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民心, 대권 판도 새로 짰다
  • 이승욱·유지만·박준용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4.20 16:17
  • 호수 138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13 총선’이 빚어낸 대권 잠룡들의 몰락과 도약
© DPA 연합·뉴시스·시사저널 포토

민심은 냉엄했다. 4·13 총선에서 국민들은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새로운 정치 지형을 선택했다.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더민주)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여야의 지형 변화는 16년 만의 일이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무난히 확보할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100석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왔던 더민주는 기사회생했다. 더민주는 수도권에서 압승하고 PK(부산·경남)에서 선전(善戰)해 원내 제1당으로 발돋움했다. 국민의당은 호남의 새로운 맹주로서 위상을 갖췄다. 호남 민심의 상징인 광주에서 국민의당은 전 지역구를 석권했다. 원내 교섭단체 구성 정족수를 훌쩍 뛰어넘은 국민의당의 4·13 총선 성적표는 본격적인 3당 분할 체제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민심은 분명했다. 4·13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에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경고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원내 과반 이상을 차지하며 독주 체제를 이어온 집권여당에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민심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親朴·친박근혜)계의 ‘반대 세력 찍어내기’ 등 공천 파동에 적지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성난 민심의 칼날은 야당에도 향했다. 더민주는 원내 제1당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안방이었던 호남에서 대패하면서 선전이 빛바랬다.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압승하고 정당 득표율에서 선전했지만 전국 정당화에는 실패했다. 야권을 향한 경고와 기대는 교차투표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무서운 민심이 절묘한 표 분산을 해준 셈이다.

4·13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은 단순히 여야 정당 세력 균형의 변화만 불러온 것이 아니다. 유권자들의 냉엄한 선택은 향후 1년 8개월 동안 본격화할 대권 판도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4·13 총선을 통해 2017년 차기 대권 구도는 격랑에 휘말렸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존 대권 잠룡들의 위상 변화 등 부침(浮沈)이 심하게 일었다. 신진 대권 잠룡(潛龍)들의 진입으로 인한 변화도 예상된다. 변화한 정치 지형에서 대권 잠룡들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총선 참패’ 여권, “가뜩이나 잠룡 부족한데…”

여권 대선 잠룡들의 몰락은 4·13 총선에서 유독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새누리당의 충격적인 참패는 여권 대선 잠룡들의 운명을 순식간에 뒤바꿔 놓았다. 여권 내 유력 대권 주자로 입지를 굳혀왔던 김무성 전 대표는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조기 사퇴했다. 당내에선 총선 패배의 원인을 두고 일부 비박(非朴·비박근혜)계를 중심으로 ‘친박계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지만, 여권 유력 잠룡으로서 김 전 대표의 위상이 치명타를 입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여권의 대권 잠룡군으로 거론됐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김부겸 돌풍’에 휩쓸려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에서 야당 후보에게 25%포인트 가까운 격차로 패배하면서 대권 잠룡으로서의 위상에 큰 흠을 입었다. 또 다른 여권 잠룡으로 인식되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당초 친박계와의 교감설이 제기되던 오 전 시장은 원내 진입 후 당내 입지가 커져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오 전 서울시장은 정세균 더민주 의원에게 13%포인트 이상의 득표율 차이로 패배했다.

애초 여권 안팎에선 차기 대권 구도에 대해 불안한 기운이 많았다. 특히 야권에 비해 대권 후보로 거론할 만한 인사가 적다는 점은 이런 분석에 더욱 힘을 실었다. 이에 따라 4·13 총선을 통해 여권 잠룡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여권 내부에서 나왔다. 하지만 김무성·오세훈·김문수 등 대권 잠룡들의 연이은 몰락으로 여권의 재집권 전략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지게 됐다.

