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가 청년을 벼랑 끝으로 몰았는가
  • 이준영 기자 (lovehope@sisapress.com)
  • 승인 2016.05.0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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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대출과 취업난에 청년들 허덕…정부·대출업체·기업 책임 느껴야

# 지방대 졸업생 박모씨는 3500만원의 빚이 있다. 대학 4년간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자금과 생활비를 대출했다. 취업만 하면 대출 원리금을 갚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을 못했다. 원서를 100번은 썼다. 서류 탈락, 필기 시험 탈락, 1차 면접 탈락, 최종 면접 탈락. 떨어진 단계는 다르지만 결국 탈락이었다. 대기업만 지원한 것도 아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많이 지원했다. 낮에는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고 저녁에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시급 6500원이다. 호프집에서 번 돈으로 장학재단 원리금을 갚고 있다. 학자금대출 원리금은 2025년까지 상환해야 끝난다. 

그에겐 미래를 약속한 여자 친구가 있다. 3500만원의 빚과 아르바이트생 신분 때문에 여자 친구와 계속 만나야 할지 고민이다. 여자 친구에게 부족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 연세대 여대생 이모씨는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고 있다. 그녀는 사실상 가장이다. 휴학하고 돈을 벌까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를 빨리 졸업하고 제대로 취업하는 게 낫다 싶었다. 장학재단에서 대출을 받았으나 기숙사비와 생활비가 필요했다. 햇살론도 알아봤으나 자격이 맞지 않았다. 2014년 저축은행에서 800여만원을 빌렸다. 월 22만원씩 이자를 갚는 조건이다. 연 이자 35% 수준이다. 무직자인 그녀는 저축은행에 서류를 제출하는 것 만으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35%에 달하는 저축은행 고금리를 갚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저축은행 빚을 갚기 위해 대부업체서 돈을 빌렸다. 고리 이자를 갚는 것이 벅차 저축은행 대출 원금은 하나도 갚지 못했다. 졸업반인 그녀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개인 회생도 준비중이다.

# 2008년 대학에 입학한 김모씨는 한국장학재단 학자금대출로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3학년 1학기 성적 평점이 C학점에 못 미쳐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지 못했다. 1년 휴학했다. 돈을 모아 복학했다. 평점이 C학점에 또 미달했다. 6개월 또 휴학했다. 학교를 졸업했으나 취업이 안돼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한달 월급 60만원으로 1500만원의 학자금대출 원리금을 갚고 나면 손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이들에게 누군가 말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려줬으니 걱정 없이 공부 열심히 하라고. 그래서 취업하고 갚으라고. 어떤이는 이런 말도 했다. 저축은행서 빌린 건 본인 책임이라고. 스스로 빌린 것이니 원금에 35% 이자까지 다 갚으라고 했다.

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 요건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대학 수업은 대부분 상대평가를 한다. 집안 형편상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학생보다 성적 평가에서 불리하다. 장학재단의 등록금 대출은 직전 학기 성적이 100점 만점에 70점을 넘어야 신청이 가능하다. C학점 미만인 학생은 신청할 수 없다. 장학재단 일반상환 학자금은 대학생 신용도 판단한다. 과거에 장학재단이나 금융권에서 연체기록이 있으면 학자금 대출을 못받는 경우도 있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는 27.9%(직전 34.9%)의 고금리를 등에 엎고 과잉 대출을 부추겼다. 소득이 없어도, 연체 기록이 있어도 돈을 빌려줬다.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들에 대학생·청년층이 찾아오면 장학재단, 미소금융재단 등 공적 지원제도를 설명하도록 행정 지도했다. 그러나 저축은행 대출 현장에선 이자가 낮은 공적대출 제도를 알려주지 않았다. 

기업들은 여전히 비정규직 비율을 줄이지 않고 있다. 2015년 8월 기준 신규 입사한 청년층 10명중 6.4명이 비정규직이다. 2008년엔 10명중 5.4명이 비정규직이었다. 10%포인트 늘었다. 반면 증권시장에 상장된 1849사의 사내유보금은 2014년 1125조원에서 1229조원으로 104조원(9.2%) 늘었다. 

청년들이 정부와 대출업체, 기업에게 묻는다. 누가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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