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發 부동산 투자 ‘열풍’ 아닌 ‘허풍’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4.21 19:13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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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외 지역 거래 미미 대규모 사업 투자도 부진

왁자지껄한 시장 상인들의 대화 속에서는 뜻을 알 수 없는 중국어가 흘러나온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는 코끝을 자극한다.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도배된 한자어 간판이 물결을 이룬다. 직업소개소·환전소·여행사·양꼬치집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 간판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간간이 섞여 있는 한글 간판이 ‘이곳은 한국’이라고 소리치는 느낌이다.

4월13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중앙시장.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의 환승역인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비교적 방값이 싼 동네여서 서울에 살고 있는 화교 중 많은 수가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최근에는 대림2동 주민의 절반이 중국 동포나 조선족이라는 추정치까지 나왔다.

서울의 ‘차이나타운’으로 불리는 이곳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최근 중국인들의 투자가 급증했다는 소문 때문이다.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언론에서도 경쟁적으로 비슷한 보도를 쏟아냈다. 제주도에 몰렸던 중국의 부호들이 서울의 중구 명동과 마포구 연남동에 이어 영등포구 대림동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이다. 소문의 진원지로 꼽히는 두 지역에서는 부동산 가격은 물론 전·월세와 임대료도 급상승했다. 이로 인해 상인들은 더 높은 임대료를 부담해야 했고, 일부는 월세에 허덕이다 문을 닫았다. 이들을 내쫓게 만든 이 소문은 과연 사실일까.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왼쪽 사진)과 마포구 연남동은 중국인 부동산 투자의 진원지로 알려졌지만 실제 투자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 시사저널 이민우


“소문은 들었지만 매매한 적 없다”

우선 1~2년 전부터 중국인 투자 지역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연남동을 찾았다. 1969년 한성화교학교가 자리를 잡아 자연스레 화교들이 몰리면서 ‘화교촌’을 형성했다.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은 중국식 요릿집들이 고급스러운 한자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화교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부동산을 찾았다. 중국인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질문을 하자 곧바로 “헛소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하균 대광부동산 대표는 “최근 연남동 일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인의 투자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며 “여행사에서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직접 운영하기 위해 건물을 산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아주 극소수”라고 설명했다.

오 대표는 “예전에도 기자들이 찾아와 물어보면 자세히 설명해줬는데 기사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오더라”며 “언론이 부동산 가격 급등을 부추기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화교거리 인근에서 15년간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했다는 장춘익 대한부동산 대표도 “중국인 투자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부동산을 사겠다고 찾아온 경우는 없었다”며 “상가 임대를 묻는 경우는 가끔 있었다”고 밝혔다.

혹시 중국인들이 전문적으로 찾는 부동산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화교거리 인근의 부동산 10곳을 들렀다. 대다수 부동산에서 중국인의 부동산 매입이 활발하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일부 부동산의 경우 1~2년 전부터 중국인들의 투자가 활발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10곳의 부동산 가운데 최근 1년 사이 중국인의 부동산 매매를 중개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최근 중국인들의 눈길을 끌었다는 대림동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희석 민항부동산 대표는 “이 동네에 중국 동포들이 많이 살다 보니 이들을 상대로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임차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며 “중국인들이 투자 목적으로 이곳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못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의 번화가에 한 조선족이 건물을 산 경우는 있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 자본을 유치한 게 아니라 자신이 양꼬치 가게를 여러 곳 운영하면서 모은 돈으로 건물을 직접 산 것이었다.

