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조선, 해법 말하다]③ 김보원 카이스트 교수 “말로만 위기의식, 뼈를 깎는 내부혁신을"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press.com)
  • 승인 2016.04.0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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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게 일방적 희생 강요 말아야…정부·대주주로부터 독립된 이사회 구성을
김보원 교수는 국내 조선업계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를 탈피하고 혁신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 사진=정지원 기자

조선산업 위기를 바라보는 경영전문가의 시선은 어떨까. 지난달 24일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위치한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원을 찾았다.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생산전략 및 경영과학을 가르치는 김보원 교수는 “지금의 조선업계가 과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잘못을 책임지고 물러난 임원이 거의 없고 직영업체는 외부업체에 문제를 전가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조선·해양 위기가 비단 유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외부환경이 호의적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자세를 버리고, 위기를 내부혁신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정부와 경영진은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단순 해법이 아닌 (노동자) 커리어의 안정성을 담보할 재교육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며 “경영진은 핵심기술을 국산화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 언제든 ‘조선업의 샤오미’가 등장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기업 공급망 관리(SCM) 및 예측 분야 전문가다. 조선 3사가 유가 하락 등의 위기를 예측할 수는 없었을까.

“유가가 하락할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유가는 반드시 하락하기 마련이다. 위기에 대비하는 자세가 중요했다. 되돌아보면 조선 산업은 외부환경이 좋아서 성장을 계속해왔다. 결국 현실에 안주했다. 또 정치권과 너무 많은 연계가 있었다. 경영분야 전문가가 내부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유가가 당장 오르기 어려워 보인다. 해양 수주가 떨어지면 조선사 대량 해고 등이 불가피 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사용자와 정부는 노동자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나. 노동 유연성만을 내세울 게 아니다. 커리어와 연계된 연금제도와 같은 안전망을 먼저 갖춰주고 노동유연성을 요구해야 한다. 충분한 재교육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 사용자가 노동계 우려사항을 불식시킬 수 있는 보완적인 제도를 만들어야만 한다.”

국내 조선업계에 깊게 뿌리내린 하청과 직영업체 간 차별대우 문제도 불거진다. 하청업체가 위기에 더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나라 노동 문제점이 조선산업에 그대로 나타난다. 인력구조가 직영 반, 협력업체 반으로 돼있다. 외주업체 종사자들은 지위가 불안정하다. 직영의 노동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외주에도 (직영직원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경영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조선소 직영세력들이 기득권세력이 돼버렸다. 이들에게 업무변경을 하라고 하면 거부한다. 같은 문제가 자동차와 화학산업으로 번져갈 수 있다.”

직영과 협력업체 갈등이 한국에 국한된 문제인가.

“중국은 정부가 수요를 기업에 배분하기 때문에 갈등이 첨예하지 않다. 일본에선 조선산업이 침체돼 있었기 때문에 노동유연성보다 효율성이 중시된다. 독일 등 유럽국가는 직영과 협력업체가 동반자적 관계다. 우리 같이 갑을관계가 아니다. 각자의 기술력을 인정하고 대우 역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차별 때문에 갈등이 더 심한 경향이 있다.”

김 교수는 토론회를 통해 은행권이 금융지원 수단을 통해 선별 수주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금융권이 조선업 프로젝트의 수익성 여부를 판단할 능력이 있나.

“조선·해양 전문가만 수익성을 판단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하다. 조선업계는 몇몇 대학의 졸업생들이 배타적인 문화를 형성했다. 외부의 관점이 들어가서 기존 관행을 깰 수 있어야 한다. 금융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일부 들어와서 외부시각으로 봐줄 필요가 있다.”

대형 조선 3사가 긴축 경영 등을 통해 위기관리에 들어갔다.

“조선업계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 자기 밥 그릇 생각만 한다. 경영문제를 책임지고 실제 해고된 임원이 몇이나 되나. 직영은 피해를 외부 업체에 떠넘기고 있다. 이런 시기에 노동개혁, 기술개발 전략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같은 위기를 겪은 일본, 중국, 싱가포르, 브라질 등 개도국은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견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업 윤리나 시장 윤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개념을 조선 산업에 대입해보자면.

“우선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또 대주주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사회구성이 필요하다. 특히 (적자폭이 큰) 대우조선은 정부입김으로부터 회사를 보호할 수 있는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국회가 나서서라도 힘을 실어주는 입법이 이뤄져야겠다. 순환출자 고리도 끊어야 한다. 대한민국 자본주의 자체가 덜 성숙한 느낌이다.”

정부와 기업에서 볼 수 있는 미성숙한 자본주의의 모습은 무엇인가.

“미국이나 미국은 기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게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우리와 차이가 있다. 또 정부는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전문가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일관성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조선·해양 분야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바뀌고 나면, 그 다음 후임자가 전임자 업무를 이어가지 못한다. 일본 전문가그룹은 정부가 바뀐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조선산업 전망과 이를 풀어갈 해법은.

“유가가 올라도 해양산업은 어려울 것이다. 회복되더라도 5년은 걸린다. 삼성전자가 중국 샤오미나 화웨이를 벤치마킹하는 시대다. 조선 산업도 변화가 올 수 있다. 지금까지 핵심기술을 해외에서 가져다 왔는데, 이를 국산화하거나 협력사와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경영자들은 세계화돼야 한다. 외국기업 경영자들과 협상할 때 불리한 조항에 당하지 않아야 한다. 국내 대기업은 경영권 방어에 엄청난 리소스를 활용한다. 그 비용을 전부 연구개발(R&D) 분야에 쓴다면 얼마나 큰 발전이 있겠나. 회사와 경영인 모두 새로운 기술, 혁신역량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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