이에 따라 차기 대권 레이스에서 여권으로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반총장은 여전히 대권 도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았다. 반 총장의 임기는 2016년 12월까지다. 반 총장은 최근까지도 한국 정치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 반 총장의 국내 측근인 임덕규 디플로머시 회장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반 총장과 연락했지만 그가 대권이나 한국 정치 관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면서 “2016년 말 임기 만료까진 대권 이야기가 나와서는 안 된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사무총장직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4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을 마친 후 대표실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5월말 방한 맞춰 ‘반기문 구애’ 본격화할 듯

하지만 20대 총선에서 참패하는 극단의 상황이 빚어지면서 새누리당이 더 이상 반 총장의 등장에 느긋할 수만은 없는 처지가 됐다. 총선 패배로 레임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차기 후계 구도가 불확실해진 친박계의 입장에선 총선 이후 펼쳐질 대권 레이스에서 반 총장에게 더욱더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충청 지역 출신 유력 인사 모임인 충청포럼은 반 총장을 중심으로 한 ‘충청 대망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했고,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이 이 단체의 회장을 맡으면서 여권과 반 총장 사이에 묘한 ‘연결고리’를 암시했다.

더구나 반 총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기에, 반 총장이 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 내부에서 대선 유력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외교부(옛 외무부) 고위직 출신의 한 인사의 말이다. “반 총장은 외무부 공직생활을 시작(1970년)한 후 신입 외교관 연수 때 수석(首席)을 하는 등 실력을 보였다. 이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도 반 총장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반 총장의 근무지 인사들에게 반 총장을 신경 써 챙기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권의 구애에 대한 반 총장의 ‘응답’이 당초보다 꽤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반 총장이 유엔 주최 비정부기구(NGO) 회의 참석을 위해 5월말 방한하기 때문이다. 그는 2015년 11월 평양 방문을 전격 추진했고, 2015년 9월 박근혜 대통령과 새마을운동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반기문 대망론’에 불을 붙인 바 있다. 지난 4월1일 미국 워싱턴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그가 박 대통령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3분 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이 때문에 반 총장이 이번 방한에서 이전보다 진일보한 행보로 사실상 출마 의사를 밝히거나 또는 불출마 의사를 밝힐 것이라는 전망도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의 대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형국이 됐다. 일단은 총선 결과만을놓고 본다면 안 대표가 다소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전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하면서 구축한 ‘김종인 체제’의 더민주는 이번 총선에서 여당 강세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123석을 거머쥐면서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서는 등 선전했다. 수도권 압승과 함께 문 전 대표의 지역구가 있는 PK 지역에서 선전하면서 문 전 대표에 대한 재평가가 나오고 있다.

4월13일 국회 대회의실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실에서 김종인 대표(가운데)가 당직자들과 얘기를 나누며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문재인·안철수 위상 변화는 확장성 여부가 변수

호남 민심의 외면은 문 전 대표에게는 부담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문 전 대표는 당내 일각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선거 막판 광주를 방문하고 호남이 지지하지 않으면 대권 도전을 포기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더민주가 광주에서 전패하면서 호남의 ‘반문(反文·반문재인)’ 정서가 재확인된 만큼 문 전 대표에 대한 회의론도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안철수 대표에 대해서는 패배만 거듭하던 그동안의 모습에서 총선 승리로 위상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안 대표는 야권 분열을 비판하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야권 세력 판도의 변화를 주도했다. 결국 국민의당이 야권 텃밭이던 호남을 확실한 지역 기반으로 구축한 만큼 대권 잠룡으로서 안 대표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문 전 대표를 대신할 대안으로서 위상이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유력 야권 주자로서 문재인 전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던 양상에서 안철수 대표가 반전을 꾀할 수 있는 모멘텀이 4·13 총선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얼미터가 총선 직후 실시한 차기 대권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안철수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22.0%)에 이어 16.7%를 얻어 문 전 대표를 바짝 추격했다.

결국 ‘포스트 총선’ 국면에서 문 전 대표와 안 대표의 치열한 경쟁은 표의 확장성 여부에 달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 대표가 각각 총선에서 선전했지만 자신들의 한계점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 때문이다. 문 전 대표로서는 호남의 민심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문재인 한계론에 끊임없이 발목을 잡힐 수 있다. 안 대표는 호남 맹주의 위치를 확인했지만, 반 문 정서에 기댄 측면이 적지 않고, 결과적으로 호남 지역 구도에 갇힌 셈이 된 만큼 전국적인 세력 확장을 위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또 다른 시험대에 올랐다. 이에 따라 야권 유력 잠룡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낼지가 향후 대권가도에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부각된다.

