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현상금說’ ‘테러범 체포說’…뒤숭숭한 평양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
  • 승인 2016.04.14 18:40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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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테러 첩보 등 난무, 북한 내부의 불안정 반영

서울의 외교가와 대북 소식통 사이에선 요즘 북한 김정은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가 입소문을 탄다.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신병 확보에 1억 달러의 현상금이 붙었다는 설이다. 여권의 대북 정보 핵심 관계자도 최근 한 연구기관의 전문가 모임에서 이 같은 첩보를 전해 참석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출처나 구체적인 정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체포하거나 제거하는 인물이나 조직에 천문학적인 보상금이 주어진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북한 최고 지도자의 신병 문제와 관련해 ‘1억 달러 현상금’ 같은 제안을 내놓을 수 있는 곳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위시한 워싱턴 당국뿐이란 분석도 나온다. 또 북한 체제의 특성상 외부 세력에 의해 시도되기보다는 김정은 측근 세력과의 연계를 통한 실행과 보상에 초점을 둔 플랜일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김정은을 압박하는 심리적 효과가 상당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려명거리’ 건설 착공식이 4월3일 북한 평양에서 진행됐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연합뉴스


“北, 대화 모색으로 선회한 것 아니냐” 관측도

정부 대북 부처 당국자와 북한 전문가들은 이런 설이 제기된 상황에 주목한다. 올 초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의 도발로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뒤흔들고 있는 김정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란 측면에서다. 4차례 핵실험을 마친 상황에서 핵탄두 소형화와 투발(投發) 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모의실험까지 공개하고 나서는 등 김정은의 도발 행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대북 정책 담당자들이 김정은 제거 쪽으로 결심을 굳혀가고 있는 방증이란 풀이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평양의 지도부도 이 같은 분위기에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키리졸브(KR) 한·미 합동 군사연습을 앞둔 지난 2월말 ‘하늘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B-2 스텔스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에 전개되고 F-22 랩터 전투기 등이 북한 상공에서 은밀한 비행훈련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김정은의 동선은 한동안 끊겼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주민들이 접할 수 있는 선전 매체를 통해 “우리의 최고 지도부를 노린 ‘참수작전’과 집무실 타격훈련까지 벌였다”며 발끈했다.

‘김정은 현상금’ 소문이 번지는 것과 때를 같이해 북·중 접경지역에선 “북한 수뇌부를 노린 2인조 테러범이 체포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4월7일 일본 매체인 아시아프레스를 인용해 전한 바에 따르면 김정은을 살해하기 위해 두만강 중국 측 관할구역까지 다가온 테러범을 북한 국경경비대가 함경북도 회령시 인계리 부근에서 붙잡았다는 것이다. ‘북한 국경경비대 정치지도원’으로 알려진 취재원은 “한 명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이고 다른 한 명은 중국인”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을 겨냥한 테러 시도라고 보기엔 어설픈 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 들어 이 같은 소문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는 점에 대북 정보 관계자들은 주목한다. 김정은을 정조준한 테러나 위해(危害) 관련 첩보는 북한 체제 내부의 불안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 주민들이 이른바 ‘최고존엄’으로 지칭하는 김정은의 유고(有故) 사태는 북한 내부에서 금기시되는 표현이었다. 평양의 관영 매체들이 이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 자체가 최근의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한이 대북 압박에 맞서던 모습에서 대화를 모색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레 나온다. 한국의 총선이 끝나고, 4월말 한·미 합동 군사연습도 마무리되는 시기를 염두에 두고 북한이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4월3일 김정은이 책임자로 있는 국방위원회 명의로 나온 ‘대변인 담화’는 그중 하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2270호 발표 한 달에 맞춰 나온 이 담화에서 북한은 “일방적인 제재보다 안정 유지가 급선무이고 무모한 군사적 압박보다는 협상 마련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제재 결의 직후인 3월7일 내놓은 국방위 성명이 3100자였던 데 비해 4월 담화는 6800자에 달했다. 그만큼 할 얘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국방위 담화에 맞춰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같은 날 “미국은 전쟁 위기, 멸망의 위기를 모면하려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는 글을 실었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4월6일 “북남 대화와 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나가려는 공화국의 원칙적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에 북·미 베를린 접촉설까지 제기되면서 북한의 출구 찾기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3월31일자 보도에서 “북한 관리가 2월 베를린에서 미국 관리를 만나 종전(終戰) 선언, 한·미 군사훈련 중단, 1년간 북한 핵실험 중단 등을 제안했다”며 “하지만 미국 정부가 핵폐기를 요구해 협상이 무산됐다”고 전했다. 평양 측이 ‘선(先) 핵폐기’ 장벽에 막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선 대화와 협상 쪽으로 언제든지 옮겨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함흥시에 있는 신흥기계공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월1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5월 노동당 7차 대회 연기 가능성도 제기

물론 북한은 여전히 한·미와 국제사회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4월7일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대변인 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국제 공조를 청탁하느라 신발창이 닳도록 미친 듯 돌아쳤다”는 등의 비난을 퍼부었다. 선전 매체를 통한 비난전뿐 아니라 핵·미사일과 관련한 도발적 행보도 이어진다. 평북 영변 핵시설 내에 있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공장에선 최근 5주 동안 2~3차례의 연기 배출이 있었다는 게 미국 내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의 분석이다.

일각에서 5월초로 예정된 노동당 7차 대회의 연기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북한 매체들은 여전히 당 대회를 염두에 둔 캠페인에 적극적이다. 김정은 지시로 건설 중인 평양 ‘려명거리’ 건설공사를 비롯해 70일 전투를 성공적으로 끝내라는 주문이다. 이곳에 70층 아파트를 건설해 지난해 11월 완공된 미래과학자거리의 53층짜리 은하아파트(높이 210m)에 이어 또 하나의 랜드마크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가 나온 지 보름 만에 김정은이 건설 지시를 했다는 점에서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나 통치 리더십에 문제가 없다는 걸 과시하려는 김정은의 의도가 깔렸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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