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시진핑 등 정상들, 파나마 페이퍼 사태로 ‘패닉’
  • 윤민화 시사비즈 기자 (minflo@sisabiz.com)
  • 승인 2016.04.13 17:09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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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 폰세카 스캔들’에 국가원수 12명, 국가원수 친인척 61명 고위 관료 128명 연루
© AP 연합·EPA 연합

‘1조원 숨기기 어렵지 않다. 첫째, 믿을 만한 이를 섭외해라. 둘째, 은행 관계자를 찾아라. 셋째, 조세회피 전문 법률사무소를 고용해라. 넷째, 은행을 통해 신뢰하는 사람 명의로 영국령(領) 버진아일랜드 같은 조세회피 지역에 유령회사를 설립해라. 다섯째, 법률사무소를 통해 유령회사에 1조원 대출을 승인해라. 축하한다. 당신은 1조원을 안전하게 숨기는 데 성공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4월3일 ‘파나마 서류, 수십억 달러를 숨기는 법’이라는 제목의 동영상기사에서 ‘1조원 숨기기 5단계’ 방법을 제시하며 ‘모색 폰세카 문서 유출’ 사태를 희화화(戱畵化)했다. 가디언은 법률사무소 자료가 유출되지 않는 한 누구도 이 돈을 추적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법률사무소 자료가 대량 유출됐다. 4월4일 파나마 소재 법률사무소 ‘모색 폰세카’의 자료 1150만건, 2.6테라바이트(TB)가 한꺼번에 유출돼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모색 폰세카는 세계 4위 조세회피 전문 법률사무소다. 1977년부터 전 세계 21곳에 조세회피목적의 유령회사 21만개 이상을 설립했다. 2005~07년 집중적으로 설립했다. 특히 2005년 1만3287개를 설립해 가장 많았다.

푸틴 “파나마 페이퍼는 미국의 모함”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전 세계 회원사에 이 자료를 나눠 분석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분석 결과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는 전 세계 은행, 법률회사, 법인 설립 및 중개업체 1만4000여 곳과 함께 일했다. 홍콩·영국·스위스의 법인이 많았다. 미국·파나마·과테말라·룩셈부르크·브라질·에콰도르·우루과이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조세회피지로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11만3648개), 파나마(4만8360개), 바하마(1만5915개) 등이 많았다. 세이셸·니우에·사모아·영국령 앵귈라·네바다·홍콩·영국 등도 유력지로 꼽힌다.

조세회피 중개자가 가장 많은 국가는 홍콩(3만7675건), 스위스(3만4301건), 영국(3만2682건) 등의 순이고, 룩셈부르크·파나마·키프로스·우루과이·영국령 맨섬·싱가포르·러시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은행별로는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엑스페르타(Experta Corporate & Trust Services)가 조세회피지에 유령회사 설립을 가장 많이 요청했다. 룩셈부르크·스위스·영국 등에 본사를 둔 은행이 주 고객으로 밝혀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파나마 페이퍼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다. 푸틴 대통령 측근 다수가 파나마 페이퍼 자료에 이름을 올렸다. 푸틴 대통령은 연루 사실을 부인하며 미국의 모함설을 제기하고 있다. 유출 자료에서 푸틴 대통령 이름은 찾을 수 없다. 대신 측근 인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부를 감춰왔는지 알 수 있다. 푸틴의 큰딸의 대부(代父) 세르게이 롤두긴, 푸틴의 친구 로텐버그 형제와 아들, 측근인 로시야 은행 최대주주 유리 코발추크 등이 대표 인물이다.

세르게이 롤두긴은 푸틴의 전 부인 류드밀라 푸티나를 푸틴 대통령에게 소개했을 정도로 푸틴과 각별하다. 파나마 페이퍼에 따르면, 롤두긴은 러시아 최대 텔레비전 광고대행사 비디오인터내셔널의 지분 12.5%를 보유하고 있다. 또 러시아 군용차량 트럭 제조업체 카마즈의 지분 매입 옵션, 키프로스에 등록된 레이타르 지분 15%, 로 시야 은행 지분 3.2%도 갖고 있다. 푸틴의 막내딸 카테리나 티코노바(29)도 푸틴의 친구 니콜라이 샤마로프의 아들과 결혼했다. 티코노바 부부는 20억 달러 규모 역외기업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샤마로프는 로시야 은행 주주이기도 하다. 로시야 은행은 러시아 최상류층을 위한 개인은행이다. 미국은 로시야 은행을 푸틴의 개인금고로 지목한 바 있다.