문재인·안철수라는 유력 야권 주자의 위상을 흔들 만한 새로운 야권 대선 잠룡의 등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20대 총선 당선인 300명 중 최고의 ‘스타’는 단연 대구 수성 갑의 김부겸 당선인이다. 김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경쟁 상대였던 새누리당의 김문수 후보를 62.3% 대 37.7%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제쳤다. 19대 총선과 대구시장 선거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던 김부겸 당선인은 세 번째 도전 만에 여당의 핵심 텃밭인 대구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김 당선인에 대한 관심은 이제 ‘당권’과 ‘대권’으로 옮겨가고 있다. 4월13일 총선 당일에도 이에 대한 지지자들의 ‘기대’가 읽혔다. 김 당선인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일수록 이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30년 넘게 김 당선인을 곁에서 봐왔다는 한 측근 인사의 말이다.

“김부겸이란 인물은 시장에서 ‘충분히 팔릴 만한 상품’이다. (경기도) 군포에서 3선을 해본 데 이어 4선에 성공하면서, 정치적인 ‘커리어’는 충분히 쌓았다. 대권에 도전할 만한 ‘그릇’을 갖춘 셈이다. 또 주변을 아우르거나 소통하는 능력에서도 굉장히 탁월하다. 대구에서의 당선도 김부겸 본인의 인간적인 장점이 지역에 잘 통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본인에게 대권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다면 ‘때가 이르다’며 손사래를 치겠지만, 주변에서는 ‘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김부겸을 곁에서 오래 본 사람일수록 더 그런 말들을 하는 편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맨 왼쪽)가 4월14일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 상황판에 당선된 후보들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TK 텃밭 갈아엎은 김부겸, 야권 잠룡 급부상

김 당선인의 지지자가 아닌, 일반 유권자들도 비슷한 관측을 내놓았다. 투표 다음 날인 4월14일 대구 범어사거리 인근에서 만난 권 아무개씨(50)는 “새누리 밭이라고 하는데서 야당 정치인이 나왔으니, 기왕이면 대통령도 했으면 좋겠심더”라며 “보아하니 대통령 된다케도 충분히 잘하지 않겠나 싶습니더”라고 김 당선인의 능력을 높이 샀다.

김 당선인은 이와 같은 주변의 기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김 당선인은 4월14일 아침 범어사거리에서 당선 인사를 한 후 시사저널과 만난 자리에서 “나를 뽑아준 대구시민의 염원에 충실해야 한다. 현재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지역에 산적해 있다. ‘더 큰 판을 봐야 하지 않나’란 주변의 말을 알고 있지만, 지금 말할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곧 열릴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다소 여지를 뒀다. 그는 “수권 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거기에 제 역할이 일정 정도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 갑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월13일 당선이 확정됐다는 소식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김부겸 당선인은 4·13 총선을 통해 일약 야권의 대권 주자로 급부상했다. 대구 수성 갑에서 여권 대선 잠룡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큰 격차로 이겼다. 대구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당선된 것은 31년 만에 처음이다. 김 당선인을 선거 다음 날인 4월14일 오전 직접 만났다.

당선 소감을 말해달라.
이번 선거 결과는 여야 협력을 통해 대구를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라는 대구 시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정치로 보답하겠다.

‘여당 텃밭’에서 당선됐다. ‘지역주의’가 얼마나 무너졌다고 생각하나.
이번 총선은 오랜 기간 동안 특정 정당이 지역을 독점해온 결과들에 대한 국민들의 엄중한 평가다. 또한 정치인들이 지역주의를 이용한 구태 정치에 대해서도 강력한 경고를 내린 것이다. 특히 대구는 소선거구제하에서 무려 31년 만에 정통 야당 후보를 당선시켰다. 대구와 부산이 새누리당을 혼내셨듯이 광주가 더민주에 경고장을 던졌다. 새로운 정치, 좀 더 책임성이 높은 정당 체제가 재구성돼야 한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더민주는 호남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먼저 반성해야 한다. 또 야당이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양당이 서로 적대시하는 분열의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분열해서는 정권교체도 요원하다.

당권에 도전할 생각이 있나.
이번 총선에 대해 여야 모두 민심의 경고를 새겨야 할 것이다. 야당도 책임지는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안 없는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는 이제 안 된다. 수권 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거기에 제 역할이 일정 정도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대권 잠룡’ 대열에 합류했다. ‘대권’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구 지역의 당면한 과제에 힘을 쏟을 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