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 ‘미소년+상남자’의 이상적 존재에 대한 열망
  • 정덕현 | 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6.04.28 18:12
  • 호수 138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우로서의 매력과 우리 사회의 결핍이 만들어낸 ‘송중기 신드롬’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끝났지만 ‘송중기 신드롬’은 이제 시작이다. 송중기는 이 드라마 한 편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가장 뜨거운 인물이 되었다. 사실 드라마 한 편이 이토록 한 인물에 대한 신드롬까지 만들어내는 일은 드라마에 국한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별에서 온 그대>가 김수현 신드롬을 만들어냈던 것은 단지 드라마 속 ‘도민준’이라는 외계인 캐릭터 때문만이 아니라, 당대를 꿰뚫고 있던 ‘영원한 청춘’에 대한 욕망과 슈퍼히어로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었다.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 신드롬도 우리 사회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우리 사회에 부재한 어떤 갈증들이 송중기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유시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표출되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도대체 그건 뭘까. 우선 그 신드롬의 근원을 찾기 위해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송중기라는 배우의 성장 과정이다.

그가 영화 <쌍화점>의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건 특유의 외모 덕분이다. 고려말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은 <쌍화점>에는 왕을 호위하는 호위무사단이 등장하는데, 이 왕이 남색(男色)도 밝힌다. 그래서 호위무사단은 모두가 미소년들이었다. 송중기는 그 미소년들 중 한 명으로 출연해 단역이지만 눈에 띌 만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첫 연기가 곱상한 외모에서부터 비롯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 연합뉴스


미소년 판타지 계보의 정점 찍어

그리고 이 이미지는 그의 확고한 팬덤을 만들어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 이어진다. 조선판 <꽃보다 남자>라고 불리던 <성균관 스캔들>에서 F4 중 한 명인 ‘구용하’(송중기)라는 유생은 그 캐릭터 자체가 ‘꽃미남’이다.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여성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으로 그는 캐릭터화되었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유아인이 연기한 ‘걸오’ 캐릭터처럼 거친 반항아의 강렬함을 갖진 않았지만, 늘 보는 이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인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미소년 판타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건 2005년 <왕의 남자>로 주목받은 이준기부터였다. 이후 2009년 <꽃보다 남자>로 이민호·김현중이 그 계보를 이었고, 그 흐름은 2010년 <성균관 스캔들>의 유아인·송중기·박유천으로 이어졌다. 그 이전의 남자 주인공들은 남성성이 강조된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을 떠올려보라. ‘버럭’ 캐릭터가 주목받을 정도로 남성성이 강했던 주인공이다. 이런 변화는 사회 진출이 본격화된 여성들이 좀 더 능동적인 자아를 찾기 시작하는 시기에 생겨난 새로운 판타지다.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당대의 로망을 대변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성이 더 중요한 시대적 가치로 등장하는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성균관 스캔들>로 확고한 팬덤을 얻게 된 송중기는 본격적인 연예 스타의 행보를 하게 된다. 2010년 <런닝맨>에 고정으로 들어와 예능에서 활약하게 된 것은 그래서다. 연예인의 신비주의는 이미 끝나버린 지 오래다. 송중기 역시 예능을 통해서 대중 친화적 이미지로 바꿔나갔다. 하지만 예능을 하차하고 <뿌리 깊은 나무> 같은 대작의 기회가 생긴 것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2000년대 초반의 그 많던 미소년이 모두 그저 꽃미남의 이미지로 소진되지 않고 모두가 연기자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나가게 됐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이준기가 그랬고, 박유천이나 유아인은 물론 송중기 역시 미소년을 넘어 연기자로 자기 영역을 확보했다.

<뿌리 깊은 나무>의 ‘이도’라는, 젊은 시절의 세종 역할은 송중기의 만만찮은 연기 가능성을 드러내주었다. 아버지 태종(백윤식)에 맞서는 젊은 이도의 강렬한 연기는 미소년의 이미지를 찢고 나오며 제법 날카롭고 카리스마 있는 배우를 예감케 했다. 그리고 이런 예감은 영화 <늑대소년>을 통해 입증되었다. <늑대소년>에서 송중기는 미소년 이미지의 뒤로 숨지 않았다. 물론 그 야수 같은 모습에서조차 순수함과 유머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었던 건 그의 본태적인 외모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공포와 충격부터 웃음과 안타까움, 그리고 눈물로까지.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송중기의 연기 덕분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적 존재에 대한 희구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었던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송중기가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다. 이경희 작가의 작품들이 으레 그러하듯 이 작품에서도 송중기가 연기한 ‘강마루’라는 캐릭터는 깊은 슬픔과 상실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다. 사실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까지만 해도 송중기에게서 남자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많았다. 동안에 미소년의 이미지가 강한 그였기에 문채원과 슬픈 멜로 연기를 해야 하는 이 작품이 사뭇 도전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송중기는 이 벽마저 넘어서면서 소년이 아닌 남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새로운 연기 영역의 세계로 들어온다. 그리고 마치 그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군에 입대한다.

