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 전치형 교수(KAIST과학기술정책대학원·재난학연구소)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4.15 20:39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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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통해 ‘사회적 기억’으로 승화시켜야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2014년 4월, 세월호에 타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깨닫자마자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선언했다. 사건의 진실을 하나도 몰랐던 그때에도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동안 놓지 말아야 할 의무가 되리라고 직감했다. 동시에 우리는 그동안 서해훼리호를 잊고, 성수대교를 잊고, 삼풍백화점을 잊고, 대구지하철을 잊었음을 기억해냈다. 지금까지 계속 잊었지만, 그래서 또 이런 참사를 당하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끝내 기억하리라고 약속했다.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지난 2년간 펜이 있는 사람은 세월호를 쓰고, 붓이 있는 사람은 세월호를 그리고, 카메라가 있는 사람은 세월호를 찍었다. 몸이 있는 사람들은 걷고, 뛰고, 소리치고, 굶었다. 서명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리본을 달았다. 모두들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기 위해 버텨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각자의 다짐과 실천을 모아 세월호를 ‘사회적 기억’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수많은 개인이 기억하는 동시에 하나의 사회가, 공동체가 기억하도록 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기억은 단단해지고, 행동으로 이어지고, 변화를 만들어 낸다. 

‘사회적 기억’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고 전달된다. 홀로코스트는 왜 전 세계가 기억하는가? 누군가 끊임없이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기 때문이다. 3.1 운동과 유관순 열사는 왜 모든 한국인이 기억하는가? 누군가 끊임없이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기 때문이다. 개인의 기억은 뇌세포에 달렸을지 몰라도, 사회의 기억은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를 통해서만 유지할 수 있다. 이 사회가 세월호를 기억하려면, 누군가 그것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세월호를 누가, 언제,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할 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기억하기 위해 가르치자

누가 세월호를 가르쳐야 할까. ‘세월호 전문가’들이 맡아서 하면 되는 일인가. 그런 사람들은 없다. 2014년 4월의 혼돈 속에서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이 참사가 어느 누구의 전문영역도 아닌, 그 누구도 전체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없는 ‘총체적 사건’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을 어느 한 분야의 일로 치환하고 국한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경찰과 보험회사가 처리하면 되는 ‘교통사고’라는 말이나, 결국 변호사와 공무원이 해결하면 되는 배상·보상 문제라는 생각은 모두 이 총체적 사건의 일부만 떼내어 단순하게 보려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참사의 원인을 한마디로 명쾌하게 정리해 줄 전문가도 없다. 선박 침몰의 원인을 급변침, 고박불량, 과적, 규제완화 등으로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디에서 멈추어야 할 지도 알기 어렵다. 그럼 누가 이 사건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세월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각자가 아는 만큼을 정리하고, 공유하고, 결합해서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세월호 지식’을 만드는 일은 할 수 있다. 과학자, 공학자가 인문학자, 사회과학자와 대화하고, 교육자가 학생과 토론하고, 법률가와 활동가와 시민이 힘을 합쳐 해야 하는 일이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보는 관점에 따라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이기도 하고, 그날 이후 2년 동안 진행 중인 사건이기도 하고, 지난 10년간 혹은 20년간 천천히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곪아 터져버린 사건이기도 하다.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해양 참사인 동시에, 안산이라는 지역과 그 주민들을 슬픔에 빠트린 재난이기도 하고,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든 국가적 비상상황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복합성이 세월호를 가르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배의 구조와 평형수의 무게와 그날의 항적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하고, 오래된 화물적재 관행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하고, 안산에서 전국으로 퍼진 애도의 물결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하고, 서울 광화문 광장과 국회와 청와대 사이의 정치적, 심리적 거리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과 세월호는 무엇이 같고 다른지를 따져볼 수도 있고, 안전한 삶을 위해 국가와 시민이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도 있다. 세월호가 유발한 깊은 슬픔과 분노의 원인을 진단하는 것도 필요하고, 그러한 감정이 어떻게 정치적, 사회적, 예술적 통로로 표출되었는지 조사하는 작업도 의미가 있다. 사건의 배경과 전개와 결과를 함께 다룸으로써 우리는 세월호와 한국 사회를 동시에 가르치고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를 누구에게 가르쳐야 할까. 2014년부터 이 땅에 살면서 세월호를 직접 겪은 사람들, 이 땅에 살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그땐 아직 어려서 세월호를 앞으로 차차 알게 될 사람들 모두 세월호를 통해 21세기 초의 한국 사회를 같이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배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나이의 스무살 신입생들에게 세월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자료와 토론거리를 친절하게 제공하면 좋겠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간, 무한경쟁의 압력에 눌려 있을 열일곱살 학생들과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의 의미를 토론하면 서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간, 세상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열네살 청소년에게 2014년 이후 한국 사회가 무엇을 겪어왔는지 설명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가끔씩 보이는 노란 리본이 무엇인지 궁금한 여덟살 아이에게 언니 오빠들의 아픈 사연을 조심스럽게 들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의 필요에 맞게 이론과 개념, 질문과 예시, 이야기와 그림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할 작업이다.   