공인중개사의 설명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보도에서는 중국인의 부동산 매매가 2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밝혔는데, 여기에는 통계의 착시현상이 숨어 있다. 거래 자체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마포구청으로부터 받은 외국인 토지 취득 현황에 따르면, 중국인이 취득한 토지는 2013년 말 6358㎡에서 2015년 말 8477㎡로 소폭 증가했다. 33%가량 늘어났다고는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인(3만6169㎡)과 일본인(1만6459㎡)에 비해서는 규모 면에서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영등포의 경우도 같은 기간 3054㎡에서 8159㎡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이는 영등포구 전체 면적의 0.03%에 불과하다. 미국인이 소유한 토지(3만2803㎡)에 비하면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땅값 올리려 소문 퍼뜨리는 세력 있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소문이 퍼진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을 올리려는 건물 주인들과 일부 부동산중개업소가 이 같은 소문을 퍼뜨리는 것 같다”며 “임대료를 올리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부동산중개업소에서는 중국인들의 매매가 활발하다는 이유로 투자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중국인 투자 소문은 투기 심리를 자극했다. 대림동 주변 공인중개소의 얘기를 종합하면 대림역 인근의 임대료는 최근 3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올랐다. 오히려 인근의 신풍역이나 보라매역 주변보다 임대료가 더 비싸졌다고 한다. 1~2년 전부터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매물이 줄어들고 부동산 가격은 더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상인들 사이에서는 권리금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상가를 내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마포구 연남동의 월 점포임대료는 1㎡당 3만200원이었다. 석 달 만에 12.6%가 상승한 수치다. 1층 기준 전용 33㎡(10평) 상가의 경우 ‘권리금 8000만~1억5000만원, 보증금 3000만~5000만원에 월세 200만원’으로 시세가 형성돼 있다. 중심 상권인 홍대입구역 인근과 비슷한 수준까지 오른 셈이다.

문제는 허상에 가까운 중국인의 부동산 투자 소문 탓에 서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림역 인근에서 생활용품을 팔던 박창규씨(가명·63)는 임대료를 턱없이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건물주 때문에 20여 년간 이어오던 가게 문을 닫게 됐다. 박씨는 “그나마 월세가 싸서 입에 풀칠하며 살 수 있었는데 갑자기 월세가 올라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며 “당장 먹고살기가 막막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인천 영종도 미단시티 복합리조트 건설 사업은 최근 중국계 리포 그룹이 철수 의사를 밝히면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 연합뉴스
대규모 사업에서도 중국인 투자 유치 바람이 거세다. 일부 지역에서는 도지사까지 중국을 찾아가 투자 유치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인천 청라지구·영종지구 등에서 추진되는 대규모 리조트 건설 사업 등에 이른바 ‘차이나 머니’를 유치했다는 광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 대규모 투자에 나섰던 중국인들이 다른 지역에도 투자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푼 것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투자 유치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영종도 미단시티 복합리조트 사업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당초 2조3000억원을 들여 특급 호텔, 외국인 전용 카지노, 대규모 콘도 등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화교 자본을 유치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정부도 고도 제한까지 풀어주며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투자를 약속했던 중국계 화상 리포(Lippo)그룹은 3월22일 카지노 부문에서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어두운 카지노 사업 전망과 홍콩 부동산 여건 악화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리포그룹이 투자한 금액은 출자금 300여 억원과 토지 매매 계약금 2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리포그룹이 60% 지분을 가진 LOCZ코리아는 토지 매매대금 9576만 달러 가운데 계약금과 중도금 1917만 달러만 납부한 상태다. 지난해 12월까지 내기로 했던 잔금은 올해 9월로 미뤘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보증까지 섰던 인천도시공사는 미단시티 개발 사업이 좌초될 경우 수천억 원가량의 재무적 부담을 안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단시티 복합리조트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지가 불투명해지면서 개발 기대감을 바탕으로 투자했던 사람들도 큰 손해를 입을 처지에 놓였다. 인천도시공사가 지난해 11월 분양한 점포 겸용 단독주택용지(239필지 7만㎡), 근린생활시설용지(9필지 8000㎡), 일반상업용지(15필지 2만7000㎡) 등 총 263필지가 이미 팔린 상황이다.

최근에는 중국계 대기업의 투자를 연결해주겠다는 ‘브로커’ 업체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 브로커업체는 경제자유구역으로 선정된 일부 지역에 “중국 국영기업 등에서 5조원 투자를 약속받았다”며 대규모 사업 계획을 퍼뜨렸다. 하지만 이 업체의 중국 법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매출 100조원대의 대형 기업 앞글자만 따서 붙인 가짜 법인이었다. 함께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중국 국영기업 2곳에 문의한 결과, 해당 기업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중국 투자 유치를 미끼로 투기 심리를 자극해 부동산 투자를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에서 중국계 자본 유치 경험이 있는 한 대형 건설사 간부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때 중국계 자본을 유치해주겠다는 업체들이 자주 접근해왔다”며 “중국 쪽 사실 확인이 쉽지 않은 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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