.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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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2집 CD, 당일로 품절…‘보편적 공감대’ 일궈내는 ‘장범준 현상’의 실체
ⓒ 연합뉴스

그가 왔다. 계절의 전령(傳令)이다. 봄의 신호다. 장범준의 솔로 2집 이야기다. 3월25일 공개된 <장범준 2집>은 연일 고공비행 중이다. 수록곡 <사랑에 빠졌죠(당신만이)>는 음원차트를 폭격하고 있다. 1만장 한정으로 출시된 CD는 당일 품절됐다. 중고 시장에서 이 음반의 시세는 현재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콘서트 티켓 역시 진작 매진된 상태다.

이뿐만 아니다. 식당에서, 제과점에서, 약국에서, 편의점에서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의지와 무관하게 그의 노래를 듣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장범준’이라는 이름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10대와 50대가 함께하는 공연장 분위기

‘장범준 신드롬’은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다. 첫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지만, 전 세대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아이돌 팬덤과는 다르다. 2012년 발표된 후 매해 봄마다 회귀해 차트에 진입하는 <벚꽃엔딩>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그의 인기가 특정 지지층에 치우쳐 있지 않음을 증명하는 직접적인 바로미터다. 둘째, 피지컬 음반(CD)을 폭발적으로 팔아치우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마치 “CD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하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비웃는 것만 같다. 셋째, TV의 지원 사격 없이도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음반을 발매하면서 <무한도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얼굴을 드러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보조적인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럼 우리는 이 신드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대중은 그를 사랑하는가. 이유를 생각해보자. 먼저 그는 한동안 잊혔던 ‘공감’이 노래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되새겨보게 했다. 주지하다시피 공감은 일방적으로 주입한다고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사이 주류(主流)가요계에서 ‘보편적 공감대’를 일궈내는 음악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특정 세대의 감수성을 만족시키는 음악은 많았다. 물론 그런 음악이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서로가 각자의 추억과 경험을 떠올리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음악은 드물었다. 그런데 장범준의 음악은 그걸 가능하게 한다. 접점이 되는 화두는 ‘연애’다. 부모 세대는 풋풋했던 첫사랑을 끄집어내고, 자녀세대는 현재의 사랑에 감정이입을 한다. 10대와 50대가 함께하는 그의 공연장 분위기를 보면 된다. 그런 점에서 참 보기 드문 가수다.

장르를 딱 꼬집어 말하기 난감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했다는 점 또한 언급해야 한다. 네티즌의 사연을 배경으로 썼다는 <그녀가 곁에 없다면>이 좋은 예시가 된다. 서두르지 않는 화법, 느린 호흡, 어수룩한 발성. 이런 특성들이 모여 장범준의 음악을 만들었고, 장범준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구분 지으려 하는 건 무의미하다.

ⓒ 장범준 제공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장범준’이라는 브랜드로 소비하고 있다. 눈 깜빡이는 찰나, 판도가 뒤바뀌는 복마전(伏魔殿) 같은 문화산업 속에서 자신을 안정적으로 ‘브랜드화’할 수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이다. 장범준은 이제 이름만 보고 CD를 사고, 이름을 믿고 공연 티켓을 끊을 수 있는 뮤지션이 되었다. 그 점에서 축복받은 뮤지션이다. 400쪽이 넘는 웹툰을 함께 담은 한정판 CD가 발매 즉시 소진되었다는 것은 이를 입증하는 증거다.

자신을 일거에 소진시키지 않는 치밀한 이미지 관리도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다. 자기 PR시대이고 예능의 시대다. 하지만 그는 이 시끌벅적한 시대를 비교적 조용히 통과해왔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었다. <벚꽃엔딩>이 터뜨린 대박 덕이었다. 저작료로만 수십억 원을 벌었는데 굳이 TV에 출연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판단력이 빠른 뮤지션이었다. 그는 방송에 많이 노출될수록 수명이 짧아지는 연예인의 숙명을 알고 있었다. 빈번한 노출과 자극은 처음에야 신선하지만 곧 대중의 피로를 낳는다. 피로가 축적되면 대중은 대체재를 찾게 되어 있다. 소모품이 된다는 뜻이다. 이번 2집 프로모션이 보여주듯, 장범준은 TV 노출을 최소화하면서도 그 화력을 임팩트 강한 소수의 프로그램에 쏟아부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그의 팬들은 즐거워했다. 잠시 그의 존재를 잊었던 사람들은 기억해냈다. 그들은 모두 CD와 음원을 구입했다.

CD·음원·공연 티켓으로 대중이 증명하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그중 눈에 많이 띄는 건 “음악이 매번 비슷하다. 변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식의 비판이다. 이번 솔로 2집만 해도 강렬한 연주가 간혹 발견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차분한 무드가 주를 이룬다. 솔로 1집이나 버스커버스커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약간은 허술하고 성긴듯한 편곡과 중저음대 보컬. 생활 속 BGM(배경음악)으로 기능하는 음악. 이것이 장범준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점이라는 건 그의 데뷔 이래 명확해진 바이기도 하다.

<장범준 2집>이 길이 남을 명반(名盤)이라고는 보지 않더라도 그의 강점은 “작품마다, 곡마다 유사한 특유의 그 분위기”에 있다고 보고, 그것이 작금의 거대한 팬덤을 구축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과욕을 부리지 않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음악을 잘 해내는 것도 재능이다. 물결이 스치듯, 바람이 스치듯 하는 음악을 만드는 것. 장범준이 그런 재능을 갖춘 인물이라는 건, 이번 대중의 반응을 통해 오히려 명백해진 셈이 아닐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장범준의 음악이 다른 가수의 노래를 표절하거나 ‘글자 그대로’ 자기 곡을 카피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만의 스타일과 개성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음악도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에게 뭔가를 더 요구하는 순간, 그의 음악은 흐트러질 거라고 믿는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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