정답이 아니라 물음이 중요

세월호를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고, 전달하고, 보존하는 일에 꼭 필요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세월호 지식’의 집합이다. 그리고 이 지식은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서해훼리호부터 대구지하철까지 여러 대형 참사의 경우,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여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지식으로 만들고 이를 사회적 자산으로 축적하는 데에 실패했다. 사고조사 보고서나 백서가 그 사회적 기능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세월호 이후에는 사건의 기록을 모으고, 이를 분석하여 지식으로 만들고, 그것을 또 정리하여 교육에 쓸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내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오준호 작가가 법정 기록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하여 1주기 무렵 펴낸 <세월호를 기록하다>나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방대한 양의 자료를 바탕으로 최근 펴낸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 ‘세월호 지식’의 토대가 될 것이다. 이에 더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조만간 내놓을 공식 조사보고서가 가장 신뢰할 만한 ‘세월호 지식’으로 인정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9.11 테러에 대한 미국 정부 위원회 보고서처럼 세월호 보고서도 널리 읽힐 수 있어야 한다. 2주기를 앞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발행한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 교과서>는 지금까지 쌓인 자료를 초중등 학생들에 맞게 정리하여 학교에서 활용하려는 시도로 주목할 만하다. 비난하거나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토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대학에서 세월호 관련 수업을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자료는 <세월호 교실> 웹사이트(http://teachsewol.org)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러 다큐멘터리 영상과 심층보도 프로그램들도 효과적인 교육용 자료로 쓸 수 있다. 이런 시도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많은 ‘세월호 지식’을 만들고 교육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세월호를 가르칠 것인가. 세월호 교육을 위한 자료들이 대상에 맞는 내용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 널리 공유된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뜻있는 사람들이 세월호를 가르치고 배우고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특조위가 공신력 있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모든 공공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에서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관련 자료들을 모두 인터넷에서 쉽게 찾고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믿을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모으고 유통시킴으로써 언제든지 활발한 토론이 벌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와 함께 매년 4월 16일에는 전국의 학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세월호를 읽고 보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겠다. 선생님과 학생과 시민들이 하루만이라도 희생자와 생존자와 그 가족들 대신 세월호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날 하루 모든 학교가 단원고가 되어 세월호의 무게를 같이 짊어지면 어떨까. 잠시나마 전국의 모든 교실이 세월호 교실이 되면 어떨까.   

세월호를 가르치고 배우는 현장은 정답이 아니라 물음이 중요한 곳이 될 것이다. 또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 함께 느꼈던 충격과 슬픔과 무력감을 서로 고백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길을 잃었던 그 지점에서 다시 만나 같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세월호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세월호의 아픈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작업이 아니다. 파국적 사건을 기록하고, 이해하고, 그로부터 배움으로써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만들고 그 구성원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탄탄하게 만들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이번에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영영 제자리를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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