제대 후 <태양의 후예>라는 작품에서 그가 제대로 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간의 이런 성장들이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소년에서 연기자로, 또 한 남자로 성장하면서도 미소년과 연기자와 남자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끌어안을 수 있는 존재. 여기에 <태양의 후예>에 등장하는 유시진이라는 캐릭터는 그에게 상남자의 이미지를 더해주었다. 군복 입은 송중기는 부드러운 면을 속살로 가진 채 전쟁터와 재난 지역을 뛰어다니는 상남자로서의 면모를 끄집어냈다.

미소년과 상남자라는 이질적인 조합은 이제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의 로망이 또 한 번 달라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여성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고 상냥하며 유머가 넘치는 소년이지만, 그 여성 바깥에서는 위험해 보이는 상남자의 면면은 이제 로망으로 받아들여진다. 거친 현실과 포근한 판타지 사이에 놓인 양면적인 욕구를 송중기는 담아냈다. 세상이 거칠어 맞서 싸울 수 있는 강인함이 필요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는 한없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그런 존재. 어찌 보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적인 존재에 대한 희구가 ‘송중기 신드롬’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태양의 후예>의 이응복 PD는 ‘PD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한 바 있다. ‘우르크’(<태양의 후예>에서 가상으로 그려진 국가)에서 벌어진 재난 현장을 대본으로 접하면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는 것. 그는 <태양의 후예>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태양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폭발시켜서 계속 세상을 밝히는 일을 하지 않나.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라는 드라마 대사와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즉 <태양의 후예>라는 완벽한 판타지는 거꾸로 그 판타지와는 정반대인 현실을 상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 그 긴박한 상황에서 정작 구조는 하지 않고 보고에만 열중하는 현실이 있다면, 지진이 벌어지고 언제 또 무너질지도 모르는 그 땅속으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가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사람을 구해내는 <태양의 후예>의 판타지가 있다. 신드롬이 생겨나는 건 판타지와 현실 사이에 놓인 거대한 괴리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에 등장하는 우르크라는 곳은 그래서 완벽한 가상공간이다. 물론 그곳에서 신드롬을 만들어낸 유시진이라는 캐릭터 역시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상의 캐릭터다. 그 공간은 그래서 총알이 날아다니고 지뢰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살벌한 곳이지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빛을 띤 바다와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별들이 쏟아지는 로맨틱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파병된 군인들은 총을 들고 전투에 나가지만 아침마다 잘 단련된 근육을 드러내며 여성들의 환호를 듣는 판타지적 존재들이기도 하다.

에서 송중기는 미소년과 상남자라는 이질적인 조합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여성들의 로망이 됐다. ⓒ KBS


‘송중기 신드롬’ 이면에 담긴 우리 사회의 결핍

살벌한 현실과 부드러운 사적 관계들. 그것이 캐릭터로 승화된 것이 유시진이라는 인물이고, 그 가상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 송중기라는 배우다. 알다시피 송중기는 미소년에서 배우로, 또 남자로 성장 과정을 거쳐 그 살벌한 현실과 맞서는 강인한 상남자면서도 사적 관계에서는 말랑말랑하기 이를 데 없는 미소년을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였다. 그러니 송중기 신드롬은 우연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거기에는 그의 개인적인 성장 과정과 운명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태양의 후예>라는 작품의 기막힌 인연이 존재한다. 신드롬은 이런 지점에서 갑자기 불거질 때 생겨나는 현상이다.

송중기의 성장이 반갑고 그 신드롬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우리 사회의 결핍들을 들여다보는 건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그 해답은 역시 이응복 PD가 말했던 것처럼 <태양의 후예>가 그리려 했던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갈증에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의 가치를 제대로 조명하고 있을까. 때로는 누군가의 명령을 받지 않고도 소중한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몸을 사리지 않는 분들에 대해 숭고함을 기리고 있을까. 우리는 과연 ‘태양의 후예’들을 꿈꾸며 살고 있을까. 폭발적인 송중기 신드롬의 이면에는 이런 질문들이 어른거리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