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기와 정체기 사이에 선 위기의 손날두
  • 서호정 | 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6.04.28 18:10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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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팀 사정에 반비례하는 손흥민의 입지

4월19일 영국 스토크온트렌트의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토크시티와 토트넘의 2015~16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후반 45분 10여 초를 앞두고 손흥민이 벤치에서 나와 터치라인 앞에 섰다. 경기를 리드하고 있던 토트넘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승기가 굳어지자 마지막 교체 카드로 손흥민을 택했다. 손흥민은 에릭 라멜라를 대신해 들어갔다. 그리고 3분이 지난 후 경기는 종료됐다.

의미심장한 장면이었다. 이미 토트넘은 4골을 넣은 상태였다. 교체 과정에서 30초 이상을 소모하는 ‘시간 끌기’를 위한 교체였다. 손흥민의 포지션 경쟁자인 라멜라는 이날도 공격 포인트를 올리며 활약했다. 손흥민은 짧은 출전 시간에도 불구하고 2개의 슈팅을 기록하며 의욕을 보였지만, 최근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들고 있다. 토트넘은 팀 역사상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향해 레스터시티를 맹추격했지만 손흥민 입장에서는 씁쓸한 경기였다.

팀의 주전 공격수와 비교해 3분의 1 정도만 출전하고 있는 손흥민. 팀플레이와 공간 활용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생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AP연합


다른 압박과 수비, 하지만 같은 손흥민

최근 손흥민의 출전 패턴은 비슷하다. 앞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도 후반 44분에 투입됐다. 31라운드 아스널과의 홈경기에서는 후반 37분에 들어갔다. 도르트문트와의 유로파리그, 주중에 열린 리버풀과의 32라운드에는 선발 출전했다. 그러나 토트넘은 현재 리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체력 안배 차원에서 몇몇 선수가 빠지다 보니 손흥민에게 기회가 왔다.

리그 24경기에 출전했지만 14경기가 교체 투입이다. 총 출전 시간은 926분으로 평균 39분가량이다. 팀의 주전 공격수인 해리 케인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왜 손흥민은 첫 시즌에 처참할 정도로 고전하고 있을까?

우선은 이적으로 인한 적응 문제를 꼽을 수 있다. 프리미어리그와 분데스리가는 팀들의 전술적 경향, 리그가 추구하는 축구의 분위기 차이가 크다. 분데스리가에서는 지역 방어와 전방에서의 강한 압박을 구사하는 팀이 대다수다. 반면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대인 방어 위주에 위치를 조금 더 내려서 압박을 가한다.

손흥민의 강점은 스피드를 살린 돌파와 최고 레벨의 결정력이다. 그런 강점이 빛나는 장면은 역습에서 나온다. 상대와 적당한 거리가 있다면 30m도 금방 치고 나가 강력한 슈팅으로 마무리를 한다. 분데스리가 시절 손흥민의 전형적인 득점 패턴이 가능했던 것은 상대 수비의 마크가 조금 덜하고, 높은 지점에서 한 번에 압박을 벗겨내면 바로 찬스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그런 상황이 잘 나오지 않는다. 압박을 한 번에 벗겨낸다고 바로 찬스가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체격 조건과 운동 능력이 훨씬 좋은 수비수들이 밀착해서 괴롭힌다. 손흥민의 패턴을 모르는 팀들이 당했다면 지금은 대비를 하고 있다. 이는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2선, 혹은 측면 공격수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애를 먹는 공통된 경우다. 가가와 신지, 안드레 쉬얼레 등이 그랬다.

자신의 스타일을 진화시켜서 이를 돌파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지성이다. 활동량과 수비력이라는 자기만의 확실한 경쟁력도 있었지만 개인 돌파보다는 동료를 이용한 연계 플레이로 해법을 찾았다. 호날두·테베즈·루니와 함께 펼치는 엄청난 속도의 역습과 정교한 연계는 유럽 내에서도 최고였다. 하지만 손흥민은 첫 시즌이 끝나가는 단계에서도 변화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수비수를 상대로 일대일 돌파를 시도하려고 한다. 그럴수록 상대는 손흥민의 장점과 단점을 알고 좁은 공간 안에 그를 가둔다. 그러다 보니 1992년생의, 아직은 젊은 공격수지만 성장에 정체기가 왔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완성도 높은 개인 전술은 가능해도 팀플레이와 공간 활용에 대한 이해가 약하다고 지적받던 손흥민의 스타일이 프리미어리그라는 벽에 부딪힌 것이다.

“부상 이후 리듬 잃은 것 같다”

토트넘의 상황도 손흥민에게 그리 좋지 못하다. 현재 포체티노 감독은 최전방에 잉글랜드 국가대표 해리 케인, 2선에는 덴마크 국가대표 크리스티안 에릭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에릭 라멜라, 그리고 최근 무섭게 성장하며 잉글랜드 대표팀에 승선한 델레 알리 3명을 붙박이로 세운다. 여러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손흥민은 이 4명과 실질적인 경쟁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현재 컨디션과 경기력은 프리미어리그 최고로 꼽힐 정도로 뛰어나다. 특히 토트넘에서 지난 두 시즌 동안 부진이 반복됐던 라멜라는 역시 손흥민과 비슷한 개인 전술 성향이 컸던 선수였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포체티노 감독이 강조하는 강력한 전방 압박과 헌신적인 수비 가담을 보여주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함부르크 시절의 손흥민은 팀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유망주였다. 레버쿠젠 시절에는 경쟁이라는 요소가 거의 없었을 정도로 붙박이 주전이었다. 그러나 근 4년 만에 맞이한 치열한 포지션 경쟁에서 손흥민은 버거워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토트넘은 리그 외의 성적이 좋지 않다. 많은 경기를 치른다면 현재 상황을 바꿀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거의 없다.

토트넘은 최근 의기소침해진 손흥민을 위해 코리안 미디어데이 행사를 이례적으로 개최했다. 영국 내에 있는 한국 미디어를 초청해 손흥민이 팀에 잘 적응하고 동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소개한 것이다.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한 팀 동료 에릭센은 “나 역시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에는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 손흥민이 그런 시기에 있다”라고 응원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토트넘 입성 초기에 좋은 모습을 보이던 손흥민이 부상 이후 리듬을 잃었다고 분석했다. 손흥민은 지난 9월말 발바닥에 염증이 생긴 족저근막염으로 한 달 넘게 결장해야 했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의 간판이다. A대표팀의 공격력은 상당 부분 그에게 의존하고 있다. 오는 9월부터 시작되는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손흥민의 활약은 본선 진출을 위한 최대 필수 조건이다. 그에 앞서 8월에는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해 리우데자네이루에도 가야 한다. 메달 획득을 목표로 하는 신태용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지난 3월 손흥민을 연령 초과 선수인 와일드카드 1순위로 일찌감치 발표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손흥민이 지닌 기량에 대한 한국 축구의 신뢰에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적응기인지, 정체기인지 모를 현 시점을 손흥민이 지혜롭게, 그리고 수월하게 돌파해 나가야 한국 축구도 더 값진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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