중국 리펑 전 총리·아르헨티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왼쪽부터) © AP 연합·ITAR TASS 연합

‘부패 척결’ 주장한 시진핑, 도덕성에 치명타

ICIJ는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뒷거래는 푸틴 대통령의 보호와 후원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판단한다. 또 푸틴의 인맥은 로시야 은행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인사들의 유령회사는 파나마·러시아·스위스·키프로스 등에 위치한다. 가디언은 4월7일(현지 시각) “러시아 상류 가문의 세습문화는 중국 군주제와 비슷하다. 러시아 상류층 자제들은 부모 재산뿐만 아니라 본인이 갖고 싶은 자산까지 선택할 권리를 물려받는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조세회피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4월7일 “(파나마 페이퍼 유출은) 러시아를 흔들기 위해 미국이 주도한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미국 백악관은 푸틴 대통령이 제기한 모함설을 전면 부인했다. 중국 최고위층도 모색 폰세카의 주요 고객으로 밝혀졌다. 모색 폰섹카는 중국 내 도시 8곳에 걸쳐 법인을 세웠다. 지난해 중국 법인을 통해 유령회사 1만6300곳을 설립했다. 지난해 전체 역외기업의 29%에 해당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전·현직 고위 관료 9명의 친인척이 모색 폰섹카를 통해 역외기업 설립에 관여했다고 4월7일 보도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마오쩌둥 전 공산당 주석, 장가오리 국무원 상무부총리, 자칭린 전 공산당 중앙정치국위원회 상무위원, 쩡칭훙 전 중국 부주석, 류윈산 공산당 상무위원, 리펑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후야오방 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보시라이 전 상무부 부장이 해당 인물이다.

시진핑 주석의 매형 덩쟈구이는 버진아일랜드 소재 유령회사 웰스밍인터내셔널과 베스트이펙트엔터프라이즈의 주주다. 시주석이 부패 척결 운동을 추진하기 전에 덩쟈구이는 역외기업 3곳도 추가로 사들였다. 자칭린 전 상무위원의 손녀 자스민리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 입학 무렵인 2010년 12월 버진아일랜드에 자기 명의의 유령회사 2곳을 설립했다. 이코노미스트는 4월7일 ‘파나마 페이퍼가 중국 지도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은 이전부터 부패가 만연한 곳이다. 이번 유출자료만으로 중국 고위 정치인의 숨은 돈을 모두 증명할 순 없지만, 시 주석의 부패 척결 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 고위층 친인척이 막대한 부와 특권을 누린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우크라이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파키스탄 나와즈 샤리프 총리(왼쪽부터) © AP 연합·EPA 연합

현직 정상 중 아이슬란드 총리 첫 사임

전 세계가 요동치는 것과 달리 중국은 평온하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해 중국 언론이 모색 폰세카 사태를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발행 차이나 디지털타임즈는 4월6일 “중국 정부는 파나마 페이퍼 관련 내용을 자체 검열해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또 영국 공영방송 BBC, 미국 뉴스 채널 CNN 등의 페이퍼 관련 보도를 전면 차단했다. 4월5일 오후부터 중국 내 가디언 온라인 사이트도 부분 차단됐다. 미국 주간지 타임의 시진핑 주석 관련 보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 외무부는 4월5일 “(모색 폰세카 관련 내용은) 근거 없다”고 일축했다. 외신기자가 중국 언론이 파나마 페이퍼 사태를 보도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중국 외무부 관계자는 “그건 언론 매체에 직접 물어보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선친 이안 캐머런도 1980년 역외기업 블레이모어홀딩스 지분을 소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안 캐머런은 이 회사 지분 소유로 얻은 소득에 대해 영국에 세금을 낸 적이 없다. 시그뮌뒤르 귄로이그손 아이슬란드 총리와 부인은 아이슬란드 은행 3곳을 통해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유령회사 윈트리스 채권 400억 달러가량을 사들였다. 귄로이그손 전 총리는 윈트리스 지분 50%를 2년 이상 보유한 후 나머지 절반을 소유한 부인에게 넘겼다. 지나이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유럽축구연맹(UEFA) 법률 담당국장 시절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자녀들도 도이치방크에서 700만 프랑을 빌려 버진아일랜드 역외기업이 소유한 런던 파크레인 아파트 4채를 사들였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부패 정치 척결을 주창하며 대통령에 당선될 무렵인 2014년 8월 버진아일랜드에 역외기업을 비밀리에 설립했다. 이 밖에 미국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스페인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등도 역외 거래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귄로이그손 아이슬란드 총리는 4월5일 사임했다. 그는 총리직 사임 전 ICIJ 파트너와 인터뷰를 갖고 “윈트리스 관련 자료를 아이슬란드 조세 당국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파나마 페이퍼 사태로 사임한 첫 고위 정치인이다. 앞으로 또 누가 귄로이그손 전 총리의 뒤를 따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모색 폰섹카는 200여 개 국가의 체육·예술 단체부터 블랙리스트 기업·인물, 테러집단, 중동, 북한까지 전 세계 고위층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에는 국가원수 12명, 국가원수 친인척 61명, 고위 공무원 128명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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